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비동맹원칙을 견지하며 아세안을 중심으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이룩했다. 남북한은 아세안 국가들과 경제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한편 정치 외교적 분야에서는 동남아시아를 경쟁의 장으로 인식했다. 최근 급격한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 아세안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갈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과 아세안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최근 수년간 북한의 핵개발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와 미국의 국제제재 동참 요구 속에 아세안 국가들은 북한과의 관계를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해왔다. 이 글은 북-아세안 관계를 살피고 아세안 규범에 근거한 한반도 평화 및 동아시아 질서 재편과정에서 협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김형종(연세대학교)
올해 3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의와 북미정상회의를 정점으로 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안보적 변화는 남북한 평화체제와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한과 미국은 분단체제의 극복의 핵심 당사국이다. 그러나 분단의 기원과 유지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노력은 당사국에 국한되지 않고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를 포함하는 주변국의 이해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당사국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과 국내정치적 변화는 대화 국면의 중단을 가져올 수 있는 불안 요인들이다. 당사국간 대치 국면을 완화하기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거나 더 나아가 항구적 평화를 위한 지역 기반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주변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여전히 한반도 문제에 이해 당사국으로서 남북한이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 이 점에서 아세안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사상 첫 북미정상회의가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것도 북한의 동남아시아와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 가능했다. 싱가포르는 중립적 외교를 표방해왔으며 경제적으로 북한과 관계를 유지해왔다. 또한 싱가포르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이기도 하다. 아세안을 구성하는 동남아시아 10개국은 북한과 전통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아세안은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 대표적 지역기구로서 아세안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ASEAN+3(APT),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의 지역 협의체를 통해 그 성과를 확산해 왔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한-아세안 관계의 양적 질적 발전을 꾀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의 진전에 따라 아세안과 한반도 평화를 함께 만들어갈 방안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북한과 아세안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동맹으로 맺어진 북·아세안 관계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분단체제가 공고화됨에 따라 외교는 국가의 정통성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주요한 경쟁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960-70년대 남북의 외교전의 주요 대상은 제3세계에 집중되었다. 제3세계 신생독립국의 유엔(UN)가입이 증가함에 따라 남북한은 유엔 가입을 목표로 경쟁을 전개했다. 남북한의 외교전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및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전역에 걸쳐 이루어졌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자주노선에 따라 중국과 소련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제3세계 외교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북한과 먼저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들은 정치적 이념을 공유할 수 있는 베트남이었다. 북한은 1950년 (북)베트남과 수교했다. 인적 교류도 활발히 추진되었다. 1957년 호치민의 방북에 이어 김일성의 답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에 대해 북한이 강도 높게 비판함에 따라 양국 간 관계가 소원해졌다. 반대급부로 베트남 철군 이후 훈센 정권이 등장하는 시기까지 북한과 캄보디아는 매우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박성관, 2003, 242). 1968년 중국의 문화혁명은 북한이 제3세계와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냉전시기 이념적 공유를 통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과 협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북한의 관계는 비동맹원칙을 매개로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1955년 반둥회의를 계기로 구체화된 비동맹운동은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며 제3세계 국가들의 연대체로 발전했다. 제3세계 동맹이 북한의 주요 외교 전략으로 등장한 가운데 NAM이 1961년 유고에서 첫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당시 북한은 유고의 수정주의 노선 비판을 중단했다. 한국의 가입 신청이 거절된 반면 북한은 1975년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 NAM)에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입했다. 이는 당시 북한의 외교적 성과로 표방되었다. 북한이 비동맹의 원칙에서 어긋나는 ‘공산주의’국가임에도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전쟁 전개에 대한 제3세계 국가들의 부정적 인식이 한 요인이었다.
북한은 NAM 핵심국가인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심화를 통해 제3세계 국가들과 외교적 협력을 모색했다. 반둥회의 10주년이 되던 해인 1965년 4월에 김일성 주석의 명예 박사학위 수여를 계기로 김정일과 함께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인도네시아 방문은 비사회주의권 국가에 대한 첫 방문이었는데 1964년 11월 수카르노 대령의 방북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이루어졌다.[1] 당시 북한의 자주적 외교 노선 표명과 더불어 남한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동맹운동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비동맹 국가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다. 1975년 이전 일련의 NAM 장관급회의는 한반도 문제에 관련 북한 입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북한은 유엔에서도 NAM 회원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외국군대 철수와 평화 통일’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NAM에서의 북한의 입지는 가입 직후인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콜롬보에서 개최된 NAM회의에서 북한지지 성명서에 대해 24개 회원국의 반대 의사를 문서로 제출했다. 이후 북한의 NAM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은 점차 감소했으며 냉전 종식 이후 NAM 자체의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급격히 감소했다.
아세안 지역주의 북한의 다자주의 참여 모색
북한의 초기 동남아시아 외교는 양자주의에 주로 의존했다. 아세안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이 냉전의 구조 속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세안은 반공그룹을 표방하거나 집단방어(collective defense) 등의 군사적 목적을 표방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세안은 비동맹 원칙의 연장에서 중립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내정불간섭 원칙의 무조건적인 시행과 협의와 합의에 기반한 의사결정구조, 비공식적 접촉의 활용 등 이른바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발전시켰다. 1971년 ‘평화, 자유, 중립지대’(Zone of Peace, Freedom and Neutrality, ZOPFAN)선언을 비롯해 1976년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TAC)의 채택은 아세안의 중립성을 강화하고 회원국 간 갈등 가능성을 낮춰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했다.
아세안 개별 회원국이 남북한과 동시에 관계를 형성하는 한편 아세안 차원에서는 중립성을 견지했다. 1981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정통성 확보를 위해 외교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한-아세안 대화상대국 관계 설립을 추진했다. 이는 북한의 대동남아 외교를 견제하고 경제협력 기반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아세안 회원국 순방과 뒤이은 전방위적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화관계 수립은 성사되지 못했다. 한국은 당시 아세안 대화상대국에 비해 현격히 낮은 정치 및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세안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일방적 대화관계 수립이 중립성 원칙을 해치고 한반도 정치 이슈에 아세안이 끌려 들어갈 위험성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당시 인도네시아 외교부 관계자는 아세안이 한국과 너무 밀착하는 인상을 줄 것으로 우려하는 한편 향후 북한이 같은 제의를 할 경우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과의 대화관계 설립이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상호 인식의 격차가 있었다. 한국은 아세안 회원국들을 한국의 우방인 반공국가로 인식했지만 아세안은 비동맹 중립 기본 입장을 견지하며 한국과 공식적 정치협력을 부정적으로 보았다(김형종, 2016).
1989년 이후 북한은 동남아시아 및 호주, 뉴질랜드까지 외교적 노력을 확대하는 이른바 남방외교를 추진하며 방문외교를 강화했다. 이러한 외교적 행보는 노태우 정권이 전격적으로 추진한 북방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1991년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를 통해서 “오늘 아시아는 새로운 발전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공화국 정부는 자주적이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새 아시아를 건설하기 위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친선협조관계를 적극 발전시켜나갈 것” 이라고 밝혔다(홍규덕, 1995, 43). 전방위 외교적 노력의 일환으로 북한은 다자주의를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1991년 9월 평양에서 77그룹 회의를 개최하는 한편, 199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가입 의사를 밝힌바 있다.
북한의 남방정책과 핵문제의 대두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기본합의서 채택 및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 등의 변화는 한반도에서 냉전을 종식할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상호합의 이행 과정에서의 드러난 인식과 실질 조치의 차이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NPT)탈퇴로 이어졌다. 제3세계와 연대를 추구해온 북한은 이를 계기로 국제 사회로부터 큰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과 아세안의 관계에 있어 북한의 핵 문제는 중요한 정치외교 사안으로 부상했다.
북한의 NPT 탈퇴에 대해 아세안은 확대외무장관회의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북한은 국제사회 여론을 의식해서 적극적으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1993년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비동맹회의에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아울러 양자주의에 기반 한 노력도 병행했다. 1993년 3월 NPT탈퇴 이후 같은 해 9월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라오스, 태국에 파견했다. 이에 앞서 1993년 3월 이종옥 부주석은 태국 및 말레이시아에 특사로 방문했다(홍규덕, 1995, 45-46). 쌀 원유 고무 목재 등 자원 공급처로서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북한의 NPT탈퇴에 대한 설명도 때문으로 풀이된다.
1990년 대 중반 동남아 국가들에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의 방문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1992년 김영남 외교부장 부총리는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3개국을 방문했다. 동남아시아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김정일 체제 등장 직후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 타개를 위한 전방위 외교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1994년 황장엽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양국은 캄보디아 사태를 계기로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에서 베트남이 1992년 한국과 수교함에 따라 관계 발전을 적극 모색하던 시점이었다. 일례로 1993년 양잠업체로 VIKOSERI를 베트남과 합작 투자 가동했다(홍규덕, 1995, 42-43). 고위급 인사의 잇단 순방이 있었으며 주로 경제관계 발전에 집중되었다. 태국 쌀 50만톤을 수입하기로 결정했으며 인도네시아와는 경제기술협력협정과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북한과 아세안의 제도적 협력이 본격 추진된 것은 2000년 ARF가입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ARF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전통적으로 북한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던 아세안 회원국은 남북 관계개선을 환영했으며 ARF를 통해 제도적 협력의 기반을 제공하고자 했다. 북한은 2010년 아세안과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TAC)을 체결했다. TAC는 아세안 규범의 핵심으로 내정불간섭원칙과 무력의 불사용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 등을 담고 있다. 지역주의 확대에 있어 아세안 중심성을 뒷받침하는 조약이다. 2005년 출범한 동아시아정상회의 참가국에 TAC서명이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현재 남북한을 포함해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아세안을 중심으로 TAC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를 형성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아세안의 대북 입장도 강경해졌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따라 한반도 및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북한과 아세안 관계도 이에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미국 국무성은 이른바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과 개입’ 정책의 일환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격하시키도록 노력했다. 5월4일 아세안 외무장관과 회동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 국가들에 북한과의 관계를 ‘최소화’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당시 의장국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의지가 매우 강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양국 간 분쟁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자극할 만한 문구나 표현은 의장성명서에서 생략되었다. 오히려 두테르테는 필리핀 내 정박 중이던 중국 군함을 방문하는 등의 중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당시 대중국 입장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의 배경에는 미국이 대북압박에 대한 수용이 있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2017년 4월 아세안외무장관회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심대한 우려’ (grave concerns)를 표명했고 이는 다음 날 정상회의 의장성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간 한반도 문제와 관련 한반도 차원의 평화적 노력에 대한 희망을 피력해왔는데 반해 의장 성명서는 북한의 행위에 책임을 분명히 했다.
아세안은 그간 증폭되는 미중 간 갈등 속에 한반도 사안을 헤징전략의 일환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남중국해 문제에 유화적 입장에 반해 북한을 비판하며 미국과 중국의 이해를 절충할 수 있었다. 대북제재에 있어 미국과 중국이 공조를 모색하는 상황은 아세안에게 국제제재 동참이라는 명분을 제공했을 것이다. 이러한 아세안의 결정은 그간 의장국으로서 중립원칙을 지키며 강대국의 영향력에서부터 자유를 추구했던 전통적 원칙과 상충된다. 그러나 아세안의 입장 변화는 박근혜 정부가 기울인 북한 고립을 위한 외교적 노력과 미국의 강한 압박에 대한 일종의 타협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의 대북 특사 조셉윤은 2017년 APEC 정상회의와 EAS정상회의를 통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매우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힌바 있다. 실제 아세안은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2017년 8월 개최된 ARF에서는 미국은 아세안 국가들에 북한의 회원자격 박탈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세안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아세안 국가들이 교역을 중단하거나 교역량이 감소했다. 2017년 9월 필리핀은 북한과의 교역을 중단했으며 태국의 경우 같은 해 9월까지 북한과의 교역량이 1.6백만 달러로 전년 동기간 대비 95%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피살 사건을 고려할 때 제한적 수준이었다.
아세안 국가들은 북핵 문제가 악화된 2017년 직전까지 북한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인도네시아 스카르노 가문을 통한 북한과의 인연은 지속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여당 민주투쟁당(PDI-P)내 메가와띠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건재하다. 2002년 수카르노 대통령의 딸인 메가와띠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상황이라서 그 의미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메가와티는 고립 상태인 북한에게 동남아시아 이웃국가들과 관계를 심화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의 동생인 라츠마와띠가 운영하는 스카르노교육재단은 2015년 김정은 위원장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
북한과 경제교류와 투자 가능성에 주목한 싱가포르에 근거를 두고 있는 조선교류프로그램 (Chosun Exchange Programme)은 북한을 상대로 자본주의 관련 워크숍을 조직해왔다. 리수용 외상은 2014년 라오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싱가포르를 순방했다. 말레이시아는 김정남 사건 이전에는 북한과 무비자방문협정을 체결하고 평양에 직항로를 개설하기도 했다(이재현, 2017). 캄보디아는 약 240만 달러에 달하는 앙코르 역사박물관 건립과 관련 설계와 시공을 북한 측에 맡기기도 했다. 2014년 김정은 위원장을 희화한 할리우드 영화 (the Interview)의 상영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라오스는 2013년 9명의 탈북자를 북에 송환했다.
평양에 대사관을 설치한 24개국 중 5개가 아세안 국가(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이다. 북한은 브루나이와 필리핀을 제외한 8개 아세안 국가에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유엔 보고서는 북한의 해외공관이 무기거래에 관여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쿠바와 싱가포르 주재 공관의 역할에 주목한 바 있다. 2017년 유엔 보고서는 싱가포르 기업이 북측 기업과 무기 거래에 연루되어 있다고 지목했다(Fernandes, 2017).
북한은 아세안과의 제도적 협력 강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전통적 우호 국가들의 지지를 기대하며 아세안과 대화상대국 관계 설립을 제안했다. 2016년 리수용 현 북한외무성 장관은 아세안 5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북핵 위기의 고조와 국제제재 속에 아세안은 북한의 대화상대국 제안을 수용할 수 없었다. 2017년 아세안 정상회의를 앞둔 상황에서는 아세안 의장국에 보낸 서한을 통해 북한은 작금의 한반도 상황이 전쟁직전의 상황임을 알리고 긴장해소를 위한 아세안국가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아세안
2018년의 획기적 변화는 한반도 정세뿐만 아니라 지역질서의 재편을 시사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도 이에 주목하고 있으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대사를 역임한 인도네시아의 디노 빠띠 잘랄(Dino Patti Djalal)이 이끄는 학자그룹이 2018년 4월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학자들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베트남, 뉴질랜드의 학자들이 포함되었다. 외교적 이해와 더불어 북의 일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회였다. 북측 정부 및 학자와의 만남 과정에서 훈계하는 것이 아닌 북한의 목소리를 듣고 배우고 공유하는 이른바 ‘옆문 접근’(side door approach)을 취했다. 디노 전 대사는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한편 소프트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의사소통과 인식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을 상대로 적극적인 관여와 설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Hartig and Seymour, 2018).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은 2018년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한 바 있다. 한반도의 평화가 지역의 모든 국가에게 이익이 된다고 밝혔다(The Jakarta Post 2015/05/02). 평창 올림픽이 남북 대화의 계기를 제공한 점에 주목해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빨렘방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대하고자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7월 평양에 장관급 대표단을 보내 김정은 위원장에게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식 초청장을 전달했다. 비록 개막식 정상외교가 성사되지 않았지만 남북한 정상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는 계기가 다양한 측면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비록 정부 차원은 아니었지만 베트남 학계에서도 북미정상회담의 베트남 개최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싱가포르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북미정상회담의 북측 비용을 싱가포르가 분담하는 등의 적극성을 보였다.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싱가포르는 향후 아세안 및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련 적극적인 논의를 유도할 수 있다. 아세안의 회합력(covening power)이 다양한 이해 당사국들을 포괄하는 대화와 협력의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 2018년 8월에 개최된 ARF 장관회의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대북 압박의 수위가 완화되었으며 보다 건설적이고 보다 긍정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ARF회의에 참가한 각국의 외교장관들은 평양의 비핵화의지와 관련 조치들을 환영했다. 1년 전 공동 성명서에서 북한을 비판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큰 변화이다.
아세안의 기여 가능성
그 동안 아세안은 남북한 외교 대결에서 지지세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서 인식되었다. 한편 아세안은 비동맹운동의 전통 속에 중립적 위치를 강조하며 아세안 중심성에 기반 한 정치안보공동체 건설을 추진해 왔다. 결과적으로 남북한 갈등이 고조되고 경쟁이 심화될 경우 아세안은 소극적 방어적 자세를 취했으며 2000년 사례에서 보듯이 남북한 대화 국면에서 제도적 포용력을 통해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한-아세안관계의 발전 속에서도 아세안은 한편에 기울지 않았다. 북한과 아세안과의 관계도 전통적인 우호관계와 중립성원칙과 경제협력 덕분에 북핵 위기 속에서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시점에서 아세안과의 관계 또는 아세안의 역할은 남북한 관계에 따라 변하는 종속변수 이상을 의미한다. 한-아세안 북-아세안 관계를 넘어 동아시아차원의 아세안의 규범의 확대를 통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아세안의 회합력을 활용하여 다양한 대화 채널을 만들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의 경험과 남북한 대화 채널의 단절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강대국의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국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는 안정적이고 정례화된 대화채널이 필요하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ARF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일방적 편들기가 아닌 중립적 원칙을 견지하며 남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체로서 역할을 해왔다. 현재 비핵화의 진행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은 중요한 과제이다. 지역협력의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신뢰할 수 있고 이미 대화상대국을 희망한 바 있는 아세안의 회합력은 매우 유용하다. 다만 당장의 대화상대국이 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중간적 단계로서 ‘특별대화상대국’(가칭)과 같은 지위의 부여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1989년 부분적 대화 상대국(sectoral dialogue partner)이 되었는데 이는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새롭게 고안한 지위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지지와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아세안국가들에게 남북한의 대결이 아닌 평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아세안 대화상대국 지위 부여를 위해 한-아세안 대화에 북한을 초대하는 형식을 통해 점진적 제도화를 모색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ASEAN+1의 다양한 조합들이 지역협의체로 제도화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ASEAN+2’는 남북한 간 보완적 대화채널이자 강대국이 배제된 중견국가 협력을 논의하는 장이 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핵포기 국가에 대해 핵보유국이 핵무기 불사용을 보장함으로써 지역차원의 비핵지대화를 완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1995년 조인된 동남아비핵지대조약(Southeast Asian Nuclear-Weapon-Free Zone, SEANWFZ)의 동아시아 확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SEANWFZ가 아세안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저장, 거래, 이동을 금하고 있으나 핵보유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약속하지 않은 채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이를 동아시아로 확대할 경우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 뿐 만 아니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도 견제할 수 있다. 기존 6자회담의 구조가 북한을 제외한 국가가 핵보유국 또는 핵우산을 제공받는 국가들로서 핵전략의 비대칭성을 전제했다는 점에서 아세안 중심의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는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원하는 핵보유국의 핵무기 선제 사용 포기에 대한 요구도 지역차원에서 아세안도 함께 요구할 수 있어 양자 모두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성사될 경우 북미 간 협상에 의존하는 것보다 합의 이행의 강제력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이미 ASEAN+3는 장기적 목표로 동아시아 공동체에 합의 한 바 있다. 북한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회원국 간 신뢰구축을 위해 TAC의 다자화를 모색할 수 있다. 즉 내정불간섭, 무력의 불사용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담은 TAC조약을 아세안과 체결한 국가들이 이를 지역차원에서 다자화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 회원국 간 신뢰 구축의 경험이 아세안과 비아세안 국가들 차원에서 실현된 것이 현 단계라면 다음 단계는 아세안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차원에서 모든 회원국이 이를 비준하는 것이다.
평화의 동반자로서 아세안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중립성을 지켜온 아세안 규범과 중심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냉전기 개별 국가차원에서 비동맹원칙을 견지했으며 아세안은 중립성에 기반을 둔 규범을 발전시켜왔다. 남북한외교에 있어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는 경제적 관계 발전과 더불어 외교적 비중이 꾸준히 증가해왔다. 전통적으로 동남아 개별국가들과의 쌍무적 관계에 중심을 두었던 남북한의 외교는 다자적 지역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아세안공동체 출범 이후 아세안은 대외관계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는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강대국 중심의 권력(power)정치 일변도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규범 중심의 국제정치로의 질적 변환을 이끌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할 것이다. 그 점에서 남북한 모두에게 아세안은 평화의 동반자인 것이다.
저자소개
김형종(kimsea@yonsei.ac.kr)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제관계학과 교수이다. 말라야대학교(말레이시아) 동남아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학과에서 Senior Lecturer로 근무했다. 주로 아세안 및 동아시아지역주의 관련 연구 등을 진행하고 다수의 저서 및 논문을 출판하였다.
[1] 당시 김일성 주석이 좋아했던 난에 그의 이름을 따서 ‘김일성이아(Kimilsungia)’명명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 김형종. 2016. “한-아세안 대화관계와 아세안 규범: 1980년대 초반 외교문서 분석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연구 26권 4호, 39~76.
- 박성관. 2003. “북한의 대동남아 외교변화.” 국제정치논총 43권 3호, 235-253.
- 이재현. 2017. “북한과 동남아시아.” Issue Brief (아산정책연구원) 2017-8, 1-10.
- 홍규덕. 1995. “북한의 대동남아정책-남방외교의 평가.” 국제정치논총 34권 2호, 37-54.
- Fernandes, Dominique F. 2017. “Fire and Fury: ASEAN’s Role in Cooling US-North Korea Tensions.” The Diplomat (August 16). https://thediplomat.com/2017/08/fire-and-fury-aseans-role-in-cooling-us-north-korea-tensions(검색일: 2018.10.1)
- Hartig, Krystal and Seymour, Hugo. 2018. “Visiting Pyongyang and the Australia-Indonesia-US Trilateral Relationship.”(May 29). http://perthusasia.edu.au/dr-dino-patti-djalal-on-his-recent-visit (검색일: 2018. 10.2)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