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9일 말레이시아 제14대 총선 결과, 야권연합인 희망연대(Pakatan Harapan)가 승리하여 1957년 독립 이후 61년 만에 첫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이번 제14대 총선 결과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했던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가 다시 총리가 되는 성과를 기록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번 총선 결과는 61년 만에 이뤄낸 최초의 정권 교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정치권과 사회 환경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안와르 이브라힘과의 호혜적 공생관계를 통해 탄생된 이번 마하티르 정권은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체의 민주화와 개혁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글은 이번 총선의 정치적 함의와 더불어 그 사회문화적 배경의 특징과 의미,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이슬람을 표방하는 정당인 빠스(Parti Islam Se-Malaysia)의 향후 역할의 정치적, 사회문화적 함의를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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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athir Mohamad, center, celebrates at a hotel in Kuala Lumpur, Malaysia, Wednesday, May 9, 2018. Official results from Malaysia’s national election show the opposition alliance led by the country’s former authoritarian ruler Mahathir Mohamad has won a majority in parliament, ending the 60-year rule of the National Front. (AP Photo/Vincent Thian)

Mahathir Mohamad, center, celebrates at a hotel in Kuala Lumpur, Malaysia, Wednesday, May 9, 2018. Official results from Malaysia’s national election show the opposition alliance led by the country’s former authoritarian ruler Mahathir Mohamad has won a majority in parliament, ending the 60-year rule of the National Front. (AP Photo/Vincent Thian)

홍석준(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과)

61년 만의 첫 정권 교체

2018년 5월 9일 말레이시아 총선 결과, 야권연합이 승리하여 1957년 독립 이후 61년 만에 첫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개표 결과,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 Pakatan Harapan, 이하 희망연대)와 사바(Sabah) 주의 지역 정당인 와리산(WARISAN) 당이 하원 222석의 과반인 112석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 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 이하 암노)를 주축으로 한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 Barisan Nasional)은 79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로써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한 차례도 정권을 놓지 않았던 국민전선은 집권 61년 만에 야권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야권연합 희망연대의 승리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했던 마하티르 모하맛(Mahathir bin Mohamad, 이하 마하티르) 전 총리가 다시 총리가 되는 성과를 기록하였다.

2018년 말레이시아 총선 결과

출처: https://www.todayonline.com/malaysian-ge/malaysia-ge-2018-results-glance

이번 총선 결과는 61년 만에 이뤄낸 최초의 정권 교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정치권과 사회 환경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또한, 이번 총선 결과는 세계에서 가장 최고령의 정치 지도자를 탄생시켰다. 마하티르가 그 주인공이다.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 이하 안와르)과의 호혜적 공생관계를 통해 탄생된 이번 마하티르 정권은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체에 민주화와 개혁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된다.

세계 최고령 최고지도자인 마하티르 총리는 재집권 이후 현재 말레이시아의 전면적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역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로 다시 정계에 복귀했지만 마하티르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야권연합 내에 무슬림 옹호 정책에 반발하는 중국계 정당도 포함된 만큼 이들을 아우르는 정치통합이 마하티르가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이다. 또한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린 전설이자 신화”이며, “1980~90년대 말레이시아의 경제 성장을 이끈 국부”라고 칭하는 등 그를 여전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지만, 언론에 대한 통제와 야당에 대한 탄압 등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철권통치를 자행하고 말레이계와 무슬림에 편중된 정책을 폈던 것 등과 같이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역시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나집 라작(Najib Razak) 전 총리가 부패 스캔들에도 권력을 유지한 건 마하티르가 설계했던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 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총선변수로서의 이슬람

이번 총선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은 이슬람이다. 정치적 이슬람의 부상과 그 영향력의 변화이다. 이슬람은 범말레이시아이슬람정당(PAS: Parti Islam Se-Malaysia, 이하 빠스)를 중심으로 확산, 심화되었으며, 총선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빠스에 대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지지가 끌란딴(Kelantan) 주와 뜨렝가누(Trengganu) 주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부 지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전반에 걸쳐 유의미한 지지를 얻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사실 이번 말레이시아 총선은 빠스와 이슬람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기도 했다. 즉 이번 총선의 결과는 빠스가 얼마만큼의 성적을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선거 전에 분석 내용으로 볼 때, 빠스는 40석 이상의 의석 확보를 통해 캐스팅 보트를 쥐고 말레이시아를 간통·도둑질·음주 등에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이슬람 종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나타냈다는 점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의 4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빠스는 이번 총선에서 222석 가운데 최소 40석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가 실현되면 빠스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분석이 제시되었는데,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실제로 빠스는 이번 정권 교체에서 가장 중요한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수행했다. 빠스는 나집 총리가 이끈 여당연합 국민전선과 야당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선거 결과에 따라 어느 쪽에든지 자신들의 정책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취했다. 빠스가 40석에 못 미치는 의석을 확보한다고 해도 야당 표를 ‘나눠먹기’하면서 국민전선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있었지만, 결국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로 귀착되었다. 선거 전에, 일부 전문가들은 빠스가 다수 의석을 확보해 차기 정부 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경우, 무슬림 다수의 다종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내부 분열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차기 정부는 산업·교육·주택 등 여러 분야에서 다수 민족인 말레이계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고 이슬람 종교 법정을 강화하라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 3,200만 명 가운데 약 60%가 무슬림으로, 이들 대부분은 말레이계다. 불교·기독교·힌두교를 믿는 중국계와 인도계가 나머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압둘 하디 아왕은 만일 이번 총선에서 빠스가 캐스팅 보트를 쥐는 데 성공할 경우, 빠스는 차기 정부에 이슬람 중심 정책을 펴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우리는 이슬람교를 정치·경제·사회적 아젠다로 도입하기를 원한다”면서 이번 총선에서 최소 40석, 혹은 그 이상도 확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현재 말레이시아 대부분의 주가 이슬람법을 채택하고는 있지만, 이혼이나 상속 등의 가족 문제, 그 외 이슬람법이 금하는 음주나 간통 등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나머지 범죄에 대한 처벌은 연방법에 따르고 있다. 그러나 압둘 하디 아왕은 연방법을 개정해 샤리아 법정의 권한을 늘리고, 이슬람 법정이 100대의 채찍형 등을 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빠스가 21석을 확보했던 2013년 총선 이후 이슬람 보수주의가 확연히 부상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과연 캐스팅 보트를 쥘 만큼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러한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빠스의 분열이다. 2015년 빠스는 두 개로 쪼개져 더욱 급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인 ‘아마나’(AMANAH)가 분리돼 나간 탓에 이번 총선에서도 지지자들의 표가 갈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빠스가 많아야 10석 안팎을 차지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득표율에 대한 기대 역시 낮았다. 하지만 결과는 이와는 달랐다. 빠스는 동북부 지역에서 의석수와 득표율의 양 측면에서 모두 약진했을 뿐만 아니라 서부 지역에서도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빠스는 결국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나집 총리는 마하티르를 대전 상대로 맞아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싸움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나집 총리의 승리를 점쳤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모두 크게 빗나갔다. 선거 결과는 나집 총리의 패배와 마하티르 전 총리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야권연합의 여권연합에 대한 승리로 귀착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1957년 독립 이후 61년 만의 무혈의 평화로운 정권교체라는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말레이시아 정치변동과 정치변화의 주요 국면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선거 결과는 말레이시아의 정치변동 또는 정치변화를 정치공학적 측면으로만 설명하는 것의 한계 또는 부족함을 잘 드러낸다. 이는 말레이시아 정치변동에 대한 정치공학적 접근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61년 만에 이뤄낸 말레이시아의 야권연합에 의한 이번 정권 교체는 단지 정치변동이나 정치변혁의 영역으로만 설명하긴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말레이시아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확산되었던 ‘레포리마시’ 운동, 즉 개혁 운동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레포르마시 운동을 통해 성장, 발전해 온 깨끗한 선거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인 버르시(Bersih: 깨끗함, 청렴을 뜻하는 말레이어) 운동의 전개와 영향력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김형종 2018). 이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말레이시아 시민들의 이러한 개혁에 대한 열망과 버르시와 같은 시민운동의 성숙과 발전으로 이룩한 쾌거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마하티르의 이슬람과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개혁

‘적폐청산’의 기치를 내 건 말레이시아 신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적 성향에 대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이슬람 기구에 대한 개혁 작업에 착수하였다. 지난 6월 8일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슬람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연방정부기구인 말레이시아이슬람개발부(JAKIM: 자낌)의 기능과 예산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했다. 자낌은 이슬람 사원(Masjid)과 이슬람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종교교사(Ustaz, Ustazah)를 육성하고, ‘할랄(halal)’ 인증 및 단속을 담당한다. 자낌은 말레이시아 내 무슬림(Muslim: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슬람 가족법을 다듬고, 이슬람 주일인 금요일마다 예배를 준비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이러한 자낌과 산하기관 연방이슬람종교부(JAWI: 자위)의 연간 예산은 2018년 기준 10억3천만 링깃(약 2천845억 원)으로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예산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본산으로 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의 확산에 동조해 국민의 생활을 종교적으로 통제하려는 행태를 보여온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자낌은 2016년 이슬람 문화권에서 부정한 동물로 여겨지는 개를 연상시킨다며 음식 메뉴에 ‘핫도그’란 이름을 쓸 수 없도록 했다. 최근에는 축구를 하려고 반바지를 입은 현지인 남성이 ‘풍기문란’ 죄로 단속되는 일이 있었다. 작년 9월에는 종교적 관용과 사회통합을 이유로 이슬람교도 전용 세탁소를 허용하지 않은 조호르(Johor) 주 술탄(Sultan)을 자낌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비판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자낌이 내세우는 이슬람이 “잔인, 가혹하고 비합리적 종교”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살필 것이라면서 “우리는 강요하지 말라는 꾸란(이슬람 경전)의 가르침에 반해 강압을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작업은 자칫 말레이시아의 해묵은 인종·종교 갈등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극히 조심스럽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의 다수 민족인 말레이계는 대부분 무슬림들로 자킴이 말레이계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보수 성향의 일부 무슬림들은 신정부가 중국계와 인도계의 편을 들어 자킴을 폐쇄하려 든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개혁에 반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61년간 장기집권을 이어오다 지난달 초 총선에서 참패해 야당으로 전락한 암노의 핵심 지지층이 말레이계라는 점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변곡점으로서의 2018년 총선

2018년 5월 9일 총선 결과, 말레이시아의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2016년까지만 해도 당시의 말레이시아 정치 상황은 한마디로 “위기의 지속과 기회의 상실”(황인원·김형종 2017)로 표현될 정도로, 정권 교체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2018년 5월 9일의 총선 결과는 이러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이 말레이시아의 정치 상황과 정치변동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장애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정치 지형의 특징과 의미를 올바로 읽어내는 데 얼마나 큰 오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2018년 5월 9일 유세현장 by 홍석준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92세의 마하티르를 새로운 총리로 복귀시켜 61년간 지속된 암노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최초의 역사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선거에서 패배한 나집 전 총리는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오랜 기간 투옥된 야당 지도자 안와르는 정계로 복귀했다. 이 결과는 ‘무혈혁명’에 의한 평화적인 정권 교체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말레이시아가 이처럼 61년 만에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룬 현재의 상항에서도 여전히 다음과 같은 질문은 제기될 수 있다. 종교적, 인종적, 언어적으로 분열된 말레이시아에서 과연 다당제 민주주의가 가능하거나 또는 제대로 정착되어 발전할 수 있는가? 암노는 다수 종족인 말레이계에 더 많은 권한을 준다는 비전과 전략을 통해 말레이시아를 이끌었다. 중국계와 인도계 소수 정당과 연합해 중도세력을 형성했고, 1957년에는 영국과 독립 협상을 벌였다. 역설적이게도 중도적 지위를 독점, 암노가 이끄는 정당 연합은 다른 야당의 공격에 취약해졌다. 1969년 선거 때까지 말레이계 유일한 정치 대표로서의 암노의 지위는 계속 위협받았다.

최다 득표자가 승리하는 선거 방식은 많은 말레이계 유권자들이 암노가 이끄는 정당연합에서 빠스로 옮겨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중국계 야당들은 선거제도를 이용해 의석수를 늘릴 수 있었다. 인종적으로 다수인 말레이계는 암노를 통한 정치적 지배력이 약화됐다고 우려했다. 나집의 아버지인 압둘 라작 후세인은 말레이계의 특권을 강화하고 빠스를 포함한 야당들을 국민전선이라는 새 연립정부로 끌어들여 암노의 패권을 회복시켰다. 압둘 라작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 기존 선거제도를 인정했지만, 이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겉치레에 불과했다.

그러나 8년간의 정치적 동거 후 사실상 1당 국가임에도 야당의 의제설정 능력을 막지 못했고, 암노의 영향력이 다른 주(州)에 비해 약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노의 지지 기반이 비교적 탄탄했던 끌란딴 주를 보수 이슬람 정당인 빠스에 내줬다. 암노의 ‘말레이 통합’ 요구는 모든 야당을 불법화했으며, 빠스는 강력한 이슬람 민족주의와 강한 이슬람 근본주의적 성향으로 대응했다. 빠스의 당 대표인 압둘 하디 아왕(Abdul Hadi Awang)은 1981년 암노가 이끄는 정당 연합이 “식민지 헌법과 신앙심 없는 법을 영속화”한 데 대해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주요 정치변동

© DIVERSE+ASIA

1981년은 마하티르가 처음으로 정권을 잡았던 해다. 마하티르는 2003년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23년간 장기 집권했다. 그는 이슬람 대학과 이슬람 관료체제를 강화하려는 빠스의 이슬람화(Islamization) 정책을 옹호했지만 이슬람 현실파와 근본주의자 사이에 선을 그음으로써 이슬람법(Syariah, 샤리아)의 확대에는 반대했다. 암노의 야당 탄압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야당들은 점차 세속 민족주의 정치를 포기하고 빠스와 이슬람화 경쟁에 돌입했다. 결국 이슬람 보수주의자가 증가했고 2013년까지 말레이시아 무슬림의 86%가 샤리아를 공식적인 법의 토대로 삼는 것을 지지했다. 2013년 선거에서 신승을 거둔 나집 총리는 빠스를 유인해 끌란딴 주에서 샤리아 확대 계획을 부활시켰다. 이는 빠스가 다른 야당과 결별하고 마하티르의 새로운 야권연합인 희망연대의 표를 흡수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지난 5월 총선에서 나집 총리의 계산 착오가 드러났다. 빠스는 끌란딴과 뜨렝가누 주에서 우세했을 뿐만 아니라 서 말레이시아의 많은 주에서 예상외로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결과, 말레이시아 반도의 서해안 지역에서 빠스는 의석 수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득표율의 측면에서는 선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의미에서 마하티르가 이끈 희망연대의 승리를 정치적 통합의 상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빠스는 여전히 생존 가능한 야당 세력으로 남아 있으며, 이슬람법의 확장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이슬람, 특히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정치적 이슬람만이 마하티르에 대한 유일한 도전 세력이 아니다(김형종·홍석준 2018). 세속적 경향이 강한 사라왁과 사바 주에서는 이 지역의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지역 민족주의가 지속적으로 부상하면서 지역 특유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화시키고 있다.

사실 마하티르의 야권연합인 희망연대는 생각보다 훨씬 약한 정치세력이라고 평가된다. 희망연대는 기존의 여권연합인 국민전선에 대항하기 위해 선거용으로 합쳐진 모래알 연합체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정책에 따라 정파 간 이해가 엇갈리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지적과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 따른 정당들의 상처가 봉합되면, 새 정치동맹이 정권을 압박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 민주주의가 중요한 시점에 도달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무혈의 정치혁명을 통해 이룩한 평화적인 정권 교체의 산물이다. 말레이시아 정치인들은 인종적, 종교적, 지역적으로 찢겨진 유권자에 영합하기보다 통합적 과제를 이끌 수 있는 다당제 경쟁 구도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그리 쉽지 않은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15년 만에 권좌에 복귀한 마하티르 총리는 경제적, 정치적 유인책으로 이슬람 급진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최다 득표자가 독식하는 현 선거법은 이념적이고, 정치적 타협이 쉽지 않은 지역 야당에 유리하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역동적인 연방주의에 바탕을 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고려하여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이번 선거를 축하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평화적인 다당제 민주주의로의 회귀는 말레이시아 정치발전에 획기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역사가 보여주듯, 좋은 정부는 좋은 반대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반대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말레이시아의 최우선 과제다.

 

마하티르의 정치개혁 의미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아 온 나집 라작 전임 말레이시아 총리가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6월 4일 쿠알라룸푸르 형사기록법원에서 국영투자기업 1MDB(1 Malaysia Development Berhad, 이하 1MDB)에서 45억 달러(약 5조265억 원)를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는 나집 전 총리를 1MDB와 관련한 3건의 배임과 반부패법 위반 등 총 4건의 혐의로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 나집 총리는 국내외 자본을 유치해 경제개발 사업을 하겠다며 1MDB를 설립했다. 그러나 2013년 선거자금 조달을 위해 1MDB의 기금을 사용한 데 이어 2014년 12월 1000만 달러를 개인 계좌로 송금받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돈을 빼돌렸다. 나집 총리 집권 당시에는 재판부와 반부패위원회가 조사 의지를 보이지 않아 3년간 이어진 미국, 싱가포르, 스위스 등 국제 공조에도 불구하고 조사가 지지부진했다. 나집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5월 총선에서 마하티르 총리가 당선되며 급물살을 탔다. 총선 당시 마하티르 총리는 정계 복귀 이유를 “나집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집 전 총리에 대한 수사가 완료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관련된 전직 공무원들의 출국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한편, 반부패위원회와 검찰은 이번 기소를 계기 삼아 나집 전 총리와 측근들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토미 토머스 검찰총장이 이번 사건 담당팀을 직접 지휘하는 등 혐의 입증에 전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현지에선 향후 수사결과에 따라 나집 전 총리에 대한 추가 기소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집 전 총리의 담당 변호사는 “이번 기소는 정치적 의도를 띠고 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와 현 집권여당은 정치보복을 하고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5일 주요 외신과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은 동시에 쏟아지는 ‘빅뉴스’를 전하기 바빴다. 우선 중앙은행의 모함마드 이브라힘 총재가 사의를 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날 술탄 무하맛 5세 국왕은 모하멧 아판디 알리 검찰총장을 해임하고 토미 토마스 변호사를 신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공식 승인했다. ‘사치의 여왕’으로 악명이 높았던 나집 전 총리의 부인 로스마 만소르(Rosmah Mansor)도 이날 반부패위원회에 출석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 모두를 엮는 것은 이른바 ‘1MDB 스캔들’이다. 1MDB는 나집 전 총리가 경제개발 사업을 하겠다며 2009년 설립한 국영투자기업이다. 나집 전 총리와 그 측근들은 여기서 최대 60억 달러(약 6조 5000억원)의 나랏돈을 국외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총선 직후 출범한 정부 산하 특별 태스크포스(TF)가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스캔들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세무조사도 예고됐다.

이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5월 9일 치러진 총선에서 야권연합인 희망연대가 집권여당연합 국민전선에 압승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말레이시아 독립 이후 61년 만에 첫 정권 교체를 이뤄낸 마하티르는 15년 만에 권좌에 복귀했다. 옥중에서 마하티르와 화해하고 그의 집권을 지지한 안와르는 5월 16일 석방됐다. 안와르가 그의 아내이자 신정부의 부총리를 맡은 완 아지자 이스마일(Wan Azizah Ismail) 인민정의당(PKR: Parti Keadilan Rakyat) 총재의 의원직을 넘겨받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었다. 마하티르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신임 정부의 우선순위는 불필요한 국책 사업을 중단해 재정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정 확충이 시급한 이유는 전임 정권이 국가 부채 규모를 속였기 때문이다. 신정부에 따르면 나집 정부는 1조873억 링깃(약 293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7000억 링깃 내외로 축소·은폐해 왔다.

마하티르는 가장 먼저 총사업비 280억달러(약 30조원)에 이르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사업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전임 정부에서 체결된 사업이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다. 중국과 추진해온 140억 달러 규모 동해안 철도 사업도 재협상을 예고했다. 공무원도 1만7000명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개혁 주체인 정부도 개혁 대상”이라는 판단에서다. 오는 7월부터 시행 예정이던 공무원 임금 인상 계획도 백지화했다. 장관 등 정부 관료의 임금도 10% 삭감했다. 마하티르 정부는 선거 공약에 따라 전 정부가 도입한 재화용역세(Goods and Services Tax)를 2018년 6월 1일부터 철폐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상당한 재정 타격이 예상되지만 마하티르 정부는 민생 회복부터 도모하고 부족한 세수는 정부 효율화를 통해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나집 정부는 6%에 달하는 재화용역세를 도입하고 석유보조금 등을 폐지하여 서민의 생활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경제적 실정을 거듭함으로써 국민의 원성을 샀다. 이 역시 마하티르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마하티르 정부는 반(反)나집 여론에 재갈을 물린다고 비판받아온 ‘가짜뉴스 방지법’도 폐지할 방침이다. 한마디로 사회 전반에 걸쳐 부패 청산을 포함한 ‘적폐 청산’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정권 교체로 이어진 나집 정부의 방만한 국정운영과 권력 사유화에 대한 반성이자 차별화다. 나집은 횡령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수사 고삐가 죄어가면서 그의 형사 처벌이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편, 마하티르는 다시 총리를 맡은 것에 대해 “무서운 일이며, 훨씬 더 어려운 임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이어“내가 모르는 사람들로 (주요) 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나는 운명을 모르지만 (총리직으로) 현실적으로는 되돌아와야 했으며, 이게 운명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의무를 지닌 것은 맞다”고 밝혔다. 이 말은 지난 1981년부터 22년 동안 집권할 때는 총리 업무를 장악하고, 자신이 비교적 잘 아는 인물들을 내각에 등용하며 성과를 냈던 당시에 비해 어려움이 크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말레이시아 정치 상황에서는 자신의 총리직 복귀가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올랐던 전임자들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먼저 한때는 암노의 유력 정치인으로 자신의 후계자였던 나집이 이끈 전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국민들이 전 정부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며, “그들이 잘못을 했으며, 그 잘못된 일을 파헤쳐야 한다는 게 많은 이들의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적 요구를 수용해 나집 전 총리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집 전 총리에 앞서 총리직에 올랐던 압둘라 바다위(Abdullah Badawi) 전 총리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마하티르 총리는 “압둘라가 첫 총선에서는 90% 가까운 지지를 얻었는데, 이는 퇴임한 나의 뒤를 이어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며 “이후 그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지지율은 하락했다”고 평가했다. 마하티르의 개혁 정책은 현재까진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부채 감축 및 경제 회복을 약속하며 조성한 ‘말레이시아희망저축(THM: Tabung Harapan Malaysia)’이라는 신탁펀드엔 개설 이틀 만인 지난 1일까지 467만 달러(약 50억원)가 몰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말레이시아 국민의 이런 성원이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을 상기시킨다고 표현했다(강혜란 2018). 신정부는 다음 달엔 ‘말레이시아 1’∼’말레이시아 9999’ 등 자동차 번호판을 공개입찰해 세수를 확충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물론 이러한 정치 개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신임 검찰총장의 출신 및 종교 논란이다. 토마스 신임 총장은 인도계 출신으론 55년 만에 처음으로 검찰총장이 됐다. 그가 무슬림이 다수인 말레이시아에서 소수인 기독교도에 속한다는 것도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잇따른 기존 정책 뒤집기로 중국·싱가포르 등 주변국과 긴장이 심화될 우려도 있다. 마하티르가 1990년대 후반 동남아 외환위기 때 ‘경제 쇄국’을 주창하며 미국 등 서방 국가와 대립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마하티르는 실용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 마하티르는 중국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주변국과 더 나은 거래를 위해 협상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하티르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개발독재 리더십’이다. 이 점이 신정권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나집 전 정권의 부패의 뿌리에 마하티르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 정권의 부패를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 바로 마하티르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마하티르는 결자해지의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마하티르가 현재 전 정권의 부패와 적폐 청산을 위한 개혁을 대대적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그 자신이 바로 지금의 권위주의적 권력체제와 부패의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마하티르는 ‘결자해지’의 책무를 지니고 있다.

마하티르는 집권 22년(1981~2003)간 다수 말레이계 지지를 기반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구사했고 이에 반하는 야권·언론을 탄압했다. “행정부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가는 개발독재 리더십이 계속되는 한 개인의 부패가 정부의 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마하티르가 자신의 유산을 깨야지만 진짜 변혁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강혜란 2018, 재인용). 또한 “집권 1기의 성과가 나집 등 후임자들에 의해 왜곡·훼손되는 것을 보면서 마하티르가 ‘협의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강혜란 2018, 재인용)는 지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선 직후 공언한 바를 제대로 실천에 옮긴다면, 마하티르는 길어야 2년 내 안와르에게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 그때까지 93세 백전노장이라고 할 수 있는 마하티르가 어떻게 정계에서 ‘헤쳐 모여’와 물갈이를 선도하느냐에 따라 말레이시아의 ‘무혈 혁명’ 또는 ‘민주 혁명’의 성패가 달라질 것이다.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관계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관계는 상호 호혜적인 공생관계인가? 아니면 상호 대립적인 갈등관계인가? 양자 사이에 상부상조는 가능한가? 마하티르 지지세력과 안와르 지지세력 사이에 대립과 갈등은 없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인가? 극복 가능한 수준인가? 아니면 극복 불가능한 수준인가? 현재 말레이시아 정계에서는 이러한 의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문들은 결국 안와르는 과연 차기 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착된다.

지난 5월 16일 안와르가 사면됐다. 마하티르의 20년 넘는 정적인 그가 선거 직후 자유의 몸이 된 것은 권력을 향한 의기투합 덕분이다. 지난 총선은 마하티르와 안와르, 나집 라작 전 총리 등 3인의 운명을 뒤바꿨다. 30년간 얽히고설키며 때론 동지로, 때론 적으로 변화무쌍한 관계를 형성한 3인을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왕좌의 게임에서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말레이시아 정치”라고 했다. 20년 넘게 총리로 군림하며 ‘말레이시아 국부’로 불렸던 마하티르는 1998년 전까지만 해도 안와르와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 불릴 만큼 돈독한 관계였다. 안와르를 정계에 입문시킨 것도 마하티르였다. 1982년 이슬람청년·반정부 운동을 벌이던 안와르는 마하티르의 권유로 암노에 입당했다. 10년 만에 마하티르 내각의 부총리로 기용되는 등 마하티르의 후계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1998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놓고 마하티르와 갈등을 벌이다 동성애, 부패 등 혐의로 구속됐다. 안와르를 제거한 후 마하티르가 선택한 사람은 나집이었다. 나집은 말레이시아 독립을 주도한 압둘 라작 전 총리의 아들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6년 마하티르 내각의 문화청년체육부 장관으로 발탁된 이후 국방부 장관, 부총리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마하티르는 2004년 정계 은퇴 후에도 막후에서 후견인 역할을 했고 2009년 나집은 총리가 됐다.

세 정치지도자의 관계

출처: 경향신문 최민지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5212143005

그러나 2015년 나집의 대형 부패 스캔들이 터지며 마하티르와 사이가 틀어졌다. 나집을 비판하던 마하티르는 결국 50년 넘게 몸담았던 암노에서 탈당해 안와르가 실질적 지도자로 있는 야권연합에 합류했고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됐다. 그는 안와르가 정계에 복귀하면 총리직을 넘기기로 약속한 상태다. 실제 마하티르는 지난 15일 “재임 기간은 1~2년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제 칼끝은 나집을 향해 있다. 출국금지 조치와 거처 압수수색에 이어 방산비리, 청부살인 연루 의혹까지 터지며 사법 처벌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하티르는 총선 승리 직후 “우리는 복수가 아닌 법치의 회복을 추구한다”며 나집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사면된 안와르도 “(나집이)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안와르와 나집 또한 한때 암노의 동지였지만 숙적이 됐다. 야권 지도자로 변신한 안와르가 2013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정권을 위협하자 나집이 2015년 또다시 동성애 혐의를 씌워 안와르를 구속했다. 다시 손잡은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앞날은 평화로울까? 두 리더의 존재가 새 정부에 긴장을 만들어내지는 않을까? 균열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마하티르는 지난 12일 내각 핵심인 재무·국방·내무장관 등을 임명했다. 당초 10명을 임명할 계획이었지만 마하티르의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PPBM)과 안와르 측 인민정의당(PKR)의 줄다리기로 늦춰졌다. 이후 마하티르가 어깨 수술 후 요양 중인 안와르를 찾았을 때 분위기가 냉랭했다는 전언이 나오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인들은 마하티르와 안와르가 서로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양자 간의 이러한 협력 관계가 잘 유지될지, 아니면 수포로 돌아갈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미푸트라 정책의 향방

말레이시아가 인종차별 논란을 빚어 온 말레이계 우대 정책인 ‘부미푸트라(bumiputra)’ 정책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부미푸트라는 ‘땅의 자손들’이라는 뜻으로 말레이 원주민과 토착민을 일컫는 말레이어다. 말레이계는 말레이시아 인구의 약 62%를 차지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실권은 약 21%에 불과한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어 이에 대한 말레이계의 불만이 많았고 실제로 1969년에는 이 때문에 인종폭동이 일어나 8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7월 25일 아즈민 알리 경제부 장관은 전날 의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부미푸트라 정책의 핵심인 ‘신경제정책'(NEP: New Economic Policy)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어떠한 경제정책이 모든 말레이시아 국민에게 가장 나은 혜택을 줄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종 문제에 대한 고려 대신 국가적 필요에 따라 경제정책을 정돈할 필요가 있다면서 올해 말 관련 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레이시아는 1969년 중국계에 대한 말레이계의 불만이 인종폭동으로 불거져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1971년 말레이계 우대 정책인 부미푸트라 정책과 신경제정책을 도입했다. 신경제정책은 인구의 61.7%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와 원주민에게 주택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대입정원 할당, 정부 조달 계약상 혜택 등 특혜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말레이시아 전체 부(富)에서 말레이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 4%에서 현재 20% 이상으로 높아졌으며, 52%에 달했던 빈곤율도 5% 미만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현지에선 사회적 약자 보호 정책의 하나로 시작됐던 부미푸트라 정책과 신경제정책이 중국계와 인도계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아 왔다. 말레이계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음에도 정치 권력을 장악한 말레이계가 관련 정책의 수정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불만은 지난 5월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전 집권연합 국민전선이 참패하고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이끄는 신정부가 출범하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말레이시아 신정부는 인종·종교 갈등을 해결하고자 ‘인종·종교적 증오 규제법’ 입법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본산으로 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이 확산하면서 이슬람을 믿는 말레이계 일부가 여타 소수민족을 억압하려는 행태를 보여 사회적 문제가 돼 왔다.

이러한 ‘말레이계 우대정책’, 즉 부미푸트라 정책의 완화에 대해 말레이계의 권익 보호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려 말레이시아 내 종족갈등이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다. 2018년 7월 2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 캄풍 바루 지역에서는 말레이계의 권익 보호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와 같이 인종차별 논란을 빚어온 말레이계 우대정책, ‘부미푸트라 정책’의 완화 여부를 놓고 말레이시아 다수 종족인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29일 현지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28일 쿠알라룸푸르 시내 캄풍 바루 지역에서는 말레이계의 권익 보호를 주장하는 2천여 명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는 암노와 빠스 지도자가 다수 참석해 여당의 말레이계 우대정책 완화 움직임을 비난했다. 참가자들은 중국계 지위 향상과 관련된 조치에 특히 강한 반감을 보였다. 또한 말레이시아 신정부도 부미푸트라 정책의 핵심인 ‘신경제정책'(NEP)을 재검토하는 등 인종차별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1971년 도입된 NEP는 말레이계에 정부 조달 계약상 혜택을 주고 대입 정원을 할당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런 정책은 인구의 다수(61.7%)를 차지하고도 빈곤에 허덕이던 말레이계의 사회적 지위를 크게 높였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장악한 말레이계가 이후에도 관련 정책 수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중국계(20.8%)와 인도계(6.2%)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말레이계는 부미푸트라 정책 완화가 말레이계 중심의 이슬람 국가란 국가 정체성을 훼손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당인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PPBM) 소속이면서도 집회에 참석한 라이스 야팀 전 정보통신문화장관은 중국계 사립학교의 졸업학력을 인정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면서 “이는 주권과 종족, 국적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부유한 중국계에 대한 말레이계의 불만이 인종폭동으로 번져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1969년 5·13 인종폭동 발생지 인근에서 열렸다. 다만, 일각에선 암노 등이 중국계에 대한 말레이계의 해묵은 반감을 의도적으로 부풀려 지지층을 재결집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암노는 말레이계 지지를 등에 업고 61년간 장기집권해 왔지만, 당 수뇌부의 부정부패와 민생악화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총선에서 참패해 야당으로 전락했다.

 


저자소개

홍석준 교수(anthroh@mokpo.ac.kr)
국립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말레이시아의 국립말라야대학(UM: Universiti Malaya, University of Malaya)과 말레이시아국민대학(UKM: Universiti Kebangsaan Malaysia, National University of Malaysia)에서 연구 활동을 하였다. 말레이시아의 사회와 문화, 이슬람과 정치, 이슬람화와 문화변동, 이슬람과 할랄산업, 종족과 민족관계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말레이시아의 이슬람화와 사회변동, 이슬람 부흥운동의 문화적 의미, 항구도시 말라카의 역사와 문화, 동남아시아 항구도시의 사회와 문화 등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였다.

 


참고자료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3. 2018년-5월-9일-총선-이후-말레이시아는-어디로-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