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다 무슬림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공감과 소통의 환경이 조성되기가 어려운 가장 큰 사회문화적 요인은 이슬람이라는 견고한 벽이다. 그에 더해 2016년 이른바 공적 과잉 히스테리로 불리는 보수 세력의 노골적인 반 성소수자 발언 여파로, 사회 문화적 풍토와 종교 규범에 어긋나는 성적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는 상황은 인도네시아 성소수자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이 글은 수하르또 정권 퇴진 이후 사회 전역에 불어온 개방과 표현의 자유 바람으로 한때 가시적으로 확산되었던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분위기가 편견과 혐오의 물결에 직면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인도네시아 성소수자의 현주소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연(한국외국어대학교)

퀴어의 렌즈로 바라본 “다양성 속의 통일”

2014년 개봉 영화 꾸스완디(Lucky Kuswandi) 감독의 <밤의 부재(Selamat pagi, Malam; In the absence of the sun)>는 저마다의 도전에 직면한 세 명의 여주인공이 자카르타의 한 러브 호텔에서 각자의 파트너와 사회적·종교적 규범에서 일탈한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이들 중 한 명인 기아(Gia)는 오랫동안 뉴욕에 살다가 자카르타로 막 돌아오나 고국에서 되려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불편한 감정을 떨쳐 내기 위해 짐을 풀던 기아는 뉴욕에서 자신과 동성애 관계를 맺었던 나오미(Naomi)의 연락처를 우연히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만남을 제안한다. 그러나 뉴욕 유학 시절 자신과의 연애에 대한 추억을 소환하기를 거부하고 자카르타 상류층의 허영과 물질적 욕망만 보여주는 나오미와의 재회는 기아에게 씁쓸한 기분만 안겨준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어색한 침묵과 함께 각자 창 밖만 바라보던 기아와 나오미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이스띠끌랄 사원과 자카르타 대성당이 이처럼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다는 걸 난 오늘 처음 알았어.”
“비네까 뚱갈 이까(Bhinneka Tunggal Ika, 인도네시아 국가 모토로 ‘다양성 속의 통일’을 의미)라 하잖아.”
“거기에 종교가 큰 역할을 하네.”
“그러게 말이야. 여기에 우리를 위한 공간은 없어.”

그리고 나오미는 뉴욕에서 돌아온 후 가족, 종교, 사회적 기대의 압박 속에서 비규범적 성애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편협한 시각과 태도를 뼈저리게 느꼈으며 이에 이성애 제도에 순응하는 길을 따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털어 놓는다. 이때 기아는 창 밖으로 보이는 론스타 호텔 간판을 발견하고는 나오미에게 단 하루만 ‘뉴욕에 있는 것처럼’ 보내자는 제안을 하고, 두 여성은 호텔로 향한다. 이처럼 이들은 비규범적 성애를 향한 닫힌 공간, 자카르타 한 복판에서 ‘퀴어 되기’를 위한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Murtagh 2022: 132).

영화 Selamat pagi, Malam (2014) 의 한 장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이스띠끌랄 사원(Masjid Istiqlal)과 자카르타 대성당(Gereja Katedral Jakarta)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인도네시아가 강조하는 ‘관용(인도네시아어로는 toleransi 똘레란시)’의 상징적 초상이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까르노는 이스띠끌랄 사원과 대성당을 의도적으로 마주보는 위치로 건축한 이유가 독립에 대한 상징일 뿐 아니라(istiqlal은 ‘독립’을 의미) 형제애, 단결, 빤짜실라(Pancasila 인도네시아 국가 철학)에 부합하는 종교적 관용의 정신을 상징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바 있다.1) 그러나 기아와 나오미의 짧은 대화는, 다원성과 관용의 가치를 강조하는 국가 모토 “다양성 속의 통일”이 이슬람 중심의 인도네시아 사회 내에서 어떻게 제한되고 있는지 퀴어의 렌즈를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띠끌랄 사원과 자카르타 대성당의 모습 (출처: Dreanstime)

이는 국민 대다수의 종교인 이슬람교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태도와 사고를 통제하는 도덕적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통합을 위해 국가가 그토록 강조하는 관용의 가치는 성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성적 욕망을 자유롭게 발현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감독의 비판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다수 종교 이슬람의 영향과 낮은 동성애 포용도

최근 들어 성다원주의와 성자유주의 관점에서 인간의 성애는 다양하며 성애 간에 좋고 나쁨,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성적 지향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신념과 합의가 많은 문화권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여전히 많은 사회가 동성애를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제재를 가하고, 심지어 처벌까지 하는 국가도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이성애만을 규범적 성애로 규정하고 이성애 외의 섹슈얼리티를 비정상적이며 문제적 성애로 간주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사회학자이며 인도네시아 성소수자 단체 <가야 누산따라(GAYa Nusantara)>의 창립자인 우또모(Dede Oetomo)2)는 인도네시아 군도 내 많은 전통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제도화된 동성애가 존재했으며 이를 수용하는 태도가 발견되나 서구화로 지칭되는 근대화와 이슬람의 유입 이후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배제, 금기, 폄하 등으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적 가치가 동성애를 문명의 반대편에 자리매김하여 미개하고 타락한 섹슈얼리티로 규정했으며, 엄격한 성 윤리를 강조하는 이슬람에 의해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며 병리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는 것이다(Oetomo 2003: 47).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전체 인구의 약 87%로 세계 최다 무슬림 인구를 지닌 나라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배경으로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의 종교인 이슬람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강한 이성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은 결혼이라는 허용된 제도 외의 모든 성관계를 금지하고 동성애를 인간 본성을 손상시키는 성적 일탈 행위로 간주한다. 즉 이슬람은 동성애가 인간의 본성과 도덕성을 해치는 타락한 행위이며 죄악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Salim 2014: 22-23). 이에 이성애만이 본질적이고 정상적이며 종교적 섭리라 믿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이성애 외의 섹슈얼리티를 실천하는 이들에게는 정상/비정상’의 잣대에 윤리적 가치판단까지 더해져 부도덕함, 죄악 등의 이유로 사회적 제재, 낙인, 혐오 등이 가해진다.

극단적 예로 인도네시아에서 공식적으로 코란과 하디스를 근간으로 샤리아 법을 채택하여 적용하는 수마뜨라 아쩨주(州)는 2014년 9월에 동성 간 성관계를 불법화하고 이에 대해 최대 100대의 태형을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2017년 5월 아쩨주에서 두 남성이 ‘liwath(sodomi의 동의어로 ‘남성 간의 항문 성교’라는 의미)’라는 죄목으로 각각 83대의 공개 채찍형을 받았는데, 이는 인도네시아 내 최초의 동성애 관련 공식 처벌이다. 이외에 경찰이 자카르타의 한 사우나에 급습하여 포르노법(UU tentang Pornografi)을 적용하여 144명의 동성애자를 체포하고, ‘게이 파티’를 열었다는 이유로 도심의 한 사적 모임을 급습하여 자리에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HIV 검사를 강요했다는 등 내용의 언론 보도 또한 인도네시아 성소수자들이 겪는 억압과 사회 내 낮은 동성애 포용도를 시사한다.3)

수하르또 정권 퇴진과 퀴어 담론의 가시적 확산

인도네시아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특히 인권단체와 여성단체가 주축이 되어 이들에 대한 법적·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성적 지향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담론이 활발하게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1998년 수하르또 정권의 퇴진 이후, 인도네시아 사회 전 영역에 개방과 표현의 자유를 지향하는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반향 중 하나로 문학, 예술, 대중 문화 등의 분야에서 그동안 사회 문화적으로 금기시되어 왔던 성의 문제를 다루는 텍스트가 양산되었다. 이러한 기류는 사회 내 여러 영역에서 성적 다양성을 논하는 공간을 마련했고, 동성애를 비롯한 비규범적 성애와 젠더 관련 이슈의 가시적 확산이 한동안 크게 포착되었다.

문단에서는 그간 암묵적 금기였던 성애 묘사를 대담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풀어낼 뿐 아니라 동성애와 양성애 문제까지 거침없이 표현한 아유 우따미(Ayu Utami)의『사만 (Saman)』(1998)이 기폭제가 되어 동성애를 모티브로 다룬 작품들이 2000년대 이후 활발하게 등장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인도네시아의 권위있는 문예 경연대회에서 몇 해 동안 지속적으로 최고 작품상을 거머쥐며 소재, 주제의 참신성과 작품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처럼 오랫동안 이성애주의 권력에 의해 소외되고 은폐되었던 동성애 문제를 동시대 인도네시아 작가들이 문학이라는 장을 통해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작업은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조응의 시도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이연 2021: 29).

동성애를 모티브로 다룬 <자카르타 문예경연대회(Sayembara Menulis Dewan Kesenian Jakarta)> 수상작-
사르띠까(Dewi Sartika)의『다다이즘(Dadaisme, 2004)』, 꾸말라(Ratih Kumala),『타불라 라사(Tabula Rasa, 2004)』,
빠사리부(Norman Erikson Pasaribu)의「그가 시를 쓰는 동안(Selagi Ia Menulis Puisi, 2015) 」(좌에서 우로)

동성애 또는 성소수자 담론의 가시적 확산은 대중문화 특히 영화 분야에서도 발견된다. 수하르또 정권의 퇴진 이후, 이전 시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대안적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일군의 영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중 큰 관심과 논의를 불러 일으킨 퀴어 영화는 1999년 오랜 독재 정권의 퇴진과 맞물려 개봉된 <막다른 길(Kuldesak; Cul-de-sak)>이다. 리자(Riri Riza)외 3명의 감독이 공동 제작한 이 영화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결국 이별하는 주인공 게이 커플을 포함하여 여러 성소수자 등장인물을 전면적으로 내세워 인도네시아 사회 속 “퀴어 읽기”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퀴어 영화의 맥을 잇는 동시에 그 수준을 한층 끌어 올린 영화는 니나따(Nia Ninata)감독의 <친목계!(Arisan!; The Gathering)>(2004)이다.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 대중 영화 중 처음으로 동성 간의 키스 장면을 편집 없이 그대로 상영하여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이전까지 검열이나 대중의 반응, 사회적 논란 등을 이유로 삭제되거나 흐릿한 영상 처리로 가공되었던 퀴어의 성적 친밀감을 대담하게 선보였다는 점에서 성소수자 관련 비규범적 성애에 대한 미디어 재현의 기념비적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퀴어를 다루는 미디어와 대중 문화 텍스트의 개방적 자세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Murtagh 2022: 124).

영화 <Arisan! (2004)> ,<Arisan!2 (2011)>와 <Arisan!2 >의 한 장면-

2011년에 전편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8년 후 삶을 다룬 속편 <친목계!2 (Arisan! 2; The Gathering 2)>가 개봉되었다. 영화는 두 여성이 친구 니노(Nino)의 영화를 보기 위해 퀴어 영화제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뚫고 영화제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게이이며 퀴어 영화 제작자인 니노는 자신의 영화 상영 전 무대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 “이 영화제가 7년째 열리고 있는데, 왜 올해에 이 영화제를 반대하는 시위가 있는 걸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니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좋은 질문입니다만, 저도 사실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저는 이 나라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니노의 대답은 몇 년 후 인도네시아에서 급격하게 확산되는 반(反) 성소수자 담론의 물결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두 여성이 퀴어 영화제를 반대하는 시위에 휘말리는 영화의 첫 장면은 한 해 전인 2010년 자카르타 퀴어 영화제 <Q! Film Festival Jakarta>가 급진주의 성향의 단체 ‘이슬람수호자전선(Front Pembela Islam 이하 FPI)’의 시위 협박을 받은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FPI는 퀴어 영화제가 서구에서 유입된 퇴폐적 성애인 동성애를 조장하는 등 국가 도덕성을 훼손한다고 비난하며 행사 취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퀴어 영화제와 오랜 파트너십을 맺었던 기관과 단체들은 FPI와 자경단체가 가할 잠재적 위협을 이유로 행사 후원을 거부했고, 경찰마저 행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결국 제 10회 자카르타 퀴어 영화제는 더 이상 활기찬 도심 축제가 아닌 ‘비밀스럽고 은밀한 이벤트’로 열리게 되었다.4) 그리고 2017년에 영화제 설립자 바달루(John Badalu)는 트위터를 통해 지난 몇 년간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영화제가 더 이상 지속되기가 어려우며 언젠가 때가 되면 돌아오겠다는 내용으로 영화제 중단 발표를 했다. 이로써 소수 집단의 ‘표현의 자유’ 정신이 선도한 새로운 독립 문화의 일부였던 자카르타 퀴어 영화제는 15년만에 막을 내렸다.

<Q! Film Festival Jakarta> 포스터, 영화제 설립자 바달루(John Badalu)의 영화제 중단 발표 트위터 전문-

성소수자 관련 공적 과잉 히스테리와 반(反) 성소수자 정서 급증

<친목계!2>의 등장인물 니노의 대답처럼, 몇 해 후 인도네시아 사회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성적 지향의 다양성에 대한 바람이 인정과 존중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2016년 초 장관을 비롯하여 일부 고위직 공무원, 정치인 등의 노골적인 반 성소수자 발언이 인도네시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악하면서 성소수자를 둘러싼 열띤 논쟁이 큰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그 물꼬를 튼 것은 2016년 1월 24일 고등교육 및 기술 연구부 장관 무함맛 나시르(Muhammad Nasir, Menteri Riset Teknologi dan Pendidikan Tinggi)의 대학 캠퍼스 내 성소수자 동아리 활동 금지 발언이다. 이에 대한 항의가 불거지자 그는 곧바로 트위터에서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으나, 뒤늦은 철회였고 그 여파는 상당했다. 수마뜨라 소재 람뿡 대학교(Universitas Lampung)총장은 성소수자 활동에 관여하는 학생과 교원에 대해서는 퇴학과 해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고, 브라위자야 대학교(Universitas Brawijaya)는 학내 성소수자 테마 관련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 나시르 장관의 발언 이후 4월까지 대략 3개월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고위 공직자, 정치인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공개적 적대 발언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그 중 많이 언급된 것은 성소수자 단체들이 단체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현상을 대리전쟁(Proxy War)의 위험성에 비유한 국방부 장관 랴미자르드 랴쭈두(Ryamizard Ryacudu, Menteri Pertahanan)의 발언이다. 그는 “자카르타에 원자폭탄이나 핵폭탄이 투하되면 자카르타는 파괴되나 스마랑(Semarang,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 위치한 도시)는 무사하다. 하지만 무기가 아니라 사고를 이용하는 현대전이라면 모든 것이 파괴된다. 이런 전쟁에서 우리는 적을 볼 수 없다. 특히 (성소수자들이) 온갖 종류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를 왜곡하는 것이 위험하다”라고 말했다.5)

출처: 국제인권감시(HRW) 2016년 보고서

이어 대규모 주류 종교 단체와 비정부 단체가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공개적 비난 ‘합창’에 합류했고,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사회 문화적 풍토와 종교 규범에 어긋나는 성적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져갔다. 또한 이러한 여론의 힘을 등 뒤에 업은 지방 정부, 경찰, 자경단체들이 성소수자 단체나 인권 운동가 그리고 성소수자 개개인을 대상으로 물리적 폭력 행위를 감행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이에 2016년 국제인권감시(Human Right Watch)의 보고서는 “정치게임이 우리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위협 속의 인도네시아 성소수자(“Permainan Politik Ini Menghancurkan Hidup Kami” Kelompok LGBT Indonesia dalam Ancaman) ”라는 제목으로 인도네시아 성소수자들이 전례 없는 큰 공격과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들의 안전과 인권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내용을 담았다(HRW 2016:8).

“FPI, 성소수자 색출을 위해 반둥의 하숙집 스위핑(“Cari Kaum LGBT, FPI Sweeping Rumah Kos di Bandung”)”6)
출처: 현지 언론

선동과 위협의 꼬리표 그리고 침묵 당한 성소수자의 목소리

“소셜 미디어 등에 대한 검열로 국민의 사적 삶을 간섭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결코 선동적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동성 결혼의 합법화가 아니라 가장 기본권인 자유와 프라이버시, 안전이라는 것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HRW 2016, 62)

인도네시아 성소수자 현황에 대한 2016년 국제인권감시 보고서에 언급된 한 남성 동성애자의 발언이다. ‘거창한’ 법적·제도적 개선도 아니고 사회 구성원의 가장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사적 삶의 영역에서의 자유와 안전이 성소수자로서 간절한 그의 바람이라는 말에서 동시대 인도네시아 성소수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읽혀진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회내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선동’의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과 이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이에 대한 존중과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의 활동을 격렬히 반대하는 보수 세력의 발언을 면밀히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선동과 위협으로 연결 짓고 있음이 발견된다. 즉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겠으나 이들이 집단적 요구나 주장을 내세우는 일은 국가의 전통 가치와 도덕성에 대한 위협이 되는 선동적 행위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발언 요지이다.7)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성소수자의 공적 목소리와 활동, 연대 등과 관련된 모든 것을 ‘선동’과 동일시하는 주장에 항상 사용되는 ‘그락깐(Gerakan 움직임, (사회) 운동 등을 의미)’이라는 표현이다. 이 단어는 한때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 사건을 지칭했던 용어 ‘G30S PKI (Gerakan 30 September PKI의 약어로 9월 30일 공산당 주도 쿠데타 지칭)’8)를 통해 국민 기억 속에 소요와 불안, 경계심 등의 감정으로 저장되어 있으며 국가적 차원의 제한 또는 간섭의 필요성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과거 수하르또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 용어가 동시대에 소환되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과 지지, 존중의 발판을 넓히고자 하는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9)

정리하자면, 인도네시아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공감과 소통의 환경이 조성되기가 어려운 가장 큰 사회문화적 요인은 다수 종교 이슬람이라는 이름의 견고한 벽이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성적 지향을 사적 영역에만 허용하고 공적인 삶과 매개하는 것을 부정함으로써 성소수자들을 폭넓은 권리로부터 배제하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성소수자의 연대 또한 녹록지 않다.

‘서로 다르지만 하나이다’라는 의미의 인도네시아 국가 모토 ‘비네까 뚱깔 이까(Bhinneka Tunggal Ika)’는 사회 전 구성원이 다름에 대한 인정과 존중,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화합과 통합을 이루는 공통체의 길잡이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이 길잡이가 이끄는 다원성의 울타리 안에 다양한 성 정체성에 대한 포용의 자리가 없는 듯하다. 영화 <밤의 부재>에서 “여기에 우리를 위한 공간은 없다”라는 나오미의 말이 강한 울림으로 남는다.

저자소개

이연(leeyeon@hufs.ac.kr)은
인도네시아국립대학교(Universitas Indonesia)에서 엔하 디니에 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 인도네시아어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연구논문으로 “여귀와 아름다움의 신화 균열 내기: 「엄지발가락이 없는 눈먼 여인」과 「폴라로이드의 미스터리」를 중심으로(2022),” “2000년대 인도네시아 소설에 나타난 동성애 모티브 고찰(2021),” “인도네시아 소설 속 레즈비언 :『타불라 라사』와『나일라』를 중심으로(2019),” “인도네시아 칙릿(Chick-lit)에 나타난 여성의 독신과 미(美)에 대한 담론 연구(2018)”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먼지 위의 먼지(Debu di atas Debu)』(2017),『발리의 춤(Tarian Bumi)』(2016)을 출간했다.


1) 현지 언론
https://metro.sindonews.com/read/626777/171/masjid-dan-gereja-berdampingan-di-jakarta-nomor-4-lebih-dari-100-tahun-1639375950 참고.

2) 데데 우또모(Dede Oetomo)는 1982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게이 단체 <람다 인도네시아(Lambda Indonesia)>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미디어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의 인권 홍보 활동과 성소수자들이 여러 전문가의 조언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뉴스레터 제작 등의 활동에 주력하다가 1986년에 해산되었다. 2000년부터 단체 창립일인 3월 1일은 ‘국가 성소수자 연대의 날(Hari Solidaritas LGBTQ)’로 기념되고 있다. 이후 그는 1987년에 성소수자 단체 <가야 누산따라(GAYa Nusantara)>를 설립하였다. 두 단체의 창립자인 우또모는 인도네시아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크게 기여한 활동가로 손꼽히며 1998년 IGLHRC (국제레즈비언게이인권위원회)로부터 ‘Felipa de Souza’상을 수상했다.

3) 2017년 5월 22일자 현지 언론 기사 “아틀란티스 사우나에서 144명의 남성이 자카르타 북부 관할 경찰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추측(144 Pria Atlantis Diduga Diperlalukan Tak Seronoh Polres Jakut)” https://www.suara.com/news/2017/05/22/125453/144-pria-atlantis-diduga-diperlakukan-tak-senonoh-polres-jakut?page=all, 2020년 9월 2일자 현지 언론 기사 “자카르타 꾸닝안 게이 파티에 경찰 급습, 수십 명의 남성 체포(Pesta Gay di Kuningan Jakarta Digerebek, Puluhan Pria Diamankan Polisi)”
https://metro.sindonews.com/read/151498/170/pesta-gay-di-kuningan-jakarta-digerebek-puluhan-pria-diamankan-polisi-1599012583 참고

4) 퀴어 시네마 연구자 빠라마디따(Intan Paramaditha)는 ‘문화적 행동주의(Cultural Activism)’로서의 자카르타 퀴어 영화제를 고찰한 연구논문에서 <제 10회 Q! Film Festival Jakarta>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011년 10월 어느 저녁, 어두운 좁은 골목을 지나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국립 도서관 단지 내 한적한 강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제 10회 Q! Film Festival’ 이 열리는 곳이었다. 불편한 의자와 딱딱하고 관료적인 분위기의 강당은 아시아의 가장 큰 퀴어 영화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행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영화제는 전국 언론의 홍보와 함께 외국문화기관, 주류 영화관 등의 후원으로 열리는 활기찬 도심 축제였다. 그러나 제 10회 행사는 마치 비밀스러운 파티처럼 변해 버렸다. 오프닝 행사는 초대장 소지자에게만 제한되었고, 일반 관객은 영화상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행사 웹사이트에 회원 등록을 하고 패스워드를 받아야 했다.”(Paramadhita 2018: 75).

5) 2016년 2월 23일자 현지 언론 기사 “국방부 장관, 성소수자는 대리 전쟁의 일부이다(Menteri Pertahanan: LGBT Itu Bagian dari Proxy War)” https://nasional.tempo.co/read/747529/menteri-pertahanan-lgbt-itu-bagian-dari-proxy-war. 참고

6) FPI가 제작한 사진 속 현수막에는 “우리 지역에 레즈비언과 호모출입금지”라고 적혀있다

7) 예를 들어 자카르타 지방의회 의원 이드리스(Fahira Idris, Anggota DPD DKI Jakarta)는 인도네시아에서 성소수자의 행동이 더 이상 개별 행위가 아닌 조직적이며 대규모적 ‘운동(gerakan)’으로 변모했음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반둥 주지사 까밀(Ridwan Kamil, Gubernur Ridawan Kamil)의 발언 역시 이와 유사하다. 성적 취향은 사적인 영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공개적으로 이를 노출하거나 캠페인을 벌이는 등의 ‘운동(Gerakan)’은 국가의 전통 규범과 윤리에 어긋하는 행위이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단체의 합법화 요구를 대리전의 위험성에 비유하며 경계해야 한다는 국방부 장관의 발언 또한 같은 맥락이다.
https://www.arrahmah.id/2016/02/15/fahira-idris-lgbt-jangan-memaksakan-atau-kami-lawan,
https://regional.kompas.com/read/2016/01/26/17222681/Ridwan.Kamil.Tak.Permasalahkan.LGBT.tetapi. 참고

8) 1965년 10월 1일 새벽에 빤짜실라 기념비를 지키는 6명의 장군과 1명의 장교가 살해당하고 그 시신들이 루방 부아야(Lubang Buaya)에 버려진 사건이다. 수하르토 정권 시기에는 이 사건을 ‘G30/S PKI’ 라는 용어로 지칭했으나, 그의 정권 몰락 후 이 사건이 왜곡되었다는 여러 보고와 연구 등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1965년 사건(Peristiwa 1965)’이라고 칭한다.

9) ‘1965년 사건’을 진압하여 정권을 잡은 수하르또는 ‘OTB’(‘형태 없는 조직’을 의미하는 Organisasi Tanpa Bentuk의 약어로 국가 안전과 안정을 위협하는 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지하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조직을 지칭)라는 용어를 통해 전 사회구성원에게 Gerakan 은 언제든 OTB로 변모할 잠재력이 있으니 이를 경계하도록 내면화 시키는 동시에 Gerakan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제한을 정당화했다(Paramadhita 2016).


참고문헌

  • 이연. 2021. “2000년대 인도네시아 소설에 나타난 동성애 모티브 고찰.” 동남아연구 31권 1호, 1-34.
  • Murtagh, Ben. 2022. “There’s No Place for Us Here: Imaging Queer Spaces in Indonesian Cinema.” Indonesia and the Malay World. Vol. 50, 118–138.
  • Dede, Oetomo. 2003. Memberi Suara pada yang Bisu, Yogyakarta: Pustaka Marwa.
  • Salim, Agus. 2014. “Homoseksual dalam Pandangan Hukum Islam.” Jurnal Ushuluddin Vol. 21(1): 22-35.
  • Paramadhita, Intan 2018. “Q! Film Festival as Cultural Activism: Strategic Cinephilia and the Expansion of a Queer Counterpublic.” Visual Anthropology 31: 74–92.
  • ————— . 2016. “The LGBT debate and the fear of ‘gerakan,’” Jakarta Post, 27 February. https://www. thejakartapost.com/news/2016/02/27/the-lgbt-debate-and-fear-gerakan.html.
  • Human Rights Watch. 2016 “‘These Political Games Ruin Our Lives’; Indonesia’s LGBT Community under Threat.” New York: Human Rights Wa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