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2일 주간경향 보도

브루나이에 가면 동성애 엄벌을 따르라?

이슬람교 법체계인 샤리아에 따르면 동성애와 간통죄는 중죄다. 이슬람 왕국 브루나이가 동성애와 간통죄에 대해 ‘투석 사형’ 형벌을 시행하기로 하자,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이 2013년 10월 10일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폐막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반다르스리브가완|AP연합뉴스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이 2013년 10월 10일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폐막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반다르스리브가완|AP연합뉴스

‘동성애를 하거나 불륜을 저지르면 투석 사형에 처한다.’

동남아의 작은 이슬람 왕국 브루나이가 지난 4월 3일부터 이 같은 내용의 샤리아 형법을 전면 시행하기 시작했다. ‘투석 사형’이란 숨이 끊어질 때까지 돌을 던져 죽이는 형벌이다. 또 이 법은 절도죄의 경우 첫 범행시 오른쪽 손목을, 두 번째부터는 왼쪽 발목을 절단하도록 했다. 이스타나 누룰 이만 브루나이 총리는 “브루나이는 주권을 지닌 독립 이슬람 국가”라며 “샤리아법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처벌하고 방지할 뿐만 아니라 믿음,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개인이나 사회의 권리를 교육하고 존중하며 보호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샤리아는 이슬람교 법체계를 말한다. 종교생활부터 가족·사회·경제·정치·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무슬림 세계의 모든 것을 다룬다. 무슬림들은 이를 기반으로 생활한다. 샤리아에 따르면 동성애와 간통죄는 중죄다. 브루나이 정부는 2014년 샤리야법을 도입해 일반 형법과 이중으로 운영하고 있다. 43만 인구 중 3분의 2 가량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특정 범죄에 두 가지 형법 중 무엇을 적용할지는 특별위원회가 결정한다. 샤리아법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비무슬림에게도 적용된다. 국적에 관계없이 브루나이 영토에서 일어난 범죄라면 샤리아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왕가 소유 호텔에 대한 ‘불매운동’

브루나이 정부는 2014년부터 3단계에 걸쳐 이 법을 시행해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거세게 반발하자 투석형과 손발절단형을 미뤄왔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법무장관이 웹사이트를 통해 이달부터 샤리아법을 전면 시행한다고 ‘기습 발표’했다. 브루나이 국적의 한 동성애자 남성은 “어느 날 일어났더니 이웃, 가족, 길가에서 만나던 친근한 노점상 할머니가 당신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거나 돌팔매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투석 사형 시행 소식이 알려지자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가 먼저 반기를 들었다. 그는 지난달 말 “자국민에게 죽을 때까지 채찍질하거나 돌을 던지는 사람들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지 말자”며 브루나이 왕가 소유 호텔을 이용하지 말자고 촉구했다. 영국 팝가수 엘튼 존, 미국 유명 토크쇼 진행자 엘런 디제너러스, 테니스 스타 출신 빌리 진 킹 등 유명 인사들도 동참을 호소했다.

브루나이 투자청이 소유한 ‘도체스터 컬렉션’은 전세계에서 고급 호텔 9곳을 운영한다. 영국에 3곳, 미국·프랑스·이탈리아에 2곳씩 있다. 지난 6일 영국 런던의 브루나이 왕가 소유 호텔 앞에서는 시위대 수백 명이 브루나이와 외교 단절을 주장했다. 호텔들은 논란이 끝날 줄 모르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없애거나 비활성화했다. 도체스터 컬렉션은 웹사이트를 통해 ‘직원을 겨냥한 인신공격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호텔 SNS 계정을 정지시켰다’며 ‘우리는 포용적인 회사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동성애 투석 사형’과 거리를 두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 정부와 국제단체들도 성명을 통해 비판을 이어갔다. 캐나다 정부는 브루나이 여행 경보를 발령하고 “동성애자들이 국적과 종교를 불문하고 브루나이에서 사형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브루나이가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게 1957년”이라면서 “오랜 기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 전통을 깨뜨리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웃국가로 동성애 혐오 커질까 우려

브루나이의 보수화는 이슬람교 때문만은 아니다. 73세인 하사날 볼키아 국왕이 노쇠하면서 정통성 강화를 위해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권단체 ‘브루나이 프로젝트’ 설립자 매튜 울프는 “정부가 향후 석유에 의존한 경제가 침체돼도 권력을 유지·강화할 방법을 찾은 것”이라며 “이슬람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동남아 이웃국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주아세안 말레이시아 대표부의 샤리파 노르하나 무스타파 대사는 지난 4월 4일 “브루나이의 샤리아법 시행은 내정에 해당한다”며 아세안이 이 문제에 대해 ‘불간섭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샤리아는 여러 조건상 오용되기 쉽지 않다. 서방은 우리 전통을 몰라서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카스말라티 카심 주아세안 브루나이 대사는 “볼키아 국왕이 이슬람 지도자로서 샤리아의 전면 적용이라는 의무를 다한 것일 뿐”이라면서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듯 그들도 우리를 존중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브루나이가 투석 사형을 시행하면서 주변국에 사는 성소수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이웃국들이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태도 역시 브루나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에서는 지난해 9월 두 여성이 자동차 안에서 성관계를 하려 했다는 혐의로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채찍 6대씩을 맞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고문이나 부상을 입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사회에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관광부 장관이 “말레이시아에는 게이가 없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지방인 북부 아체주가 유일하게 동성애자에 대한 공개 태형을 시행한다. 아체주의 한 관리는 “브루나이의 샤리아법은 단지 종교적 자유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브루나이의 용감함과 정치적 의지에 축하를 전한다”며 샤리아법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안드레 하르소노 연구원은 “샤리아에는 여러 해석이 존재하는 만큼 법을 시행하더라도 반드시 누군가의 손을 자르거나 돌로 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목소리를 높인 보수적 이슬람교도들이 브루나이의 예를 들어 보다 엄격한 이슬람 정책과 법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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