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5일 서울경제 보도

태국 민심, 민주적 불안 아닌 '군부의 안정' 택했다

지난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약 5년 만에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결국 ‘탁신계(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지지 세력)’의 돌풍은 없었다. 민주화보다 정권 안정을 택한 유권자들이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손을 들어주면서 민주적 정당성까지 확보한 군부정권이 집권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과반 확보에는 모두가 실패해 당분간 태국 차기 정국은 정당 간 합종연횡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5일(현지시간) 태국 일간 방콕포스트에 게재된 비공식 개표 결과(개표율 94%)에 따르면 총 500개 하원의석 중 탁신계 프아타이당은 135석, 군부의 지지를 받는 팔랑쁘라차랏당은 117석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은 퓨처포워드당이 80석으로 제3당으로 뛰어올랐으며 최장수 보수정당인 민주당은 5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총리의 군부정권은 이번 선거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정통성까지 확보하면서 재집권에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됐다. 태국은 차기 총리를 상원(250석)과 하원(500석) 합동 다수결로 뽑는데 앞서 군부가 상원을 임명하도록 개헌해 쁘라윳 총리는 하원에서 최소 126표만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태국 민심, 민주적 불안 아닌 '군부의 안정' 택했다
태국 총선이 치러진 24일(현지시간) 군부의 지지를 받는 팔랑쁘라차랏당 총재가 지지자와 포옹하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방콕=AP연합뉴스

반면 2001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승기를 놓친 적이 없는 탁신계는 이번에도 제1당을 차지했지만 총리 선출에 필요한 ‘기적’의 과반 확보에는 실패했다. 민주계열로 평가되는 퓨처포워드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더라도 총리 선거의 승리요건인 376석에 한참 못 미쳐 태국의 민주주의 복귀는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탁신계는 직전 총선인 2011년 선거에서는 204석을 얻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주요 외신들은 지난 10년여간 태국 정치판을 흔든 온 탁신계 ‘레드셔츠’와 왕실 등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옐로셔츠’ 간 갈등이 양쪽 모두에 패배를 안겨줬다고 분석했다. 태국 최장수 보수정당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옐로셔츠는 2006년 탁신 전 총리, 2014년에는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당시 총리의 퇴진운동을 주도하며 레드셔츠와 격돌했다. 이번에도 친반 탁신 세력이 부딪치면서 국민들은 오히려 군부집권의 ‘안정’에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양측의 정치투쟁이 지속되면서 태국 국민들은 오히려 갈등을 막고 정치를 안정시킨 군정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태국 민심, 민주적 불안 아닌 '군부의 안정' 택했다

정권교체로 정치판에 혼란이 올 경우 경제성장이 주춤할 수 있다는 우려도 유권자들이 민주화보다 안정을 택하는 데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쿠데타 집권 당시인 2014년 0.98%에서 꾸준히 올라 지난해 4.6%까지 기록했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태국 재계도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칼린 사라신 태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현 행정부가 추진하던 고속철도 건설과 주요 경제개발 프로젝트 등이 이어져야 한다”며 “만약 정치적 교착상태가 발생하면 국가경제 성장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어느 정당도 과반을 얻지 못한 만큼 차기 정부가 꾸려질 오는 5월까지는 연합 결성을 위한 정당 간 눈치싸움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탁신계는 이번 총선에서 제3당으로 등극한 퓨처포워드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40대 억만장자 타나톤 중룽뤼앙낏이 창당한 퓨처포워드당은 ‘군부정권 종식’을 내걸고 국방예산 삭감, 민주주의 제도 강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태국 마히돌대의 시리반나부트 부교수는 “프아타이당과 퓨처포워드당 간의 연정은 매우 크고 강한 야당으로 쁘라윳 총리 정권의 법안 통과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쁘라윳 총리도 재집권을 위해서는 최소 126석을 확보해야 해 연정이 불가피하다. 현지 언론은 쿠데타에 대한 찬반양론을 빼면 기득권 지지층이 겹치는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노스캐롤라이나대 명예교수인 케빈 휴이슨 태국 정치 전문가는 “팔랑쁘라차랏당은 적어도 두 개의 다른 정당과의 연대가 필요하지만 안정된 정부를 창출하기 위해 더 많은 당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총선 전부터 군부정권이 선거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개편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이번 선거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유권자 투표율과 일부 선거구 투표 수 불일치가 지적을 받고 있다”며 “66%로 집계된 투표율도 예상치(90% 이상)보다 훨씬 낮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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