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언어 정책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면서 종족에 따라 각기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정책으로 요약된다. 다종족 사회 싱가포르의 국민은 모두 영어를 ‘실용성의 언어’로 사용하는 동시에 각 종족의 언어를 ‘정체성의 언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싱가포르의 언어 정책이 인구의 75%를 구성하는 중국계 주민들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영국 식민통치 시기 엘리트의 언어 규범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일반 주민에게 강요되면서 나타난 부작용과 한계에 주목한다.
최서연(아시아연구소)
싱가포르의 공용어와 언어 정책
말레이반도 끝자락의 섬, 싱가포르는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를 받다가 1965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국가로 독립했다.1) 말레이시아의 경우, 1957년 독립 당시 말레이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가 1970년부터는 말레이어를 공식적 단일 공용어로 삼았다. 반면에, 싱가포르의 공식어는 영어이며, 국어는 말레이어, 공용어는 영어, 만다린(표준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이다. 하나의 언어를 공식어로 삼는 대신에 복잡한 공용어 정책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영어는 정부 및 공공영역에서 종족과 관계없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이고, 말레이어는 싱가포르 지역의 토착어이자 모든 국민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이며, 만다린, 말레이어, 타밀어는 각각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국민이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나가는 데 사용하는 언어로 규정된다. 싱가포르가 채택한 이중언어정책(bilingualism)은 모든 국민이 영어와 더불어 종족별 모국어를 익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정책을 보고 중국계는 중국에서 온 화교이니 만다린을 쓸 것이고, 말레이는 원래 말레이어를 사용했고, 인도계는 대부분 인도 남부에서 왔으니 타밀어를 사용하는데, 다양한 종족이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영어를 공용어로 삼는다고 생각해도 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중언어사용으로 요약되는 싱가포르의 언어 정책은 국민이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반영’하지 않는다. 정책의 목표는 오히려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국가발전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도록 ‘강제로 바꾸어놓는’ 것이었다. 다종족 사회이지만 인구의 약 75%가 중국계인 싱가포르에서,2) 이러한 정책은 ‘실용성의 언어’인 영어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중국계) 정체성의 언어’인 만다린을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국가 수립 당시, 이곳의 중국계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언어는 영어도 만다린도 아니었다. 심지어 대부분은 이 두 언어를 말하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2020년의 통계를 보면, 중국계 주민 가운데 가정에서 영어를 쓰는 비율이 48.3%이고 만다린을 사용하는 비율도 29.9%에 달한다. 중국계 주민들은 어떻게 수십 년 만에 사용하는 언어를 바꿀 수 있었을까?
정책 입안자의 관점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겠다는 계획을 추진했고 의도했던 결과도 얻었으니, 이 정책은 성공했다. 게다가 정부의 주장대로 이러한 정책이 오로지 국가발전과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면, 국민도 마땅히 정책의 성공을 환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최상위 엘리트가 장악한 싱가포르의 정부는, 오랜 기간 일상에서 사용하던 언어를 단기간에 바꾼다는 것이 평범한 대다수 국민에게 어떤 어려움을 초래할 것인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싱가포르의 주요 언어 정책을 짚어보고, 엘리트의 시각에서 수립되고 시행된 정책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구속하면서 생겨난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 중국계 주민의 경험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싱가포르의 중국계 주민은 누구인가?
현재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지역에는 이미 15세기부터 해상무역을 통해 정착한 중국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으로부터의 대규모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말레이반도 남단에 영국의 정착식민지(Straits Settlement)가 들어선 19세기 초부터이다. 이들 대부분은 중국 남부지역 출신으로 플랜테이션 농장 노동자, 공사장 인부, 항구의 짐꾼, 인력거꾼 등으로 일했으며, 이들의 후손이 현재 싱가포르 중국계 주민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중국 출신 이주자들은 싱가포르에 도착해서도 출신 지역의 언어를 계속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다수의 방언 집단으로 구분된다. 1957년 싱가포르 중국계 주민의 방언 집단별 구성비는 호키엔(Hokkien) 40.6%, 테오추(Teochew) 22.5%, 칸토니즈(Cantonese) 18.9%, 하이나니즈(Hainanese) 7.2%, 하카(Hakka) 6.7% 등이었으며(Chong, 1999), 2000년의 통계에서도 그 비율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Lee, 2001).3)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른 방언을 계속 사용한 것은 이들의 언어 습득이 학교가 아닌 거주지, 일터, 가정 등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정부는 중국과 인도 등지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를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갈 임시 주민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유한 중국인 유력자와 선교사들의 후원으로 전통 방식의 중국어학교들이 세워졌지만, 이러한 교육을 원하고 또 접근할 수도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근대식 중국어 교육기관이 성장하지만, 오래지 않아 정치적 제약에 맞닥뜨리게 된다. 한편, 영국 식민정부나 선교사들이 세운 영어학교는 식민지배에 협조적인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배타적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독립 이후 1980년까지 25세 이상 싱가포르 국민의 44%는 학교 졸업장이 없었으며, 38%는 초등학교 졸업, 15%는 중등학교(중고등학교가 합쳐진)를 졸업했을 뿐이었다(Owen, 2005:425). 당시 집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중국계 주민의 비율이 80%를 넘었다는 것은, 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의 일상에서 방언이 담당한 핵심적 역할을 드러낸다.
싱가포르의 엘리트와 대중은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인 리콴유(Lee Kwan Yew)는 1990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했고, 총리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2015년 사망할 때까지 싱가포르 정부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4) 그는 자원도 없는 작은 도시 국가 싱가포르를 부강하게 만든 합리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는 리콴유를 중국에서 건너온 “객가(客家)” 집안 출신의 “화교”라고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리콴유가 도입한 언어 정책은 그의 언어적 가치관과 신념이 “중국, 객가, 화교”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과 동떨어져 있음을 드러낸다. 그는 식민지 엘리트로 체득한 언어 규범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영국 식민지 사회구조의 언어적 골격인 ‘영어(English) 대 구어체 모국어(Vernacular)’의 구분을 재생산했다(Sonntag, 2003; Pennycook, 1994). 싱가포르 정부가 채택한 이중언어정책은 표준 영어 중심의 언어 규범이 모국어를 포함하는 일상 언어의 다양성을 억누르는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다.
리콴유의 집안 배경은 싱가포르에 이주해서 가난한 노동자로 살아갔던 대부분의 중국계 이민자나 그 후손들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그의 집안은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기 전에 동남아시아로 건너와 토착화를 거치며 정착한 해협화인(Straits Chinese) 또는 퍼라나칸(Peranakan)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성공한 해협화인은 영국의 식민지배 시기에 영어로 이루어지는 서구식 교육을 받고 영국과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권층 화인 사회의 일원이었던 리콴유가 가족들 사이에서 처음 배운 언어(Native language)이자 그가 다녔던 모든 학교의 공용어는 당연히 ‘영어’였다. 그는 어려서 말레이어를 익혔지만, 정작 중국계 주민의 모국어로 여겨지는 만다린은 20대가 되어서야 습득했으며, 중국계 방언인 호키엔, 테오추, 칸토니즈는 물론 집안 조상의 언어인 하카도 사용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이중언어 정책을 설계한 고켕쉬(Goh Keng Swee) 또한 그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인물로, 리콴유와는 런던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인연을 맺었다. 이들의 서구지향적 엘리트주의는 고촉통(Goh Chok Tong) 등 다음 세대 관료에게도 이어졌다(Owen, 2005:425).
그렇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엘리트와 방언을 사용하는 대중들은 어떻게 ‘소통’했을까? 싱가포르에서 권력을 잡은 엘리트는 정치적 정당성의 기반이 ‘대중의 지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지적인 우월함’에서 나온다고 확신했다. 여기서 국민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좋은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엘리트 지도자들이며, 국민은 현명한 지도자가 판단하는 방향을 따라야만 하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태도는 리콴유와 그의 협력자들이 만들어 낸 언어 정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즉 국가발전을 위해 국민이 어떤 언어로 소통해야 하는지는 정부가 결정할 일이며, 국민은 정부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평범한 국민은 엘리트의 언어 규범을 정책적으로 강요받게 되었다.
‘실용성 대 정체성’의 이분법이 간과하는 언어 현실
싱가포르의 언어 정책은 흔히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면서 종족에 따라 각기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정책으로 요약된다. 영어는 실용적이고 중립적인 언어로서 경제발전과 국민 단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국민을 구성하는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다양한 종족은 각기 자신들의 모국어인 만다린, 말레이어, 타밀어를 통해 조상과의 유대와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용성을 위한 영어’ 더하기 ‘정체성을 위한 모국어’라는 기능적 이분법은 과연 정부가 공식적으로 표명한 취지에 맞는 효과를 거두었을까?
식민지 시기 이래 오랫동안 영어를 사용하며 높은 지위를 누렸던 엘리트 관료층은 자신과 확연히 다른 대중의 언어 사용방식을 정책적 교정을 요구하는 잘못된 관습으로 간주했다. 1979년의 “만다린 말하기 운동(Speak Mandarin Campaign),” 1981년의 방언 사용 규제정책, 1987년 모든 학교의 영어학교 전환, 그리고 2010년부터 이어진 “바른 영어 말하기 운동(Speak Good English Movement)”은 언어에 대한 정부의 엘리트주의적 접근을 일관되게 드러낸다. 정부는 국민이 엘리트적 언어 규범을 따르도록 권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국민의 일상적 언어 활동을 정책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려 했다. 또한, 관료들은 정책을 도입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이 널리 사용하는 언어, 특히 중국어 방언과 토착화된 영어 싱글리쉬(Singlish)에 대한 경멸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싱가포르에 독특하게 형성된 언어지형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간과함으로써 결국 국민의 언어를 통제하는 데 있어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영어는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는 실용성과 종족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중립성의 언어가 될 수도 있지만, 엘리트와 평범한 대중을 차별 짓고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를 갈라놓는 ‘단절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종족의 차이가 언어 다양성의 구도를 결정한다는 정책의 전제와는 달리, 현실에서 종족과 언어는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역사에서 언어적 다양성은 종족의 내부에서 분화되거나, 종족의 경계를 넘어 교차하거나, 심지어 광범위하게 혼합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Wee, 2010:98). 중국계 주민들 가운데에서도 방언, 만다린, 또는 영어를 주로 쓰는 사람이 존재하며, 말레이나 인도계 주민이 만다린을 쓰기도 하고, 다양한 언어가 혼합된 싱글리쉬가 널리 통용된다. 싱가포르의 언어 정책이 지닌 오류와 한계는 정책 도입 후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만다린 말하기 운동”과 “강요된 모국어”
1979년 싱가포르 정부는 “만다린 말하기 운동(Speak Mandarin Campaign, SMC)”을 시작했다. 당시까지도 중국계 주민 대부분이 태어나서 처음 배운 언어는 만다린이 아니라 호키엔, 테오추, 칸토니즈 등 중국 남부지역의 ‘방언’이었다. 싱가포르에는 1820년대부터 중국인 사업가나 선교단체의 후원으로 중국어학교들이 설립되었지만, 무역항과 고무농장 등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중국계 이주민이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1900년대로 들어서면서 식민정부는 중국에서 교사와 교재를 들여와 가르치는 중국어학교를 중화민족주의, 공산주의, 반식민주의 확산의 온상으로 지목했고, 1930년대부터 이들을 영어학교로 전환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렇게 열악하고 불안정한 식민지의 교육상황에서 중국어 문자 전통에 기대어 중국 본토의 상층계급과 지식인처럼 정교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게다가 영국 식민지에서 만다린은 경제적 성공과 신분 상승의 언어가 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Goh and Gopinathan, 2008:80; Tan Liok Ee, 1997).
흥미로운 것은, 만다린 사용능력의 부재가 가난한 노동자 계층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시기에 엘리트의 지위에 오른 중국계의 경우, 오래전부터 영어로 교육받았으며 중국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싱가포르 언어 정책의 근간을 만든 리콴유와 고켕쉬도 바로 이러한 부류에 해당한다. 한때 그들에게 만다린은 배워야만 쓸 수 있는 낯선 언어였으며, 결국에는 영어만큼 익숙해지기 어려운 언어이기도 했다. 심지어 1965년 리콴유는 만다린 교육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력 인사들을 지목하여 “국수주의적 중화민족주의 추종자(Chinese chauvinist)”이자 위선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5) 반면 영어를 실질적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말레이어에 국어의 지위를 부여하고, 네 언어(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를 공식어로 인정한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올바르고 좋은” 결정이었다고 옹호했다(Prime Minister’s Office, 1965).
그런데도 왜 정부는 중국계 주민이 일상에서 사용했던 남부지역 방언 대신 만다린을 공식 모국어로 삼았을까? 영국으로부터 갓 독립한 나라에서 국가경제 발전을 명분으로 영어를 우선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선택”이었다. 영어 사용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잠재우고 자녀들과의 문화적 단절을 우려하는 부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부는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Goh and Gopinathan, 2008: 83). 만다린은 대다수 국민의 조상이 뿌리를 둔 중국의 표준적인 언어이지만, 싱가포르의 일상에서는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1980년까지도 가정에서 만다린을 주로 사용하는 중국계 주민의 비율은 10% 이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오랜 문자 전통을 지닌 만다린을 중국계 주민의 공용어로 사용한다면 방언 집단의 구분을 넘어 사회적 결속을 다지고 공통의 문화 전통을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만다린은 싱가포르의 중국계 주민에게 정책적으로 “강요된 모국어(Imposed Mother tongue)”가 되었고, 가정에서 만다린을 사용하는 중국계 주민의 비율도 빠르게 증가했다(Chong, 1999).
그러나 싱가포르의 언어 정책에서 만다린은 어디까지나 ‘실용성의 언어’인 영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1983년에 정부는 모든 학교가 1987년부터 영어로 수업해야 한다고 발표했고, 그때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중국어학교들은 대부분 문을 닫게 되었다.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명성이 높던 일부 학교들만 주요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조건으로 정부의 특별 지원(Special Assistance Plan, SAP)을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성적이 뛰어난 중국계 학생들만 모아서 영어로 가르치는 이중언어 엘리트 중등학교군이 형성되었다. 이런 학교에 진학하려면 초등학생 때 만다린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지만, 일단 진학에 성공하면 영어로 입시 공부에 전념하게 된다. 중국계 학생들이 일상어가 아닌 입시전략의 차원에서 만다린에 접근하면서, 정작 국내에서 만다린을 언어로 충실히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CNA, 2023/11/12). 특히 2010년대에 들어서는 만다린의 사용이 영어의 압도적 영향력에 밀려나고 있다는 진단까지 제기된다.6) 정부가 내세운 이중언어정책의 ‘실용성 대 정체성’ 이분법이 과연 양쪽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했는지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다.
대중 매체와 방언 사용금지
중국계 주민의 ‘모국어’로서 만다린을 권장하는 정책은 오히려 중국어 방언 사용의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뚜렷한 효과를 드러냈다. 정부는 중국어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공공연하게 꾸짖고 훈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영어와 종족 공용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느라 들이는 시간과 기운은 낭비이자 불필요한 부담(load)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리콴유는 영어로 채워 넣어야 할 두뇌의 유한한 저장능력을 방언을 사용하는 데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Johnson, 2017). 방언과 관련된 언어 정책은 어떤 언어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일 것인가라는 결정을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두는 대신 국가의 관리와 통제 대상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1981년에 정부는 TV와 라디오에서 방언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을 송출하거나 방언으로 된 대중음악을 트는 것을 금지하였다. 심지어 당시 인기가 있었던 홍콩 영화와 시리즈물도 모두 만다린으로 더빙해야지만 싱가포르 공중파 채널에서 방영할 수 있었다(Chan, 2014). 이렇게 중국계 국민의 절반 이상은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로 일상을 영위할 권리를 극도로 제한받게 되었다. 가정 이외의 영역에서 방언에 노출될 기회가 줄어들고 공적 영역에서의 방언 사용이 금지되면서, 만다린과 영어는 방언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유년 시절부터 늘 사용했던 언어를 짧은 기간에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강요된 모국어”를 배울 기회나 여력이 없었던 노동자 계층과 노년층의 중국계 주민들은 영어와 만다린이라는 낯선 언어로 돌아가는 주류 사회에서 소외와 단절을 경험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라디오를 켜봐도, 영화관에 가도, 흘러나오는 이야기와 노래는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로 되어 있었다. 영어와 만다린을 사용하는 이중언어 세대가 성장하는 동안 방언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면서, 방언 사용자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언어적 소수자이자 사회적 주변인이 되어 버렸다. 특히 조부모와 손주들 사이에 간단한 인사말과 친근감의 신체적 표현을 넘어서는 의사소통이 어려워진 것은 강압적 언어 정책이 초래한 가장 비극적인 결과로 지목된다(Chan, 2014; Johnson, 2017).
대중의 영어 싱글리쉬(Singlish)와 정부의 언어 검열
2000년 4월 정부는 “바른 영어 말하기 운동 (Speak Good English Movement, SGEM)”을 시작하였으며, 현재까지도 해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있다.7) 외형적으로 이 정책은 표준 영어 사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널리 사용하자는 캠페인이지만, 실질적인 핵심은 싱가포르의 구어체 영어인 싱글리쉬의 사용을 검열하고 규제하는 것이다. 싱글리쉬는 영어와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레이어, 타밀어, 중국어 방언의 어휘가 결합한 싱가포르의 토착화된 영어이다. 정부는 싱가포르의 국제 경쟁력을 위해 국민은 “바른 영어(Good English)”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싱글리쉬를 바른 영어 습득의 장애물로 간주했다. 1999년 리콴유는 싱글리쉬가 싱가포르 국민의 “약점(Handicap)”이라고 주장했으며(Sunday Times, 1999/08/15; Wee, 2010:99), 고촉통은 이를 싱가포르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진(Corrupted)” 영어로 규정했다.8)
정부가 특히 주목한 것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TV 시트콤 《푸아추캉(Phua Chu Kang)》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 거밋 싱(Gurmit Singh)은 싱글리쉬를 ‘찰지게’ 구사하는 ‘보통 싱가포르 사람’ 역할을 맡으며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면서 이 시트콤은 종결되고, 후속 시트콤에는 좀 더 표준 영어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싱가포르 방송진흥위원회(Media Development Authority)의 공중파 TV 프로그램 언어지침에 따르면, 싱글리쉬의 사용은 이것이 인터뷰 대상자가 사용하는 유일한 언어인 경우에만 허용된다(Wee, 2010:106).
물론 학교에서 문법에 맞는 표준 영어를 학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적인 맥락에서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구어체 영어를 국가 경제발전에 위해가 되는 것으로 지목하여 비난하고 검열하는 것은 타당한가?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국내외 명문 대학의 졸업장을 획득한 최상위 엘리트에게 표준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몸에 밴 일상의 언어 규범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수십 년 전까지 대부분의 평범한 싱가포르 주민은 영어를 일상어로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어로 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근면하게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짧은 기간에 습득해 사용하는 토착화된 영어를 엘리트의 관점에서 깎아내리는 태도의 부당함은 다음 인용문에 잘 드러난다.
싱글리쉬의 투박함은 싱가포르의 화려하지 않은 과거를 그대로 반영한다. 싱가포르는 100년 전에 이곳에 도착해 시끌벅적한 항구에서 쓰러지도록 일했던 미천한 이민자들의 피땀으로 건설된 나라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 선조들의 고생스러운 삶에서 나왔다. 싱글리쉬는 싱가포르라는 독특한 용광로 사회의 핵심 요소이다. 싱가포르는 하늘로 치솟은 은행 건물이 낡은 선박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도시이며, 최고급 요리를 내놓는 레스토랑 바로 옆에 삶은 돼지 창자를 파는 노점상이 있는 곳이다(Tan Hwee Hwee, 2002).
게다가 영어를 구사하는 다양한 방식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나름의 기능과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뉴스나 수능 듣기시험에 나올 법한 영어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어 사용의 맥락에 맞추어 얼마나 유연하게 다양한 스타일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가는 개인의 역량과 선택의 문제이지, 정부가 강요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엘리트적 언어 규범에 따라 싱가포르의 언어 현실을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조작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다수의 국민에게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비현실성으로 인해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해내기도 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로 정부의 언어 관련 지침이 변형되고 균열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TV 드라마와 중국어 방언의 부활: 어르신들을 위해서?
1981년에 정부는 싱가포르의 TV 공중파 방송에서 중국어 방언 프로그램을 퇴출시켰다. 그리고 2016년, 방언 프로그램 방송이 금지된 지 35년 만에 미디어코프(MediaCorp)의 채널8에 호키엔(Hokkien) 드라마가 다시 등장했다. 이미 2000년대 들어 규제 완화의 흐름이 감지되었지만, 중국어 방언의 공중파 재진입은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변화의 잠재적 파급효과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방언 드라마가 TV에서 방송된다는 사실은 정보통신부가 공식발표를 할 때까지 비밀에 부쳐졌다(New Paper, 2016/09/02). 이렇게 2016년에 시작한 호키엔 드라마 《Jiak Ba Buay(吃饱没, Eat Already, 밥 먹었니)?》는 2018년까지 제작되었다. 같은 채널에서 30년 만에 제작한 방언 개그쇼 《Hoa Hi To Ho(欢喜就好, Happy Can Already, 행복하면 돼)!》도 2016년에서 2018년까지 이어졌다. 이후 《好世谋, How Are You?》, 《亲家,冤家做头家, I Want to Be a Towkay》, 《天公疼憨人, Whatever Will Be, Will Be》까지, 채널8의 금요일 정오 시간대에는 방언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2015년에 리콴유가 세상을 뜨고 나서 그동안 억압되었던 언어적 다양성이 적극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정부는 분명한 의도와 명분을 내세우며 방언 드라마의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2016년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은 “방언으로 제작된 TV 드라마는 노인층에 다가가고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이며, 노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를 통해서 정부와 고령자층의 소통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형태의 TV 드라마 제작이 대중 매체의 방언 사용과 관련된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못 박았다(Straits Times, 2016/11/09).
실제로 방언으로 제작된 TV 시리즈의 홍보물은 시청자를 어르신 혹은 노인층(Seniors)으로 특정하고 있다. 2016년 방언 드라마의 재등장을 알린 《Eat Already?》의 예고편에는 “어르신을 위한 새 방언 드라마를 놓치지 마세요. 매주 금요일 낮 12시 미디어코프 채널8”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9) 물론 싱가포르에서 방언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높은 연령층이며, 젊은 세대는 방언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방언 프로그램의 재등장은 그동안의 강력한 언어 정책에도 불구하고 영어나 만다린이 모든 국민에게 도달할 수 있는 언어가 되지 못했으며, 사회의 지배적 언어 규범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노인층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주요 시청자를 노년층으로 잡았다고 해서 등장인물을 모두 노인으로 설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드라마의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젊은 배우도 섭외해야 하는데, 이들이 대부분 방언을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Eat Already?》에서는 주로 만다린 드라마에 나왔던 인기 배우 엘빈 응(Elvin Ng)이 감독에게 호키엔 대사 지도까지 받으면서 열연했고(New Paper, 2016/09/02), 《I Want to Be a Towkey》에서는 로미오 탄(Romeo Tan)과 데니스 카밀리아 탄(Denise Camillia Tan) 등이 방언을 연습해서 연기했다. 《Whatever Will Be, Will Be》에 떠오르는 젊은 배우 리치 코(Richie Koh)의 출연이 결정되자 관련 기사는 그가 “시청자들의 가장 지역적인(Local-est) 감수성에 호소할 드라마로 돌아온다”라고 소식을 알렸다(CNA, 2023/07/06). 젊은 배우들이 방언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불과 10년 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매우 신선한 충격이다. 정부가 이러한 변화의 잠재적 파급효과까지 통제하는 것은 이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싱글리쉬 규제의 역효과와 반작용
싱글리쉬의 광범위한 사용을 비판한 관료들은 강경하고 공격적인 논리를 펼쳤지만, 정작 정부가 국민의 싱글리쉬 사용을 일일이 감독하고 규제하기는 어려웠다. 정부의 언어지침을 현실에 적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정부 기관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 방송물과 영화에 대한 검열이었다. 미디어코프 채널에 대한 정보통신부의 방송지침에 따르면 각 프로그램은 싱가포르의 공식 언어를 “수준 높게 사용해야(Maintain High Standards)” 한다. 영어로 된 드라마, 코미디, 버라이어티쇼의 경우, 문법적인 표준 영어(Standard English) 또는 문법적인 문장에 싱가포르 억양, 어휘, 관용표현이 더해진 싱가포르 영어(Local English)만을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이 지침에 따라 제작된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문법적으로 정확하고 수준 높은” 영어가 싱가포르의 언어 사용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이야기의 재미와 몰입도를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경찰이 영국 상류층의 영어(Queen’s English)를 사용하면 시청자는 경찰이 엉뚱하게 허세를 부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Ng, 2020). 게다가 싱가포르 시트콤의 경우, 싱글리쉬를 사용한 언어유희 없이 표준어법에 가까운 영어로 웃음을 유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영어로 제작한 드라마와 영화에 싱가포르의 현실이 투영되어있지 않다면,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싱가포르의 시청자와 관객이 작품에서 재미와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정부의 언어지침대로 국내에서 제작된 영상물이 시청자들의 홀대를 받는 상황에서, 싱가포르의 고유하고 독특한 언어 현실이 반영된 영화, 드라마, 코미디에 쏟아지는 국내외의 호응과 호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책의 논리를 넘어서
싱가포르의 언어 정책은 ‘실용성의 언어’ 더하기 ‘(종족)정체성의 언어’라는 기능적 이분법을 전제로 한다. 이는 국민의 75%를 중국계가 차지하며 중국계 엘리트가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사회에서, 영어와 만다린이 다른 언어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싱가포르 사회에서는 영어/만다린 이중언어교육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배타적 중국계 특권층의 형성이 사회에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려면, 정책을 만들어내고 시행하는 관료들의 논리에서 벗어나, 싱가포르의 언어 정책을 둘러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과 정책의 적용에 따른 실질적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영어로 성장한 식민지 엘리트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정책을 강력하게 적용함으로써 대중이 사용하는 언어를 단기간에 강제로 바꾸려는 시도는 과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올바르고 좋은” 결정이었을까?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던가, 싱가포르는 ‘화교’가 주도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만다린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피상적이고 부정확한 관념에서 벗어나, 싱가포르의 언어지형이 변화해온 역사와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강압적 언어 정책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의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여전히 다채로움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에 만다린, 중국어 방언, 싱글리쉬의 사용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변화의 흐름은 정책적으로 대중의 언어를 구속하고 얽어매려는 정부의 시도가 한계에 부딪혔음을 잘 보여준다.
저자소개
최서연(seoyeonc1@gmail.com)은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학사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를 마치고 버지니아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에서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말레이시아의 교육제도가 계급, 종족, 성별에 따른 구분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동남아시아의 역사 및 현대사회에 대해 가르쳤으며,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의 여성, 노동, 환경, 대중문화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레이세계로 간 한국 기업들』, 『오늘을 넘는 아시아 여성』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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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7년 독립한 말레이시아와 달리, 싱가포르는 1959년에 자치권을 인정받았고, 1963년 말레이시아와 병합하고 나서야 영국에서 독립했다. 1965년에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되면서 현재의 싱가포르라는 독립 국가가 만들어졌다.
2) 싱가포르 현재의 인구구성비는, 중국계 74.3% 말레이계 13.5% 인도계 9.0% 기타 3.2%이다 (Department of Statistics Singapore, 2020).
3) 복건(福建), 조주(朝州), 광동(廣東), 해남(海南), 객가(客家)처럼 방언 집단의 한자표기를 한국어로 발음하는 관행이 있지만, 이는 한국 바깥에서 의미가 통하지 않는 데다가, 싱가포르의 중국계 주민이 이미 조상의 출신지역 사람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 어렵게 만든다.
4) 그의 아들 리셴룽(Lee Hsien Loong)은 아버지의 후임자였던 고촉통의 뒤를 이어 2004년에 제3대 총리직에 올랐으며 2023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5) 리콴유가 지목한 인물은 성공한 사업가로 중국어 교육기관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지만 1963년 공산주의자로 몰려 시민권을 박탈당한 Tan Lark Sye이다. 그가 설립에 관여한 싱가포르 유일의 중국어 대학 난양대학교(Nanyang University)는 1980년에 싱가포르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에 합쳐졌다. 최근 싱가포르 교육 발전에 대한 그의 기여가 재평가되고 있다(Toh, 2017).
6) “만다린 말하기 운동” 40주년 기념일에 싱가포르 총리 리셴룽은 국민의 이중언어 사용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우리처럼 영어를 쓰는 사회에서는, 가정에서 만다린 사용 환경을 마련해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Language Magazine, 2020/01/10).
7)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languagecouncils.sg/goodenglish, https://www.youtube.com/@goodenglishsg
8) Speech by Prime Minister Goh Chok Tong at the Marine Parade National Day Dinner 1999, https://www.nas.gov.sg/archivesonline/data/pdfdoc/1999082905.htm
9) 예고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 https://www.youtube.com/watch?v=Zs3MizmQD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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