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태국 치앙마이 주변 산악지대(조미아)와 평지 사이를 오가는 카렌족 등 소수종족의 전략과 실천을 다룬다. 평지에 터를 잡고 인구를 끌어모아 도시를 세우려는 국가에 맞서서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산으로 향했다. 산과 […]
이 글은 2023년 5월 14일 치러진 태국 총선의 결과와 이후 전개 상황을 분석하며 전례 없는 의제와 이슈들이 공론화된 태국 정치의 오늘에 대해 논의한다. 진보적 성향의 소수정당에 머물렀던 전진당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제1당으로 부상한 이번 총선의 결과는 태국 안팎으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전진당은 징병제 폐지를 포함한 군개혁과 왕실모독법 개정을 포함한 왕실 개혁을 주장하며 태국 사회의 중추적 권력에 대한 개혁의제를 공약에 과감히 배치했다. 전진당의 대범함은 총선 승리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태국 사회 기득권층의 저항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저항은 전진당의 총리 후보 피타 림짜른랏에 대한 투표 부결로 귀결되었다. 2014 쿠테타 세력이 제정하여 2017년 출범한 현행 헌법 체계에서 태국 ‘유사민주주의’의 한계는 지속될 것이다. 또한 전진당의 정치적 동지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친탁신계 프어타이당이 전진당을 배제한 연정을 주도하게 되면서 20년 넘게 지속되어 온 ‘레드 vs. 옐로우’ 색깔정치분쟁의 갈등구조도 개편 중이다. 이후 태국의 정치갈등은 더욱 계급적이고 계층적인 방식으로 체제 변화와 맞물려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유경(국제분쟁전문기자) 유사민주주의 2023년 5월 14일에 치러진 태국 총선은 태국 정치사에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75.22%라는 높은 투표율에서[1] 태국의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를 학수고대했으며 그중 다수가 정권교체를 열망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군 개혁과 왕실 개혁 등 태국 사회의 민감한 의제들을 공약의 전방에 배치한 전진당(까우끌라이당)이 제1당으로 부상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진당은 하원 500석(선거구 400석, 비례대표 100석)중 선거구 141석, 비례대표 10석으로 총 151석을 얻어 제1당이 됐다. 득표수 비율로 보면 전진당은 선거구에서 24%를 비례대표에서 36%를 얻었다. 제2당이 된 프어타이당이 선거구와 비례대표에서 각각 23%, 27%를 얻었으니 두 당의 결정적 차이는 비례대표 9%에서 나왔다. 전진당은 수도 방콕의 33개 선거구 중 동부에 위치한 랏크라방(Lat Krabang)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선거구를 모두 석권했다(The Nation, 2023/05/15). 선거가 치러진 시점에 2014년 쿠테타의 주역들이 여전히 총리와 부총리 등의 요직에 앉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총선은 ‘친(親)군정+보수+왕정주의’의 지배질서를 ‘반(反) 군정+진보+민주주의’ 질서로 순식간에 전환시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충격과 환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유권자 다수가 선택했던 전진당은 정부 구성도 총리 배출도 하지 못한 채, 지난 8월 22일 야당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보통의 내각제 민주주의라면 제1당 대표가 총리직에 오르는 게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태국은 달랐다. 총선 직후부터 새 정부가 출범한 8월 22일까지, 태국 정치권은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합종연횡 시나리오로 혼미했고, 총리 선출 문제로 석 달가량을 소모했다. 이 기간동안 태국 민주주의의 한계는 더욱 선명해졌다. 태국의 현행 헌법체계하에서는 민주적 선거로 다수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정당일지라도 전체 의회 의석의 1/3을 차지하는 임명직 상원의원들의 의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음이 재차 확인된 것이다. 엄밀히 말해 전진당은 정부 구성에 ‘실패’하거나 총리 배출에 ‘실패’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원천봉쇄 당했다’는 것이 현실을 직시한 표현일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이 존중받지 못한 것은 물론 귀족정치(aristocracy)와 결탁한 ‘유사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게 됐다. 이는 임명직 상원들이 선출직 총리 후보를 거부(veto)하는 ‘의회 쿠테타’의 형태로 발현됐다(The Nation, 2023/07/20). 전진당,정부구성 ‘실패’한 게 아니라 ‘원천봉쇄’ 당한 것 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둔 전진당은 곧바로 연정구성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프어타이당을 비롯하여 모두 8개 정당이 참여한 ‘전진당주도 정치동맹(이하 전진당동맹)’은 23개 합의사항을 담은 양해각서를 발표했다(Tan, 2023). 이 양해각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 점에서 전진당이 왜 결국 야당에 머물게 되었는가에 대한 포괄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전진당동맹의 23개 합의 사항 중에는 ‘헌법 다시 쓰기’가 있다(Tan, 2023). 태국의 현행 헌법은 2014년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의 통치기구인 국가평화질서평의회(National Council for Peace and Order, 이하 NCPO)가 작성한 ‘2017년 군정헌법’이다. 2015년 10월, NCPO는 21명의 친 군정 인사들을 헌법기안위원회(CDC) 위원으로 임명했고(Reuters, 2015/10/5), CDC가 기안한 헌법은 2016년 8월 찬반국민투표에 부쳐졌다(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s, 2016). 군정 헌법에 반대하는 “Vote No” 캠페인 캠페인에 대한 탄압과 공정선거 논란 속에 헌법은 투표율 58%, 찬성 61.35%로 통과됐다. 전체 유권자의 30% 정도가 찬성한 셈이다. ‘2017 군정헌법’에는 임명직 상원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비민주적 요소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전진당이든 그 어느 당이든 태국사회 기득권 구조를 개혁하려는 정치세력은 상원의 강한 거부권에 직면하게 된다. 전진당동맹이 군정헌법을 지우고 새 헌법을 쓰는 데 합의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 헌법이 존치되는 한 전진당이 정부를 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둘째, 전진당동맹은 양해각서 합의안에 왕실모독법(lèse majesté)의 개정을 담지 못했다. 태국의 왕실모독법인 형법 112조는 “국왕, 왕비, 왕세자 혹은 섭정(regent)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거나 협박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한다. 이 조항을 어기면 3년형에서 15년형까지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왕실모독법은 인권과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가치와 모순된다. 그렇다고 이 법이 입헌군주제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입헌 군주제는 군주의 세습은 용인하지만 군주의 권력 행사는 합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태국의 왕실모독법은 체제 유지 보다는 왕실 성역화에 복무해 왔다. 전현 군주들의 권력 남용 사례가 있을 때면 왕실모독법은 더 빈번하고 더 강력하게 발동했다. 현재 왕실모독법에 따르면 누구든 고발장을 접수할 수 있고, 고발장이 접수되면 반드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지난 20년간 전개된 색깔 정치 분쟁 즉, ‘레드 vs. 옐로우’의 대립 시기에[2] 이 법은 비판세력에 재갈을 물리는 데 악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쿠테타 이후에는 군정을 비판하는 활동가들에게 가차없이 남용됐다. 태국인권변호사협회(Thai Lawyers for Human Rights, TLHR)에 따르면 NCPO의 통치가 시작되고 3년 동안 왕실모독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138명이었으며(TLHR, 2020) 이후로도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2020년 11월 24일부터 지난 10월 27일까지 약 3년간 왕실 모독법으로 고발된 이는 259명이고 이중 20명이 18세 미만 미성년자다. 지난 2년(2021년 11월 30일 ~ 2023년 10월 31일)으로 모니터 기간을 좁혀 보면 기소율은 79%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왕실 모독법으로 고발된 이들 대부분은 민주화 시위나 정치적 의견 표출을 이유로 고발당하고 기소됐다(TLHR, 2023). 태국에서 왕실모독법 개정 요구는 여전히 불온한 시도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전진당이 이 법을 개정하겠다며 주요 공약사항에 포함시킨 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보수 왕정주의 기득권 세력들 사이에서 비상등이 켜졌다. 역설적이게도 왕실모독법 개정 공약은 전진당을 제1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인 동시에 정부 구성을 봉쇄당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2020년 하반기, 금기와 침묵을 깨고 거리에서 왕실 개혁과 왕실모독법 폐지를 외쳤던 태국의 청년 세대는 2023년 총선에서 전진당에 환호했고 투표로 답했다. 이들의 투표가 전진당을 1당으로 만든 결정적 변수였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이유는 이렇다. 이번 총선에서 생애 첫 투표자는 약 300만명가량이고 전진당이 제2당 프어타이당에 앞선 득표수도 그 정도다. 선거 결과 전진당과 프어타이당은 선거구 의석 확보에서 112석으로 똑같았지만 득표수에서는 전진당이(14,438,851표) 프어타이당(10,962,522)를 347만 6,329표를 앞서 결국 전진당이 10석을 더 얻고 1당이 됐다.[3] 이러한 맥락을 토대로 하여 전진당 동맹의 유일한 총리후보였던 피타 림짜른랏(Pita Limjaroenrat)이 어떻게 저지당했는지 총리 선출 과정을 살펴보자. 태국에서 총리로 선출되려면 상하 양원 750석 중 과반이 넘는 376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 피타는 전진당동맹으로 끌어 모은 312표보다 54표가 더 필요했다. 전진당동맹에 참여하지 않는 친군정 보수정당들에서 이 표가 나올 리 만무했다. 그래서 전진당은 자당의 총리 후보를 지지하는 게 민심임을 강조하며 상원의 표를 움직이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의회의 행보는 투표소와 거리에서 확인된 민심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했다. 7월 13일 총리 선출 1차 투표에서 피타는 전진당 동맹의 312표 이외에 상원에서 12표 밖에 얻지 못했다(반대 182, 기권 199). 총리 선출에 필요한 376표에는 한참 못 미쳤다 (Ewe, 2023). 피타와 전진당은 2차 투표를 앞두고 자신감있는 언어로 민주적 대의를 내세우며 상원의원들에게 다시 한번 호소했다. 그러나 2차 투표가 예정되었던 7월 19일, 의회는 1차 투표에서 총리로 선출되지 못한 피타가 다시 총리 후보로 지명될 자격이 있는지를 찬반투표에 부쳤다. 이 투표에서 상원의 다수를 포함 총 395명이 반대하면서, 태국 의회는 2차 투표 없이 피타의 총리 후보 자격을 박탈시키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태국 헌법재판소는 같은 날 피타의 의원직까지 정지시켰다. iTV의 주식을 42,000주 소유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피타가 애초에 5.14 총선에 출마할 자격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판결이 날 때까지 의원직 정지를 명한 것이다. 태국 헌법 98조 3항은 언론사 지분을 소유한 이의 총선 출마를 금지하고 있다. 전진당의 전신이자 2020년 2월 21일에 강제 해산된 미래당의 타나톤 쯩룽르앙낏(Thanathorn Juangroongruangkit) 대표 역시 언론사 지분 소유 문제로 2019년 11월 20일 의원직을 상실한 바 있다(Gunia, 2020; Al Jazee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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