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89년 아세안과 공식 대화관계를 맺은 이래 여러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아세안과의 관계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신남방정책을 천명했다. 본 글에서는 이전 정부의 정책과의 비교를 통해 신남방정책의 특징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추진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아시아·태평양 지역정세는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등 강대국 간 경쟁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점증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중견국(middle-power)으로서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미·일의 인도-태평양 구상,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등 역내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인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김영선(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신남방정책의 의미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아세안 및 인도와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신남방정책을 천명하고, 아세안(필리핀, 인도네시아 및 베트남)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대통령 특사를 4강 이외의 국가에 파견한 것은 역사상 최초이며, 이는 아세안과의 관계 강화의 새로운 출발로 여겨졌다.
우리 정부는 1970년대 말부터 아세안과의 공식관계 설정을 위해 외교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세안 측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1989년에야 비로서 부분 대화상대국(Sectoral Dialogue Partner)관계를 수립했다. 2년 후인 1991년 완전 대화상대국(Full Dialogue Partner)관계가 된 한-아세안 관계는 지난 30년간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2004년 포괄적협력 동반자관계(Comprehensive Cooperation Partnership)를 선언했고, 2010년에는 전략적 동반자관계(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되었다. 매년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개최되는 한-아세안 정상회의와 별도로, 2009년 및 2014년에는 한-아세안 관계 20주년 및 25주년을 기념하여 제주도 및 부산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각각 개최하였다.[1] 2012년에는 아세안 사무국이 소재한 자카르타에 주아세안 대표부가 설치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1월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아세안국가 순방 계기에 ‘한-아세안 미래공동체구상’을 발표했다. 신남방정책의 대원칙으로서 3P, 즉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사람(People) 공동체, 호혜적 협력을 통해 함께 잘 사는 상생 번영(Prosperity)의 공동체, 지역 평화에 기여하는 평화(Peace) 공동체 비전을 제시했다.
실제 한국과 아세안은 아주 가깝고 긴밀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다.[2]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새삼 신남방정책을 천명한 배경과 그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아세안 측 인사들은 한국의 접근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거래적(transactional)이며, 한국의 대아세안정책은 독립적인 외교과제가 되지 못해 북한문제나 강대국관계가 불거지면 아세안관계는 뒷전으로 밀린다는 지적을 해 왔다(Koh 2018; ERIA 2019). 따라서 ‘더불어 잘 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를 실현한다는 신남방정책의 비전과 지향점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을 환영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1967년 창설된 아세안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고, 2015년 말에는 하나의 비전, 하나의 정체성을 모토로 아세안 공동체(ASEAN Community)를 출범시킴으로써 가장 역동적인 지역협력체로 평가되고 있다.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의 3개 기둥으로 이루어진 아세안 공동체는 아세안의 통합을 가속화하고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더욱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6.5억, GDP 2조 8천억 달러의 아세안은 아시아·태평양·인도양의 전략적 요충에 위치하고 있고 견실한 성장과 향후 발전 가능성으로 인해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일본, 미국 뿐 아니라 인도, 호주, EU 등도 경쟁적으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던 중국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문제 등으로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포스트 차이나’로서 아세안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의 신남방정책은 대아세안정책의 비전과 정책방향을 적극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고 의미가 크다.
신남방정책은 극동과 유라시아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신북방정책과 연결해 ‘번영의 축’을 만들고, 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평화지대의 ‘평화의 축’과 연결되어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Northeast Asia Plus Community of Responsibility)를 실현한다는 전략구상을 담고 있다. 또한 신남방정책은 강대국 중심 외교로부터 외교 다변화를 추구함으로써, 강대국간 경쟁구도 속에서 자율성을 확대하여 전략적 레버리지를 높이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이재현 2018).
관련국의 對아세안정책
‘가장 확실한 한 가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The only certainty is uncertainty itself)(Natalegawa 2018).’ 오늘날 아시아·태평양·인도양 정세를 극명하게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이 지역은 중국 영향력 확대, 인도 중요성 증대, 미중·중일 등 강대국 간 경쟁, 미중 무역전쟁, 보호무역주의 및 자국이익 중심주의 경향으로 인해 불확실성과 불가측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이 견지돼야 함을 강력 주장하고 있는 아세안의 지정·지경학적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 중국 뿐 아니라 인도, 호주 등도 아세안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중견국(middle-power)으로서 이러한 지역 질서 재편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인지, 관련 국가들의 정책이 우리 신남방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신남방정책은 이들 국가 정책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또 차별화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일본은 1973년 아세안과 비공식대화관계를 수립한 후 1977년 완전 대화상대국으로 격상되었으며, 그 해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한 이래 다방면에서 폭넓은 파트너십을 강화해 왔다(Shiraishi and Kojima 2014). 일본의 대아세안 정책은 정치·경제·사회적인 실질협력 증진이라는 측면과 아울러 부상하는 중국에 대응하고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광범위한 전략의 중요부분을 이루고 있다. 일본은 2007년 ‘자유와 번영의 호(Arc of Freedom and Prosperity)’, 2012년 인도-일본-미국-호주로 이어지는 ‘안보 다이아몬드 구상’을 바탕으로 2016년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을 공식화했다. 최근 일본과 아세안 사이의 실질 경제협력 및 인적교류의 비중이 다소 감소하고 있으나, 2017년 기준으로 아세안과의 교역관계에 있어서 중국, EU, 미국 다음으로 4위를 차지하고 있고, 투자는 EU 다음으로 2위이다. 그리고 일본은 아세안 역외 파트너 국가 중 최대 개발협력 지원 국가이다. 아세안의 우선과제인 4차 산업혁명 대응, 연계성 사업, 인적자원 개발, 사이버 안보 등 초국경 이슈, 청소년 교류사업 등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3], ERIA(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를 통해 아세안의 공동체 비전 및 연계성 마스터 플랜 작성 등 아세안의 정책방향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 메콩국가들과의 협력에도 중점을 두고 있어 2018년 10월 제10차 일본-메콩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도쿄전략 2018’을 발표했다.[4]
중국은 1991년 아세안과 대화관계 수립 후 2003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으며, 2010년 중국-아세안 FTA 이후 교역 및 투자가 급증하였다. 2017년을 기준으로 아세안과의 교역에서 중국은 1위, 투자는 EU, 일본에 이어 3위이다. 2013년 10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인도네시아 방문 시 일대일로 구상(Belt and Road Initiative) 중 21세기 해상실크로드 건설을 아세안과 협력해 나갈 것을 제안하는 등 대규모 협력사업을 통해 아세안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은 2018년 11월, 전략적 동반자관계 15주년을 맞아 ‘중-아세안 전략적 동반자관계 비전 2030’을 발표하고[5], 2020년 목표로서 쌍방향 교역 1조 달러, 투자 1,500억 달러를 설정했다.[6] 또한 메콩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2018년 1월 프놈펜에서 제2차 란창-메콩강 협력회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아세안 국가들과의 갈등, 그리고 공세적인 일대일로 인프라 사업에 대한 부작용과 관련국들의 경계심이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인도와 호주도 2018년 1월 및 3월 아세안과의 특별정상회의를 뉴델리 및 시드니에서 각각 개최하여 대아세안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7] 호주는 1974년 최초로 아세안의 대화상대국이 되었으며, 아세안에 대해 인적자원개발 및 역량강화 등 많은 실질적 지원을 해 오고 있다. 아세안이 규칙기반 질서(rules-based order), 거버넌스 및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지역협력 기구로 발전하도록 협력하고 있다. 인도는 1992년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통해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였으며, 2014년 출범한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정부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新)동방정책(Act East Policy)을 펼쳐나가고 있다(김찬완 2018). ‘강한 인도’를 표방하는 모디정부는 신(新)비동맹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인도양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조하고 있다. 또한 인도는 중견국(middle-power)의 선두국가로서 아세안 및 한국과 새로운 지역질서 형성과정에 협력하기를 희망하고 있다(조원득 2018).
2015년 취임한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정부도 신(新)남향정책(New Southbound Policy)을 통해 아세안과의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로 인해 외교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대만은 1994년 리덩후이(李登輝)정부 시 아세안국가들과의 실질협력을 추구하는 남향정책(Go South Policy)을 전개했다. 중국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차이잉원 정부는 협력 대상국가를 아세안을 넘어 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로 확대하고 ‘온화한 힘(warm power)’ 외교를 통해 사람 중심의 호혜적인 파트너십을 증진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Yang and Chiang 2018; Bing 2017).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아세안 관계를 중시해 왔다. 미국은 1977년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했고,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전환(Pivot to Asia) 및 아시아 재균형 정책(Rebalancing with Asia)을 통해 아시아 관여정책을 분명히 했다. 2015년 아세안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한데 이어, 2016년 2월 미국 서니랜즈에서 아세안-미국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했다.[8] 2017년 1월 미국우선주의를 내걸고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 계기에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을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으로 제시했고, 이어 미국·일본·인도·호주 쿼드(QUAD 2.0)회의가 개최됐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경제번영, 안보 및 거버넌스·법의 지배·기본권 보호 등 3대 축으로 되어 있으며, 미국은 모든 나라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번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지배가 아닌 협력을 추구하고 권위주의와 침략을 결코 용인치 않을 것이라 함으로써 이 전략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질서가 중국의 부상으로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는 상황 하에서 인도-태평양의 지정학적 공간과 이 지역에서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쿼드등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정구연 외 2018).
인도–태평양 전략과 신남방정책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관련국들의 입장은 중국의 위협에 대한 인식 및 대응방안에 있어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인 일본은 2018년 10월 아베 신조 총리의 방중에서 보듯이,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아울러 모색하고 있다. 특히 제3국의 인프라 사업에 공동 진출하기로 함으로써 일본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결과가 됐다. 인도와 호주도 중국과의 경제관계의 중요성(중국은 이들 국가들의 최대 교역국임) 때문에 중국을 계속 압박하는 데에는 부담을 갖고 있다. 아세안의 입장은 더 더욱 복잡하다. 전통적으로 비동맹 중립 입장인데다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도 있으므로,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에 말려들기를 원치 않고 있다. 특히 대외관계의 핵심인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이 미·중간 대결 구도로 인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협력해 나갈지 세심한 검토와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지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신남방정책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 지 중요한 과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지향하는 가치와 구체적인 사업에 있어서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협력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첨예화되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은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들이 피하고 싶은 구도일 것이다. 싱가포르 이센룽 총리도 아세안 정상회의 연설에서 “아세안이 어느 한 쪽만을 편드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우리는 아세안, 인도, 호주 등 입장이 유사한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해서 우리 외교의 전략적 공간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역구도가 특정국을 겨냥하지 않고 포용적으로 발전해 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조양현 2017, 최원기 2018).
신남방정책의 성공전략
신남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9] 아세안 국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환영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실천 로드맵과 핵심사업들이 제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처럼 주요 외교 아젠다로 자리잡지 못하여 한반도 문제나 강대국과의 관계가 불거지면 소홀히 다루어지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첫째, 신남방정책의 비전, 구체적인 전략과 실천 로드맵을 계속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그 모멘텀을 유지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에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 등 보편적인 가치(value)에 대한 내용이 미진한 바, 아세안이 “규칙에 기반한 아세안(Rules-based ASEAN)”을 지향하고 있음에 비추어 이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이 아세안의 통합과 발전을 지원하는데 있어서도, 아세안이 효율적인 다자주의를 통해 “규칙에 기반 한 다자주의 체제(Rules-based Multilateral System)”로 발전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방향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ASEAN 2019).
한-아세안 실행계획(Plan of Action to Implement the Joint Declaration on Strategic Partnership for Peace and Prosperity 2016-2020)을 보면 광범위한 분야의 협력이 총망라되어 있으나 구체사업들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협력사업의 경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각 분야별로 임팩트 있는 대표적인 사업(flagship projects)들이 조속 발굴되어 충실히 실행되어야 한다.
둘째, 한-아세안 관계의 단·중·장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궁극적으로 어떠한 관계를 지향할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의 3P는 ‘더불어 잘 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의 지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를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사람 중심의 미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진정한 이웃이자 마음을 나누는 공동 운명체(common destiny)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단기적인 이익이나 가시적인 성과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단지 교역·투자액 및 인적교류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서로를 신뢰하고 평가하는 질적 고도화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셋째, 아세안과의 외교를 한반도 주변 4강 수준으로 격상한다고 했는데 ‘4강 수준’의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의미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구체적 입장과 행동이 수반되지 않고 그저 막연한 수사에 그칠 경우 오히려 실망감을 초래할 수 있다. 일례로 북한문제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 아세안측이 어떠한 역할과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지, 그리고 어느 수준의 전략적 협력관계로 가져 갈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넷째, 지나치게 우리 입장 중심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 한-아세안 양측의 정치·경제·사회적 환경변화를 감안하고, 상대방의 관심과 우선과제를 반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양 방향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신남방정책은 호혜적인 파트너십(mutually beneficial partnership)구축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협력이 가능하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아세안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잠재력이 큰 파트너이며, 포스트 차이나로서 주목받는 경제권이다. 아세안 공동체를 출범시켜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분야에서 통합을 추구해 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계성(connectivity) 강화가 중요하며, 역내 국가 간 소득 및 기술 격차 해소가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연계성 강화, 기술협력 등 아세안의 통합을 지원하고 개발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협력 사업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의 발전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이 식민통치, 전쟁 및 빈곤을 극복하고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한 한국에게 아세안이 가장 기대하는 바다.
다섯째, 역내 다른 국가들의 대아세안정책과 협력을 도모하는 가운데 차별화 된 정책과 사업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 다른 국가의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우리의 과거 정책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강대국인 중국이나 일본과 협력의 규모 면에서 경쟁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은 강대국들의 지원확대에 따라 이들 국가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에 대해 일말의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그 틈새를 파고들어 우리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우리는 강대국들과 달리 아세안 국가들과 역사적으로 식민통치의 굴레나 영토분쟁이 존재하지 않으며 국제정치의 패권적 의도도 없다. 따라서 한국과 아세안은 같은 중견국 지위로서 진정하고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한-아세안 관계는 양자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중견국에 걸 맞는 역할과 기여를 함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섯째, 대아세안 정책과 동남아 개별국가 전략은 상호 보완적으로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세안의 통합 제고를 위한 과제, 메콩지역 소다자주의 협력을 위한 과제 및 동남아 개별국가 협력 과제 대한 분명한 인식과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베트남 등 어느 특정국가에 대한 쏠림현상은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고 아세안 통합 움직임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 국가별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
일곱째, 구체적인 정책과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 각 부처, 관련 기관 및 지자체 등에 분산돼 있는 다양한 사업들을 총괄·조정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정부 및 관련 기관에 신남방정책을 담당하는 제도와 전문인력이 마련되고 관련 예산이 지원돼야만 사업이 충실히 이행될 것이다.
여덟째, 신남방정책은 정부의 흔들림 없는 입장과 아울러 국민적인 이해와 지지, 그리고 아세안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요즘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하에서 우리 경제도 많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신성장 동력도 찾아야 하고 새로운 시장도 개척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아세안은 우리의 최적의 전략적 파트너이다. 우리의 시급한 현안들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산업력 강화, 공적개발원조(ODA) 증대를 배려하느냐는 등의 근시안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호혜적인 파트너십에 대한 국민적인 이해와 공감대 없이는 신남방정책의 지속적인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한국과 아세안이 상호 이해를 통해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비로소 한-아세안간 진정한 파트너십이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도와 북한을 국제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이끌어 내는데 있어 아세안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과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아세안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하는 메카니즘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차례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아세안 국가인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개최된 것도 좋은 기회다. 아세안 10개국 모두가 북한과 외교관계를 갖고 있으며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가 북한에 상주대사관을 갖고 있다. 북한도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고 있다. 1995년 ‘동남아 비핵지대화 조약(SEANWFZ)’을 체결한 아세안은 북한 핵문제를 이 지역의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해 한국 및 국제사회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또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갈 때 벤치마크할 모델로 베트남과 싱가포르가 거론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와 같이 긴밀한 협력관계의 아세안과 협조해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아세안안보포럼(ARF)에 2000년 가입해 매년 참가해 왔고 동남아 우호협력조약(TAC)에도 2008년 가입했다. 앞으로 아세안의 협의 메카니즘에 북한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편,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남북 경협이 본격화 될 경우 한국 기업들의 아세안 진출 동력이 떨어질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지적되고 있다. 이는 제로섬의 차원에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 화해와 협력은 한-아세안 협력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총체적으로 더 큰 파이, 즉 더 큰 협력과 혜택을 창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남·북·아세안 간 새로운 협력의 기회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협력사업
신남방정책으로 한-아세안관계 발전의 모멘텀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협력사업들이 조속히 제시되어야 한다. 신남방정책의 3P 비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사업들이 검토 가능할 것이다.
<표> 신남방정책 협력사업의 예
3P 분야별 | 중간범주 | 구체전략 |
사람 (People) |
인식제고 | · 상호 이해 및 인식 제고 사업: 한국 내 ASEAN Studies 및 아세안국가 내 Korean Studies 지원 · 한국 대학 또는 연구소에 ASEAN Studies Centre를 설립하여 아세안 국가의 ASEAN Studies Centre와의 협력 및 네트워크를 강화 · Network of ASEAN-Korea Think-Tanks 구성 및 교류 사업 · 국제적 수준의 한-아세안 포럼을 창설 및 정례화[10] · 한-아세안의 날(ASEAN-Korea Day) 제정 |
문화교류 | · 쌍방향 문화교류 사업으로서 부산 아세안문화원과 방콕 아세안문화센터가 주관하는 문화행사 ※ 올해는 아세안 문화의 해(ASEAN Year of Cul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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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강화 | · 인적교류 및 인적자원개발·역량강화 사업 · 차세대 지도자로서 청소년 교류사업의 획기적 강화(장학생 및 연수 기회 확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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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교류 및 이주 | · 아세안국가 국민들의 입국 비자 간소화 · 고용허가제 개선, 다문화가정 및 이주 근로자 권익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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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번영(Prosperity) | 기업지원 | ·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R&D 센터 및 Capacity-Building Centre 설립[11] · 중소기업 지원 사업(TASK, TVET 사업들을 확대 발전) · 경제·산업정책 연구기관 지원 사업(베트남의 V-KIST, 미얀마의 MDI 등) |
연계성 | · 한-아세안센터 주관 ‘아세안연계성포럼’ 확대 개최 (ADB, World Bank, AIIB, ESCAP 등과 협조체제 구성) | |
FTA | · FTA 교섭 가속화(RCEP, AKFTA 업그레이드,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 등과의 양자 CEPA) | |
평화(Peace) | 미래비전 | · 한-아세안 현인회의(Eminent Persons Group) 구성, 미래비전 및 추진방향 제시[12] |
상호이해 | · 한반도 DMZ 평화공원과 연계할 수 있는 평화공원 또는 평화기념관을 전쟁을 극복한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인도차이나 국가에 건립 · 한-아세안 공동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내 지뢰와 폭발물 제거 및 커뮤니티 재건 사업[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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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안보 | · 비전통안보 및 초국경 분야 협력 강화 |
출처: 저자와 「한-메콩 정상회의 격상전략」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센터 연구팀 의견 종합 제안
한국의 핵심파트너 아세안
한국과 아세안은 이미 핵심 파트너로 발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아세안과의 관계를 우리 외교의 핵심과제로 자리매김한 신남방정책은 시의적절하고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과제이다. 또한 신남방정책은 한 정부의 정책으로 그쳐선 안 되고 국가의 정책으로서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고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아세안 관계는 역시 ’사람 중심’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서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상호존중 하에 우리의 이웃이자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공동 운명체(common destiny)로 인식될 때 진정하고 지속적인 파트너십이 가능할 것이다.
올해는 신남방정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세안과의 공식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여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연말 한국에서 개최되고, 그 기회에 한-메콩 정상회의도 처음으로 개최된다. 아세안과의 특별정상회의 개최는 2009년과 2014년에 이어 3번째로, 아세안 협력파트너 10개국 중 특별정상회의를 3차례 갖는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정부로서는 목전의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목표 하에 신남방정책의 비전, 구체적인 추진전략과 실천 로드맵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제시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흔들림 없는 입장과 착실한 실행, 국민적인 이해와 지지, 그리고 아세안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이다. 올해 개최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가 한-아세안 관계의 의미있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저자소개
김영선(55yskim@hanmail.net)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석사학위(정치학)를 받았다. 주인도네시아 대사 및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한-아세안관계 및 동남아시아 정치를 연구 중이다. 현재 일간지에 ‘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란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1] 2009년과 2014년 정상회의 시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공동성명의 타이틀은 “Our Future Vision of ASEAN-ROK Strategic Partnership, ‘Building Trust, Bringing Happiness’,” 이었다.
[2] 2017년 말 기준으로 아세안은 한국의 2번째로 큰 무역 및 투자 파트너이며, 건설 수주대상이다. 또한 아세안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지역이다. 한편, 아세안에게 한국은 10개 대화상대국 중 5번째로 큰 교역·투자 파트너이며, 아세안 지역 방문자 수는 역외 국가에서 중국 다음으로 2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3] 일본-아세안 관계수립 4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 시 “Vision Statement on ASEAN-Japan Friendship and Cooperation: Shared Vision, Shared Identity, Shared Future”(2018.11.14.) 발표하였다.
[4] “Tokyo Strategy 2018 for Mekong-Japan Cooperation(2018.10.9.)”에서는 효과적인 연계성, 사람중심의 사회, 녹색메콩의 실현 등 3대 협력방향을 제시하였다.
[5] 아세안과 중국의 관계는 “ASEAN-China Strategic Partnership Vision 2030(2018.11.14.)”에서 나타난다.
[6] Chairman’s Statement of the 21st ASEAN-China Summit to Commemorate the 15th Anniversary of ASEAN-China Strategic Partnership(2018.11.14.)에서 볼 수 있다.
[7] Delhi Declaration of the ASEAN-India Commemorative Summit to Mark the 25th Anniversary of ASEAN-India Dialogue Relations(2018.01.25.), Joint Statement of the ASEAN-Australia Special Summit: the Sydney Declaration(2018.03.18.) 등에서 나타난다.
[8] 미국의 대아세안 정책은 “Joint Statement of the ASEAN-U.S. Special Leaders’ Summit: Sunnylands Declaration(2016.02.17.)”에서 볼 수 있다.
[9] 필자는 이와 같은 내용으로 2017년 “신남방정책- ‘포스트차이나’ 아세안을 잡아라”(『친디아 플러스』 Vol.127)에 기고한 바 있다.
[10] 한-아세안간 학술회의나 포럼이 여러 기관에서 산발적으로 개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국제적인 포럼을 출범시킬 필요가 있다. 대만의 경우 Yushan(玉山) Forum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11] 일본의 경우, 지난해 사이버안보를 주요의제로 다루고, 방콕에 ASEAN-Japan Cybersecurity Capacity-Building Centre를 건립하기를 하였다.
[12] 한-아세안 현인회의는 2009년 구성한 바 있으나 최근 지정·지경학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새롭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13] 이 사업은 한-메콩 정상회의의 성과사업으로도 추진 가능하다.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시 지뢰 및 폭발물 관련 ASEAN Regional Mine Action Centre(ARMAC)와 협력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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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