인도네시아 차기 대선은 2019년 4월 17일에 치러질 예정이다. 아직 대선까지 반년도 더 남아 있지만 이미 대선 정국은 시작되었다.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지난 8월 10일까지 선관위에 후보등록을 마쳐야 했다. 예상대로 현 대통령인 조꼬 위도도(Joko Widodo, 이하 조꼬위)와 지난 대선에서 조꼬위의 라이벌이자 현 야당연합의 중심이 되는 거린드라(Gerindra)당의 총재인 쁘라보워 수비얀또(Probowo Subiyanto, 이하 쁘라보워)가 후보로 등록했다. 두 사람의 출마는 오래전부터 거의 기정 사실화되었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은 누가 부통령 후보가 될지에 쏠렸다.
예상을 벗어난 부통령 후보 지명
특히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권자들은 실망감을 보이기도 했다. 전직 자카르타 주지사이자 조꼬위 대통령의 자카르타 주지사 시절 부주지사를 역임했던 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Basuki Tjahaja Purnama, 이하 아혹)가 작년 주지사 선거 (재선)에서 실패하고 신성모독 죄로 법정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보수적 무슬림을 끌어안을 수 있는 부통령 후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현직 부통령인 유습 깔라 Jusuf Kalla)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전직 대통령인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와 함께 부통령직을 수행했고, 현 조꼬위 대통령과 2014년부터 지금까지 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가 만약 조꼬위 대통령과 함께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경우 삼선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법적인 해석이 요구되었다. 부통령직을 2차례 연속적으로 수행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유숩 깔라의 지지층 중 일부가 연속적이던 비연속적이던 상관없이 삼선이 불가능하다는 2017년 선거법 169항(Undang-Undang Nomor 7 tahun 2017 tentang Pemilihan Umum Pasal 169)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위헌입법심사를 요구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들이 심사를 요구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법심사를 거부했다. 그 후 유숩 깔라 자신이 삼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표명하면서 부통령 후보에 대한 시선은 유력 정치인, 성공한 사업가, 지명도가 높은 이슬람 지도자, 군인 혹은 경찰과 관련된 인물 등으로 옮겨갔다.
금년 초부터 여러 명의 인물들이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다.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 중 정계에 있는 사람으로는 통합개발당(PPP)의 대표인 무함마드 로마후르무지 (Muhammad Romahurmuziy), 민족각성당(PKB)의 대표인 무하이민 이스깐다르 (Muhaimin Iskandar), 전직 합참의장인 물도꼬 (Moeldoko), 재무부 장관인 스리 물리야니 인드라와띠(Sri Mulyani Indrawati), 골까르당(Golkar)의 대표인 아이르랑가 하르따르또 (Airlangga Hartarto), 전직 대통령 메가와띠의 딸이자 인재개발 및 문화 조정 장관인 뿌난 마하라니(Punan Maharani), 불법조업에 대한 강력한 단속으로 유명해진 수시 뿌지아스뚜띠(Susi Pudjiastuti)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있었다. 비정당인 중에 후보로 거론된 인물로는 전직 헌법재판소장이었던 무흐푸드 M.D.(Mahfud MD)와 이슬람 최대 규모의 종교단체인 NU (Nahdlatul Ulama)의 이사회 최고위원이자 인도네시아 울라마(이슬람학자) 협의회(MUI) 의장인 마루프 아민이었다.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 무흐푸드 M.D.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마흐푸드 M.D.는 2014년 대선 때에도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조꼬위 대통령의 선택은 많은 이들의 예상에서 벗어난 이슬람 끼아이(Kyai, 종교지도자)였다.
한편 쁘라보워는 조꼬위 대통령이 부통령을 지명한 다음날인 8월 10일 현 자카르타 부주지사인 산디아가 우노(Sandiaga Uno)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다. 쁘라보워와 짝을 이룰 부통령에 대한 전망도 호사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거론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아들-아구스 하리무뜨리 유도요노(Agus Harimurti Yudhoyono)-을 부통령 후보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던 전직 대통령 유도요노가 부통령 후보자 지명이 있기 얼마 전에 쁘라보워와 회담을 갖고 2019년 대선에서 자신이 총재로 있는 민주당(Demokrat)이 쁘라보워를 지지할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아구스는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장남으로서 인도네시아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하버드에서도 수학한 엘리트 출신의 군인이었으나, 2017년 자카르타 주지사에 도전하기 위해 소령으로 예편했다. 그동안 민주당은 여권연합에도 야권연합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산디아가 우노를 부통령으로 지명한 이유로는 젊은 층을 공략하고 경제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49세의 상대적으로 젊은 우노는 자카르타 부주지사가 되기 전 성공한 사업가로서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쁘라보워가 유도요노의 바람대로 아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무엇보다 거린드라당(Gerindra)과 야당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두 정당인 번영정의당(PKS)과 국민수권당(PAN)이 아구스를 부통령 후보로 원치 않았으며, 전직 군인 출신 두 사람이 나란히 대통령-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것도 유권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부통령 후보들은 어떤 인물인가?
조꼬위의 러닝메이트인 마루프 아민은 자카르타의 북서쪽에 위치한 땅그랑(Tanggerang) 출신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이슬람 지도자로 알려졌다. 그가 부통령 후보로 거론될 때 그는 정치계 밖의 인물로 분류되었지만, 다양한 정치적 경험도 가지고 있다. 지역대의원(Dewan Perwakilan Daerah/DPD) (1971-1977), 국민개발당 (PPP) 소속의 자카르타 시의원(1977-1982), 국민각성당 (PKB) 소속의 국회의원(1999-2004), 유도유노 대통령 자문위원(2007-2014)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NU (Nahdlatul Ulama)의 이사회 최고위원이자 인도네시아 울라마협의회(MUI) 의장이며, 빤짜실라 (Pancasila) 이념 교육기관인 BPIP의 이사진이기도 하다. 많은 유권자를 당혹하게 만든 것은 마루프 아민이 부통령을 수행하기에는 다소 나이가 많은 75세의 고령이라는 점과 보수적인 종교지도자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가 종교 지도자로서 보여준 모습은 피상적으로나마 종교적 다원성을 표방하는 인도네시아의 정신과는 상충되는 것이었다. 아혹 주지사가 신성모독 혐의로 구속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반 포르노 그라피법과 인도네시아 주류 이슬람에서 이단으로 간주하는 소수종파인 아마디야 (Ahmadiyah)의 활동을 금지하는데 앞장섰다. 최근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LGBT 이슈에도 강한 거부감을 표방했다.
산디아가 우노는 인도네시아 재벌그룹인 아스트라 인터내셔널(Astra International)의 창업자인 윌리엄 수르야다야(William Soeryadjaya) 장학금을 받고 미국에서 학사(Wichita State University), 석사학위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MBA)를 마친 유학파 출신으로 1997년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다양한 직장에서 경력을 쌓았다. 1997년 아시아금융 위기가 오면서 이전 직장을 사직하고 고등학교 친구와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으며, 2009년에는 포브스(Forbes Magazine)에 의해 인도네시아에서 29번째로 부유한 사업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2015년 사직했으며 2017년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과 함께 자카르타 주지사-부지사 후보로 출마하여 현역 주지사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산디아가 우노의 상대적으로 젊고 사업가적 이미지는 조꼬위가 선택한 마루프 아민의 이미지와 매우 상반된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할랄 인증(?)을 받은 조꼬위
대통령 후보 등록 후 ‘2019년 대선은 2014년 대선의 재탕이다.’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사실 대선 후보 등록 전부터 재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현직 대통령과 그의 맞수 쁘라보워는 마치 상수처럼 위치하고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이 변수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같은 후보라고 해도 주변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2014년 당시 신진세력으로서 개혁적이고 깨끗한 이미지의 조꼬위 후보는 이제 현직 대통령으로서 기성정치에 대한 도전이 아닌 방어를 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집권 초반 정치기반이 약하고 자신이 속한 정당인 투쟁민주당(PDI-P)의 당수이자 전직 대통령인 메가와띠의 상왕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조꼬위 대통령은 서서히 정치 기반을 다지면서 자신의 색깔과 정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후보시절부터 강조했던 인프라 개발과 경제성장은 약속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지난 4년 동안의 집권을 되돌아볼 때 조꼬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어려움을 안겨준 것은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아혹 주지사의 재선 실패와 구속이었을 것이다. 중국계 기독교인이라는 그의 이중약자 정체성은 인도네시아 선거에서 매우 취약함을 드러내 보였다. 지난 2017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매개로 하여 대중이 동원될 때, 이는 선거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막강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목격했다. 정체성과 관련된 공격은 2014년 대선 때에도 조꼬위에 큰 위협으로 작용했다. 온건한 이슬람 신자인 조꼬위가 중국계 기독교인이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하면서 선거운동 초반 라이벌 후보와 큰 차이로 벌어졌던 지지도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결국 조꼬위는 대선을 3일 앞두고 자신이 무슬림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방문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러한 것을 감안할 때 조꼬위가 보수적 종교지도자를 선택한 것은 무슬림의 표를 얻으면서 상대진영의 종교를 앞세운 공격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로 해석된다. 현지인들은 마루프 아민이 속한 울라마협의회(MUI)가 할랄 인증을 주관하는 기관인 것에 빗대어 조꼬위가 할랄 인증을 받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양 진영의 부통령 후보 지명이 대중의 희망과 여론조사의 결과를 무시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조꼬위에 가장 적합한 부통령 후보로 마흐푸드 M.D.가 주목받았다. 그는 무슬림 유권자에게도 어필할 수 있고, 법률적인 측면과 부패 척결이라는 부분에서 조꼬위의 리더십을 보충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되었다. 개혁적이고 종교적으로 관용을 중시했던 조꼬위가 자신의 측근을 구속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보수적인 종교지도자를 선택한 것은 그의 지지자들을 실망케 했다. 마루프 아민을 선택한 이유로 종교적인 요소와 더불어 그가 차기 2024년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차기 대선 주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마흐푸드 M.D.는 다수의 정당과 연합하고 있는 여당을 분열시킬 소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쁘라보워 역시 유도요노와 회담을 하면서 그의 아들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할 수 있을 것처럼 연출했지만 야당 연합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모험보다는 안전한 베팅(산디아가 우노)을 원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유도유노의 아들 아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기를 원하는 것과 달리 야당 연합은 보다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정치권 밖의 중립적인 후보를 지명하기를 원했다. 쁘라보워가 산디아가 우노를 선택한 것도 야당 연합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한 타협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루프 아민의 강점으로는 여당 연합이 분리되어 제3의 정당 연합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종교와 관련된 흑색선전에서 조꼬위를 방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종교지도자로서의 이미지 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루프 아민의 이미지가 조꼬위와 얼마나 잘 어울릴지, 그리고 국정철학에서 얼마나 많은 공통분모가 있을 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한다. 산디아가 우노의 강점으로는 그가 젊은 유권자와 여성의 표를 흡수할 수 있다는 점과 선거운동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막 오른 대선 레이스
대선까지 약 8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이미 대선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을 지니고 있는 조꼬위는 부통령 후보자 지명만큼이나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2018년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 등장했다. 자신을 수행하는 차량들이 자카르타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 때문에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교통체증을 뚫고 영상과 실제가 혼재된 기법을 사용하면서 주경기장에 등장한 대통령은 개막식을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았다. 인도네시아는 자국의 전통무술인 쁜짝 실랏(Pencak Silat)에서 14개의 금메달을 따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8월 29일 쁜짝 실랏 경기장을 찾은 두 대선후보는 서로 얼싸안는 모습을 연출했다. 쁘라보워는 현재 인도네시아 쁜짝 실랏 협회 의장을 역임하고 있다.
깨끗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는 더 이상 조꼬위 대통령의 장점이 될 수 없다. 기존 정치세력과 결탁되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가 후보시절에는 정치적 자산이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나서, 이러한 자산이 정치력 부재와 기존 정치세력의 견제를 불러오는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지난 4년 동안 조꼬위 대통령은 정당 기반을 착실하게 다졌고 안정된 여당연합을 만들었다. 하지만 2014년 일명 조꼬위 효과라고 일컬어지는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는 사라졌다. 이번 부통령 후보 지명은 조꼬위 대통령이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장점을 고수하려는 방어적 자세를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이미 종교와 관련된 이슈를 조꼬위에 선점당한 쁘라보워는 젊고 성공한 사업가의 이미지가 강한 부통령 후보와 함께 인권탄압에 연루된 기성 정치세력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면서, 지금까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 조꼬위 대통령의 경제 및 인프라 정책의 성과를 끊임없이 문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