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태국 치앙마이 주변 산악지대(조미아)와 평지 사이를 오가는 카렌족 등 소수종족의 전략과 실천을 다룬다. 평지에 터를 잡고 인구를 끌어모아 도시를 세우려는 국가에 맞서서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산으로 향했다. 산과 평지에 두 질서가 공존하며 인구 이동의 동학을 만들어냈다. 태국과 미얀마 산악지대 한복판에 자리한 국경도시 매솟은 비국가성과 국가성이 혼재하는 곳으로서 사람들은 이곳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떠난다. 오늘날 조미아 사람들은 국가를 피하기보다는 국가 속으로 들어가 국가를 활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들은 여러 제약 속에서도 초국주의(transnationalism)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다른 세계, 다른 질서를 만들어나간다.
이상국(연세대학교)
도시와 그 불확실한 산/벽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와서인지 치앙마이대학교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선 산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이 세계와 저 세계가 병존하고, 어느 쪽으로 오가든 산을 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사는 집에서 치앙마이대로 운전을 해서 가면 계속 산을 응시하게 되고 가까이 갈수록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환각에 빠질 때가 많다. 이름마저 ‘도이수텝’, 신들의 산이라니 속세의 모든 짐을 버리고 산으로 오라 유혹하는 것 같다.
정신을 차리면 산 아래 세계의 장력도 만만치 않다. 13세기 말에 세워진 란나(Lanna) 왕국의 핵심부 ‘올드타운’이 여기에 자리 잡고 있다. 이름부터 ‘백만 지기 논’이라니 그 왕국이 어디에 터를 두었는지 뻔하다. 농사짓기 편한 곳, 물 대기 쉬운 삥(Ping)강 옆 평지가 이곳이다. 창시자 맹라이(Mangrai) 대왕과 후대 왕들은 여기에 므앙(Muang), 즉 도시를 세워 벽으로 둘러쌌으며 다시 해자로 그 벽을 감쌌다. “채소는 바구니에 넣고, 사람은 므앙에 넣으라”는 경구가 바로 란나 왕국에서 나왔다. 지배자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므앙으로 끌어와 농사짓는 충실한 신민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치앙마이는 그렇게 태어났고 성장했다.
단단한 벽과 해자로 둘러싸인 타패문(Tha Phae Gate) 너머에는 하루키 소설 속 인물과 동물인 문지기와 일각수, 그리고 꿈을 읽는 도서관이 있을 것 같고,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그곳의 질서에 순응하며 주어진 일을 충실히 감당하며 살아갈 것 같다. ‘자아’를 찾아서 바깥 세계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은 문지기의 감시를 뚫고 벽을 넘어 물웅덩이에 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소설 속 그 도시를 국가 공간의 알레고리로 읽는다면, 그곳의 모습은 치앙마이의 과거와 현재 사회에 절묘하게 겹쳐진다. 소설은 그 도시를 ‘거짓’이라 단정하지 않았고, ‘또 다른 현실’이라 했다. 지배자들은 국가 공간인 므앙을 만들고, 사람들에게서 그림자를 삭제하고 국가에 노동력과 세금을 바치는 신민으로 주조해내고, 도망치려는 사람들을 감시한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산, 신들이 유혹하는 산이다. 판 스헨델(Van Schendel, 2002)이 이름 붙이고, 스콧(Scott, 2015)이 유행시킨 ‘조미아(Zomia)’이다. 치앙마이는 조미아의 세계와 므앙의 세계가 병존하는 곳, 므앙으로 끌어들이려는 구심력과 조미아로 도망치려는 원심력이 마주치는 곳이다. 그 마주침 속에서 튕겨 나간 인구의 파편들이 치앙마이 주변 산들에 소수종족이 되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국가 밖으로: 난민들이 만들어낸 도시, 매솟
여기에 와서 부쩍 구글지도를 좁혔다 늘렸다 들여다보는 일이 잦다. 지도 유형 중에서도 지형도를 많이 참조하게 된다.
이것을 보면 앞서 말한 ‘란나’는 현실에 맞지 않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태국의 중부 지역에서는 그 말이 맞을지 몰라도, 북부에서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군데군데 분지가 흩어져 있다. 람푼(Lamphun), 람빵(Lampang), 난(Nan), 치앙라이(Chiang Rai), 빠이(Pai) 등이, 더 북쪽으로 향하면 미얀마의 짜잉똥(Kyaing Tong), 중국의 징훙(Jinghong) 등이 그러한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란나 왕국은 치앙마이에 수도를 두면서 분지에 자리 잡은 따이(Tai)족계 벼농사 국가들의 연합 국가였던 것이다. 치앙마이는 충성서약과 조공으로 맺어진 만달라(mandala)1) 국가 체계의 종주국으로서 군림하였다.
만달라 체계는 근본적으로 불안했다. 한 지역에 여러 종주가 주권을 주장할 수 있었고, 개별 조공국은 기회를 틈타 반역을 일으키거나 다른 힘센 종주에게로 충성서약을 돌릴 수 있었다. 여러 위기 속에서 결국 란나 왕국은 1558년부터 1774년까지 미얀마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미얀마 왕조의 만달라 체계가 여기에까지 확장된 것이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란나 왕국은 중부에 있는 시암(Siam)의 도움으로 미얀마의 위협을 극복하고 주권을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그 도움은 곧 방콕 중심의 만달라 체계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방콕 왕조는 원래 충성서약과 조공을 통해 란나를 간접적으로 지배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영국과 프랑스와 일련의 국경 획정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영토성(territoriality)2)을 각성하게 되면서 란나도 조공국이 아닌 하나의 지방으로 편입시켜 직접적으로 지배해 버린다. 태국의 국가성은 지도에서 비롯되었고(Thongchai, 2019), 치앙마이도 경계 지어지며 태국의 국가성을 이루는 한 부분이 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장소는 국가의 영토이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힘에 태국도, 치앙마이도 포섭되었다. 세계는 곧 국가성의 총합이 되었다.
다시 구글지도로 돌아가 보자. 치앙마이대 뒤편에 있는 도이수텝은 타논통차이(Thanon Chongchai) 산맥에 속해 있고, 이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그 산맥이 태국 남쪽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운데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미얀마 쪽에서도 도나(Dawna) 산맥이 북에서 아래로 뻗어있다. 두 산맥 사이를 자세히 보면 황토색의 분지가 하나 드러나는데, 바로 매솟(Mae Sot)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찾아가는 도시, 난민과 이주민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도시이다.
내가 매솟과 그 주변 난민촌을 처음 찾아갔던 때는 세기말 히스테리가 기승을 부리던 1999년 12월이었다. 치앙마이에서 옴꼬이(Omkoi)까지 차로 간 뒤, 타논통차이 산맥을 걸어서 넘어 타송양(Tha Song Yang)에 있는 맬라(Mae La) 난민촌에 다다라 며칠을 묵고 나서, 다시 차를 타고 매솟에 도달했다. 그 이후로는 주로 방콕에서 차를 타고 딱(Tak)을 거쳐 산맥을 넘어 매솟에 이른다. 나에게는 옴꼬이와 딱이 이 세계의 끝자락 같았다. 산을 넘으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인구 구성에서도 미얀마인들이 태국인들보다 두 배나 많았고, 더군다나 ‘불법’ 이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도 이 도시는 잘 굴러갔다. 여기는 국가성이 상징적으로만 또는 가끔씩만 실재하는 곳, 비국가성이 편재하여 때론 국가성을 삼키는 곳이었다.
역설적으로 매솟이 비국가성 도시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국가성 프로젝트의 결과였다. 1980년대 말에 군부의 탄압을 피해 미얀마인들이 이곳에 대거 몰려왔다.3) 1990년대에는 군부가 카렌족 반군의 주요 근거지를 장악해가자 카렌족 난민들이 매솟 주변의 난민촌으로 옮겨왔다. 그 대열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10년의 민주화를 수포로 만들어버린 군부의 쿠데타가 2021년 2월에 발생한 이후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자들도 이곳으로 향했다. 그런 점에서 국가성과 비국가성은 한 쌍의 프로젝트이고, 이곳의 세계와 저곳의 세계는 이어져 있다.
국가성과 비국가성, 그 역설적 공존
지도에서 보면 매솟은 나에게 숨구멍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난민과 이주민들은 비국가성의 공기를 마시며 산다. 그렇게 다시 호흡을 고르고, 다른 질서, 다른 세계를 일구어나간다. 먼저 통치성부터 보자. 태국 정부는 그간 숱하게 고용허가제 등 여러 수단을 써서 불법 이주민을 합법화하려는 정책을 펼쳐왔으나, 통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미얀마인들 처지에서는 그것이 복잡한 데다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카렌족 단체에서 발급하는 유사 거주증이나 유엔난민기구가 발급하는 등록증을 갖고 다녔다. 최근에 넘어온,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미얀마 활동가들도 나름의 증명서를 소지하고 다니는데, 어떤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조각인 경우도 있다. 태국 경찰의 단속에 걸릴 시 그 번호로 전화하면 해결되곤 한다. 물론 경찰에 소정의 뇌물을 바쳐야 하는 경우도 있으나, 매솟에서는 뇌물이 일종의 세금으로 통한다. 뇌물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이다.
매솟에서, 특히 국경을 이루는 머이(Moei)강 유역에서 밀수는 반드시 범죄와 연결되지 않는다. 밀수는 단지 국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래되고 자연스런 지역 간 거래에 국가가 나중에 참여하면서 밀수라는 범주도 생겨난 것이다. 밀수는 지역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어 국가가 아무리 통제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오히려 밀수가 국가를 포섭하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머이강을 따라 물건을 선적하는 밀수 항구가 점점 늘어나자 세관도 그곳에 일종의 출장소를 개소하고 창고도 설립하여 상품 이동의 편리를 도모했다. 미얀마에서는 밀수지만 태국에서는 합법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품의 이동에서도 국가성과 비국가성의 통합이 발생한다.
교육에서도 다른 질서가 작동된다. 2023년 12월 기준으로 64여 개의 이주민 학교가 1만 5천 명가량의 자녀들을 수용하고 있다.4) 당초에 이주민 학교는 자율적이지만 미등록 상태로 출발했다. 2000년대에 걸쳐서 이주민 학교 규모가 커지자 국가는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이라는 이름 아래 준(semi) 합법적인 교육기관으로 인정하게 된다. 이것을 국가의 통제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앞선 밀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국가 영역이 국가의 관여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성장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주민 학교에서 자녀들은 미얀마어와 카렌어 등을 배우며 자신의 언어를 유지할 수도 있고, 태국어를 배우며 현지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할 수 있고, 원어민 자원봉사자로부터 영어를 배우며 제삼국으로 이동할 준비도 한다. 최근에는 시민불복종 활동가들이 교사로 참여하며 커리큘럼도 더 다양해졌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도 생겨났다.
보건 영역을 보자. 매따오(Mae Tao) 병원은 한국에서도 제법 많이 알려져 있다. 설립자인 신시아 마웅(Cynthia Maung) 의사가 광주인권상 등을 수상한 계기에 한국도 방문했기 때문이다. 1989년 세워진 이래 이 병원은 매솟 등 국경지대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건강을 책임지는 독보적인 의료기관으로 역할을 해왔다. 비록 불법이었지만 지역사회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 속에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며 이른바 벌거벗은 생명을 돌봐왔기에 국가도 그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시기에 이 병원은 미얀마 이주민 환자들의 격리 장소로 활용되는 등 태국의 의료당국과 긴밀히 협조하며 대응해왔다. 이 병원은 현재 태국의 한 재단 아래 등록되어 편의상 법적 토대를 갖추고서 불법과 합법을 가리지 않고 이주민들을 거의 무료로 진료하고 심각한 사례는 매솟의 병원으로 의뢰하기도 한다. 이주민 학교의 사례처럼 이 병원 역시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했던 의사들이 합류하며 역량을 더 키울 수 있었다.
이렇듯 이런 질서에서 다른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다 산 너머의 세계로 진출할 욕망을 품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매솟은 전이의 공간이자 도약의 공간이다. 난민과 이주민들은 통과의례의 한 단계처럼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방콕이나 더 아래 말레이시아로 가기도 하고, 더 극적으로는 아예 비행기를 타고 제삼국으로 이주하기도 한다. 전자는 이른바 ‘경제 이주민’의 이동 경로이고, 후자는 유엔난민기구의 등록된 난민의 이동 경로이다. 이들이 빠져나갔다고 해서 국경지대가 공동화되지 않는다. 그 자리는 곧 또 다른 이주자와 난민이 채운다. 공기가 드나들 듯, 피가 흐르듯, 늘 인구가 드나든다. 그것은 혼란의 상징이 아니라 건강의 상징이다. 국경사회체제는 공기와 피의 순환 속에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국가 활용하기와 초국적 연대
여기에서 국가 공간을 떠나 조미아에서 살던 사람들이 다시 국가 공간으로 진출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1990년대 국가를 대체하며 엔지오가 주도하는 통치성의 시대가 올 것이라 외쳤을 때만 해도 난민촌이 그러한 세계를 실현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와 달리 국가는 더 강해졌고, 더 나은 국가로 진출하려는 조미아 사람들의 욕망은 더 커졌다. 이제 국가는 강압적으로 인구를 끌어모으기보다는 매력을 발산하고 복지국가라는 이름으로 돌봄을 제공하며 조미아 사람들을 빼간다. 조미아 사람들이 국가에 굴복한 것일까?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올해 1월 말 매솟의 한 이주민 학교에 갔더니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카렌족 교사가 전기공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이 학교에서 어린 시절 공부를 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재정착되어 대학교까지 마치고 시민권도 얻어서 이곳에 다시 와서 교사로 일하게 된 것이다. ‘좋은’ 국가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조미아 학생들에게 전수하며 이들이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례는 2월 중순 치앙마이에서 동북쪽으로 2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파야오(Phayao)에 가서 참관한 이우미엔(Iu Mien)족의 행사에 관한 것이다. 이우미엔족은 중국에서는 야오족이라고 부른다. ‘세계 이무미엔족 문화축제(World Iu Mien Cultural Festival)’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이 행사에 태국을 비롯해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 주변 국가에 흩어져 사는 이우미엔족이 참여했다. 더 놀라운 점은 베트남전쟁 이후 난민으로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 재정착된 이들이 자녀를 데리고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이 행사에 태국 정부의 장관을 비롯해 도지사와 고위 관료까지 초청하여 이들에 우호적인 연설을 하도록 했다.
이 두 사례는 조미아 사람들이 이제는 국가를 피하기보다는 국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장하자면 국가 공간이 조미아 사람들에 의해 뚫렸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두 사례는 이제는 초국적 연대가 조미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이 되고 있음도 보여준다. 첫 번째 사례가 보여주듯이 초국적 연대는 난민과 이주민이 살아가는 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선진국에 흩어진 동족들이 보내준 송금이 개별 난민뿐만 아니라 카렌족 단체와 정치기구에도 큰 수입원이 된다. 두 번째 사례는 초국적으로 연대한 조미아인들이 국가 공간에 진출하여 국가의 고위 인사까지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제 국가 만들기 대 국가 피하기의 전통적인 구도는 실효를 잃었다. 국가가 생각보다 질기고 국가가 제공하는 효용도 크다. 조미아 사람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전략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국가 공간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국가가 순순히 이들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영토 불가침을 신성시하는 한, 벽을 쌓아 이들의 출입을 막으려고 한다. 거기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주민들도 덩달아 벽 쌓기를 한다. 문지기가 출입을 감시하며 자격과 조건을 따져 합당한 사람만 들여보낸다. 그 조건 중 중요한 것이 국가성을 따르는 것, ‘자아’를 버리는 것, 즉 소설에서처럼 그림자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량한 시민으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그 벽 안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 국가가 바라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진실이니까. 그러나 그들은 초국적 연대에 힘입어 조미아로 돌아와 다른 공기를 마시고 옛 그림자와 조우하며 국가성 이전의 자신을 되돌아본다. 여기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여전히 삶을 일구어가는 곳이자 국가성의 질서에 맞추어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조미아와 평지, 이 두 세계를 동시에 품으며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다. 여전히 시공간의 제약이 크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두 세계의 마주침이 만들어내는 긴장 속에서 세계는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것, 그에 따라 진실도 여러 개 있을 수 있다는 감각을 지니고서 그 연대의 장을 가꾸어간다. 벽 안의 도시에서만 태어나고 자랐던 사람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감각이고 실천이다.
저자 소개
이상국(caskl@yonsei.ac.kr)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학사와 국제대학원 동남아지역연구 석사를 마치고 싱가포르국립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4년 현재 치앙마이대학교 사회개발학과 방문학자로 지내고 있다. 난민, 이주, 국경, 초국주의, 스포츠인류학에 관심을 두고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카렌-코리안-아메리칸: 미국의 난민 수용 제도와 미얀마 카렌족 난민의 삼각 초국주의 실천”(2022), “노동과 노르웨이를 넘어서: 미얀마 카렌족 재정착 난민의 통합과 초국적 모빌리티”(2021), Beyond Bare Lives: A Study of a Border Social System in a Southeast Asian Frontier(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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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달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것으로서 한가운데에 있는 신성한 존재(메루산)를 둘러싸고 겹을 이루며 퍼지는 동심원을 뜻한다. 동남아 전근대 왕국도 만달라 체계처럼 궁정 핵심부에서 주변부로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지배했다. 다만,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즉 동심원이 바깥쪽으로 갈수록 그 영향력은 약해져 갔다.
2) 영토성은 지리적 영역을 설정하고 그 영역 내에 절대적인 통제권을 주장하면서 사람과 사물, 그리고 관계성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말한다.
3) 미얀마 군부는 1962년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른바 버마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고립의 길을 걸었다. 1988년 8월 미얀마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으나 새로운 군부가 이를 제압하며 군사 정권을 연장했다.
4) https://www.mecctak2.com/ (검색일: 202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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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무라카미 하루키. 2023.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홍은주 역. 파주: 문학동네.
- Scott, James. 2015.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동남아 산악지대 아나키즘의 역사』. 이상국 역. 서울: 삼천리.
- Thongchai Winichakul. 2019.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 국가의 지리체 역사』. 이상국 역. 과천: 진인진.
- Van Schendel, Willem. 2002. “Geographies of Knowing, Geographies of Ignorance: Jumping Scale in Southeast Asia.” Environment and Planning D: Society and Space 20(6), 647-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