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공동체와 신남방정책에서 ‘사람중심(people-centered)’ 가치는 구체적 목표와 전략 수립에 전제되는 공통의 기본정신이다. 정부가 신남방정책의 주요 파트너인 아세안과 같은 기조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한-아세안 지역협력을 심화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요인이 된다. 한-아세안 지역협력에 있어서 ‘사람중심’ 가치는 상호 인적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인적교류의 양적확대 만으로 사람을 통한 한국과 아세안의 호혜적 관계와 상호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아세안 회원국 국민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목적과 머무는 기간이 매우 다양하므로 그로 인해 한국과 아세안 양쪽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사회문화적 파급효과는 단기적이고 단순 인과적이기보다는 중장기적이며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조영희(IOM이민정책연구원)
신남방정책의 ‘사람중심’ 가치와 이민정책 관련성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계기로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관계는 경제적 교역관계 뿐만 아니라, 정치‧안보, 사회‧문화 분야에서 모두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신남방정책의 3가지 목표(사람, 번영, 평화)에 부합되는 정책과제가 범부처 차원에서 추진되는 거버넌스가 형성되었다. 이는 그 동안 대 아세안 정책과 특별히 관련 없었던 국내 여러 정책들이 신남방정책의 비전인 “사람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하도록 촉진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 아세안 외교에서 기존과 다른 큰 변화이다.
특히 신남방정책에서 기본이 되는‘사람중심’가치는 지금까지 한국의 대 아세안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었거나 혹은 단순 상호방문이나 문화교류 수준에 국한되어 있던 것을 넘어 사람의 국경이동에 관한 절차적 문제, 국제이주로 인한 출신국과 거주국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에 관한 문제로까지 관심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아세안 지역협력의 의미를 이민정책이라는 렌즈를 통해 조망해보는 것은 의미 있다. 이민정책은 단순히 사람들의 국경이동에 관한 출입국 절차(촉진과 통제)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국경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거주국에서의 체류, 사회통합, 그리고 본국으로의 귀환과 재통합 등 국제이주의 모든 단계에 관련된 광범위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5년 유엔 지속가능한개발목표(SDGs) 수립을 계기로 국제이주가 개발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고려하는‘개발친화적(development-friendly)’[1] 이민정책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제이주가 당사자뿐만 출신국과 거주국 사회에 부담이 아닌, 상호발전의 계기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 내 체류자 중 중국출신(중국국적재외동포 포함) 이주자를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아세안 회원국 국민들이 한국으로의 국제이주를 통해 삶의 질이 향상되고, 양쪽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한다면, 그것은 ‘개발친화적’ 이민정책의 성과임과 동시에 신남방정책의 3가지 목표(사람, 번영, 평화)에도 부합하는 정책일관성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선발이민국가에는 자국 내 체류외국인 중 다수를 차지하는 특정지역이나 국가 출신 이주자에 대한 특화된 이민정책이 있다. 특히 식민지배 경험이 있는 유럽의 국가들은 식민시대가 끝나고 난 뒤, 식민지 국가 출신자가 자국으로 이주해오는 것을 비식민지 국가 출신자에 비해 용이하게 해주는 우대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이래, 결혼이민자와 비전문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국내 체류 아세안 국가 출신 인구의 비중은 급격히 증가해왔다. 비록 한국정부가 그들에게 특화된 국경출입과 체류관리, 사회통합과 재통합에 관한 이민정책을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아세안 국가 출신 이민자는 지난 10년 간 한국 이민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준거 집단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한-아세안의 상호 인적교류 규모 확대를 위해 국경이동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발굴해오고 있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한–아세안 지역협력의 시작, 인적교류 규모의 확대로부터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는 한-아세안 상호방문객 수가 매년 급증하고 있으므로, 2020년까지 연간 상호방문객 수 1,500만 명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양적확대 목표 하에 정부는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비자간소화를 통해 국경이동의 편이성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8년 1월부터 동남아 3개국(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국민 대상 한국 입국 편이를 위해 우수기업 및 우수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제출서류를 간소화하였다. 또한 2018년 12월부터는 기존 복수비자 대상을 확대하여 아세안 10개국의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가 및 국내 4년제 대학 학사와 해외 석사학위이상 소지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년 유효기간의 단기방문 복수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단, 베트남의 경우, 최근 박항서 감독의 현지 인기를 바탕으로 일고 있는 베트남의 한국 특수를 고려하여 소득수준이 높은 베트남 대도시(하노이, 호치민, 다낭) 거주민 대상으로는 5년 유효기간의 단기 방문 복수비자를 적용한다.
2019년 5월부터는 아세안 국가 중 한국으로의 입국자가 비교적 많은 베트남(하노이, 호치민)과 인도네시아(자카르타)를 대상으로 비자신청센터를 설치하고 운영을 시작했다. 이 센터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현지 대사관에서 수행하던 비자발급을 위한 업무(접수, 심사, 교부) 중 접수와 교부 업무가 외부 선정 업체에 대행됨에 따라 비자 발급 심사과정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또한 정부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9년 6월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단체관광객 대상으로 단체전자비자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이전까지는 재외공관에 단체비자를 신청하고 받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법무부가 운영하는 온라인싸이트(대한민국 비자포털)에서 전자비자를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게 된다. 기존에 정부는 중국 단체관광객에게 한해서 단체전자비자를 허용했는데, 중국 외 다른 국가 일반단체관광객에 단체전자비자를 적용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신남방정책 시기 인적교류 규모의 확대를 위한 정부의 목표수립과 이행 노력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적교류 확대를 넘어, 국제이주를 통한 한–아세안 공동번영으로
한국과 아세안의 상호 인적교류 규모를 확대하는 것은 ‘사람중심’가치를 기조로 하는 지역협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인적교류 양적확대 만으로 사람을 통한 한국과 아세안의 호혜적 관계와 상호 번영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국경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주양상은 관광, 방문, 교류 등 단기체류도 있지만, 노동이나 유학, 결혼이나 가족재결합을 목적으로 한 장기체류, 나아가 거주국에서 귀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주자 등 다양하다. 이렇듯 다양한 목적에 따라 이주 유형과 체류기간이 다르므로 한국과 아세안 양쪽에서 이주로 인한 경제적, 사회문화적 파급효과는 단기적이고 단순 인과적이기 보다는 중장기적이며 복합적인 차원에서 나타난다.
국경을 이동하는 한-아세안 사람들이 이주를 통해 개인과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출신국과 거주국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개발친화적’ 이민정책 차원에서 한-아세안 인적교류의 양과 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아세안 출신 이주자의 국경 출입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단, 장기 체류와 그에 따른 체류관리 및 사회통합‧재통합 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이민정책이 효과적으로 이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신남방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이민정책의 부수적 역할이 아니라, 이민정책과 신남방정책의 상호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정부 정책의 일관성 이행 과정이다.
한편, 신남방정책 시기 정부가 한-아세안 이민협력을 심화하고 효과를 높이려면 우리의 파트너인 아세안과의 정책조화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7년에 창설된 아세안이 2015년 아세안공동체를 선언하기까지 기본 정신으로 삼아온‘사람중심’가치와 관련하여 그 동안 어떠한 계획들을 수립, 실행해왔으며 그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 간략히 살펴보고, 파트너와의 정책조화 차원에서 한-아세안 이민협력의 대응 주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아세안 차원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사람과 관련된 지역협력 차원의 노력은 크게 노동이주, 국경이동의 촉진과 관리, 인적자원 개발 등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 주제는 한국정부가 국제이주에 관한 한-아세안 지역협력을 추구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내용이다.
비전문인력의 노동이주
아세안 역내 이주노동의 규모 중 약 88%를 차지하는 비전문노동이주는 주로 미얀마 ‧ 라오스 ‧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로,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의 이동경로에 집중되어 있다. 이렇듯 큰 규모 때문에 아세안 내 비전문인력의 노동이주 문제는 송출국과 유입국 당사국 간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아세안 차원의 지역협력에서도 민감한 이슈로 다루어져 왔다. 1975년 4월 자카르타에서 시작되어 2년마다 개최되는 아세안노동장관회의(ASEAN Labour Ministers’Meeting)와 그 하부구조인 고위노동관료회의(Senior Labour Officials Meetings)는 40년 이상 아세안의 노동관련 지역협력을 추진하는 대표적인 기구이다.
아세안에서 노동이주에 관한 지역협력 차원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7년 쎄부에서 열린 12차 아세안정상회의에서‘이주노동자의 권리보호와 증진에 관한 선언(ASEAN Declaration on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the Right of Migrant Workers)’이 채택된 이후부터다. 동 선언에서는 아세안 회원국들이 이주노동자가 송출국과 수용국 모두의 사회와 경제에 기여한다는 데 대한 공동 인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세안 내에서 비전문인력의 노동이주는 여성의 비율이 높고 그들 중 대부분이 가사분야 이주노동자라는 점으로 인해 인권, 보건, 안전, 체류신분 등 민감한 이슈와 관련되어 있어 아직까지 송출국-수용국 양자 관계 및 아세안 지역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비전문인력의 역외 노동이주에서 한국은 아세안 국가 출신 국민들의 주요 목적국 중 하나이다. 일례로, 캄보디아에서는 인접국인 태국으로의 노동이주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한국일 정도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정부가 90년대 산업연수생제도를 대체하는 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 EPS)를 2004년에 도입하면서 아세안 출신 비전문이주노동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정부 간 고용허가제 협약을 체결한 16개 송출국 중 7개 국가가 아세안 회원국이다. 체결순서로 보면 베트남(2004), 필리핀(2004), 인도네시아(2004), 캄보디아(2006), 미얀마(2007), 라오스(2016) 순이다. 국내 체류자의 국적별 규모로 보면, 전체 비전문이주노동자 중 캄보디아가 13.6%(38,197명), 베트남이 13.5%(37,828명), 인도네시아가 10.4%(29,138명)를 차지한다. 한국정부가 매년 송출국마다 인력쿼터를 할당해주기 때문에 아세안에서 한국으로 오려는 비전문인력 이주노동자들의 취업경쟁이 해당국가 내에서 매우 치열하다. 한국취업 요건으로 EPS-TOPIC이라는 한국어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비싼 한국어학습 비용과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한국으로의 이주노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본국과 한국의 노동임금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 때문에 고용허가제는 아세안 7개 협약체결국가로터 비전문외국인력을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최초 허가된 3년의 체류기간이 만료되면 해당 이주노동자가 반드시 본국으로 귀환하도록 설계된 제도이기 때문에 아세안 출신 비전문외국인력의 정주가 허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2012년부터 취업활동 기간 중 고용주에 의해 성실 근로자로 인정되면, 재입국과 재취업이 가능한 길을 일부 열어놓았지만, 그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9년 8개월이다. 합법적인 체류 기간 동안 얻은 경제적 소득을 기반으로 본국에서의 삶에 대한 준비가 된 경우라면, 아세안 이주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세안 송출국의 경제와 고용 상황이 어렵고 본국과 한국의 임금격차는 매우 크기 때문에 비전문인력 이주노동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미등록 장기체류자 신분의 불안정한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고용허가제를 기반으로 유입된 아세안 출신 비전문이주노동자가 한국 이주경험을 통해 개인적 삶의 질이 향상되고 한국과 본국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 간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인력송출 협약을 체결한 7개 아세안 국가들은 이주의 모든 단계-출국전, 국경이동, 체류, 귀환-를 유기적으로 고려하여 단계별로 필요한 협력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아세안 고용허가제 인력 송출국에서 운영되는 이주노동자 출국 전 사전교육과 귀환‧재통합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함께 개발하고 실행하는 등 구체적인 정책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아세안 출신 비전문이주노동자가 체류하는 동안 사회에 잘 정착하고 적절한 권리를 누리고 동시에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통합교육의 기회도 잘 마련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비정주형 이주자에 대한 사회통합정책은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국내 체류 비전문노동이주자 중 가장 큰 규모(40%이상)를 차지하는 아세안 출신 국민들의 사회통합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짧게는 3년에서 최장 9년8개월까지 체류하는 동안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비정주 비전문이주노동자에게도 적합한 사회통합 정책이 개발‧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전문인력의 노동이주
아세안에서 비전문인력의 노동이주에 대한 협력은 선언이나 고위급 회의체 등을 통해 이루어져 온데 비해, 전문인력에 관한 부문은 제도적 수준에서 일부 진전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엔지니어링, 간호, 건축, 조사, 관광, 의술, 치의, 회계 등 8개 분야의 전문인력이 아세안 역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상호기술인증협약(Mutual Recognition Arrangements)을 2005년부터 4년에 걸쳐 모두 체결 완료한 것이다. 그 후 2012년에 아세안은 비자발급 간소화 조치인 자연인의 이동에 관한 협약(The ASEAN Agreement on the Movement of Natural Person)을 완료하고 상품교역, 서비스, 투자 관련 기업활동의 국경이동의 편이 제공을 위해 아세안포괄투자협정(The ASEAN Comprehensive Investment Agreement)을 체결하여 기업의 투자자, 임원, 관리자, 이사 등 자격에 해당하는 개인에게 자유로운 입국, 체류 및 노동활동을 허가하였다.
그러나 아세안에서 전문인력의 상호기술인증협약이 체결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아세안 내에서 전문인력의 노동이주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아세안 내에서 전문분야의 기술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상호 비교할 수 있는 아세안의 검증기준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국가별 개발격차에 따라 차별적인 노동의 질, 임금차이, 국가별 수요공급격차, 비자문제, 민간 영역의 채용절차 등 문제는 현실적 장애물로 남아있다. 더욱이 이 제도는 고용, 시민권, 거주 혹은 영주 목적의 아세안 내 국제이주를 위한 개인에게 자유로운 노동이주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며, 출신국에서 등록된 회사에 고용된 개인에게만 해당되고 그나마 8개 분야에만 허용된다는 점에서도 제한적이다.
한국과 아세안 관계에서 전문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관한 쟁점은 아세안에서 상호기술인증협약에 해당하는 8개 분야 보다는 숙련기술(semi-skilled)분야에 대한 것이다. 산업발전에 속도를 내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에게 숙련기술 훈련 및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반면, 하이테크 산업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한국에서는 숙련기술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며, 특히 소재를 부품으로,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초공정산업에 관련된 뿌리산업(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분야의 인력수급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7년 12월부터 외국인숙련기능인력 점수제비자를 시행하여 비전문노동이주자 중 숙련도를 갖춘 자를 선발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오고 있다. 이에 한국의 숙련기술노동시장 공급부족 문제와 아세안의 숙련기술인력 분야 교육 수요가 결합되면, 한국에서 내국인으로 채워지기 어려운 숙련기술인력을 아세안 출신 이주노동자로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례로, 정부가 2014년부터 전국의 8개 전문대학을 통해 양성하고 있는 뿌리산업 분야 숙련기술인력 70%가 베트남 출신 유학생이라는 점은 베트남의 현재 경제발전 단계에서 숙련기술분야 인력양성과 교육수요가 매우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채택되고, 2014년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수정, 확대된 아세안연계성마스터플랜(Master Plan on ASEAN Connectivity 2025)에서도 직업훈련교육 강화를 인적연계(people-to-people connectivity) 부문의 주요 전략 목표로 두고 있기 때문에 신남방정책 시기 정부가 아세안 국가 출신 국민 중 요건이 되는 자를 선발하여 이미 추진 중인 숙련기술외국인력 양성사업에 적극 연계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발표에 따르면, 전문대학에 뿌리기술외국인력으로 허가된 연간 쿼터 100명을 2019년부터는 300명으로 확대하였다. 앞으로 숙련기술분야 직업훈련 수요가 높은 아세안 국가 출신 국민이 한국의 이 제도를 활용해 참여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이른바 육성형 이민정책의 좋은 사례이자 동시에 우리의 주요 파트너인 아세안의 숙련기술교육 수요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신남방정책 시기 한-아세안 이민협력을 질적으로 심화하는 계기가 된다.
국경관리와 이동의 촉진
1995년 아세안정상회의에서는 이민문제에 관한 지역협력을 통해 아세안에서 사람의 국경이동을 촉진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세안경제공동체 발전에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아세안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민 당국 협의체를 구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 양곤에서 개최된 제 3차 아세안이민당국 회의에서는 아세안의 이민협력 제도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고위급전문가그룹회의를 조직하고, 이러한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아세안 역외 파트너국가들과의 협력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00년에 발표된 이민에 관한 협력을 위한 아세안행동계획(ASEAN Plan of Actions for Cooperation in Immigration) 이니셔티브에는 이민관련 제도와 기관의 현대화, 이민당국의 역량강화를 위한 지역 차원의 목표와 과제가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또한 아세안연계성마스터플랜의 인간이동(people mobility) 부문에서 이민문제에 관한 협력을 위해 아세안 역내 이주와 여행의 편이제공을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고 비자절차의 간소화를 위해 아세안에서 통용되는 전자비자 및 원스톱발급서비스 포털 개발 등을 추진하는 중이다.
이와 같은 아세안의 노력을 감안해볼 때, 국경이동 촉진과 관리에 관한 한-아세안 이민정책 협력은 출입국행정 제도와 시스템 구축, 그리고 이민당국의 역량강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국은 전 세계적인 IT 강국으로서 2004년부터 추진된 출입국관리서비스체계 과학화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되는 수준에 이르러 아세안의 이민분야 제도 발전에 필요한 지원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우리 정부가 KOICA 무상원조(ODA)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라오스 이민당국 지원 사례는 한-아세안 출입국행정 과학화를 위한 이민협력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KOICA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5년 기간(2017-2021) 사업에서 라오스의 출입국행정 현대화 구축을 위해 라오스 이민국 신청사 건립사업(2017-2018)을 완료하였고, 현재 출입국행정역량강화사업(2019-2021) 추진계획을 수립 중이다. 2019년 착수하게 될 출입국행정역량강화사업의 주요 내용은 라오스 출입국 행정 발전 마스터플랜 수립, 출입국 기관장 워크숍, 초청연수 및 현지연수로 구성되어 있다. 동 사업은 아세안연계성마스터플랜 및 이민에 관한 협력을 위한 아세안행동계획의 과제와도 일관성을 갖는다. 라오스출입국행정 현대화 사업은 ODA정책으로 시작되었지만, 개발원조의 구체적인 내용이 국경이동의 관리와 촉진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국제이주와 개발원조가 잘 연계된 시도라는 점에서 앞으로 이 사업의 성과와 결과를 주목해 볼 만하다.
아세안에서 국경이동의 촉진과 관리에 대한 또 하나의 진전은 2006년 사증면제 아세안협약(ASEAN Framework Agreement for Visa Exemption)을 체결하고 역내 무비자제도를 추진한 결과 현재 10개국 모두 역내 국가 간 무비자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 협약에 따라 유효한 여권을 갖고 있는 아세안 회원국 국민들은 단순방문 목적인 경우 입국일로부터 14일까지 체류 비자를 면제받는다. 현재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과의 무비자제도는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브루나이 등 4개국에 대해서만 시행 중이다. 이들 국가와의 무비자제도는 공통적으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사증면제 협정을 기반으로 시행되었으며, 당시 내국인의 해외진출을 촉진하고 한국정부의 외교 관계를 확장하려는 목적 하에 추진되었다.
무비자제도는 국경이동을 자유롭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적극적인 조치이지만, 아직까지 무비자 제도가 사회경제적으로 어떠한 편익 효과를 발생시켰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무비자 제도로 인한 부정적 측면 즉 국가안보 및 사회경제 분야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예: 무비자입국자의 불법체류, 테러 위협 증가 등)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무비자 제도 시행의 긍정적, 부정적 파급효과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명확한 산출근거를 바탕으로 한 이민정책적 숙고와 결정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정부는 아세안 10개국 전체에 대한 무비자제도를 일시에 확대하기보다 일부 국가에 한해 복수사증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단계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견지에서 법무부는 작년부터 베트남 하노이, 호치민, 다낭 거주자를 대상으로 복수사증 발급요건을 완화하였다. 그러나 현장의 사증심사 인력이 매우 부족하여 비자 간소화를 악용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인도 존재하므로 최근 시행중인 아세안 일부 국가 국민대상 복수사증제의 정책 기대효과가 충분히 입증된 후, 심사인력 증원 등 기본적 인프라구축과 연계하여 점진적으로 입국 문호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인적자원 개발과 활용
아세안의 3가지 공동체(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중 사회문화공동체는 아세안의 기본정신인‘사람중심’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축이다. 제 27차 쿠알라룸프르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승인된 <아세안 사회문화공동체 2025>의 청사진에 따르면, 사회문화공동체의 6대 영역 중 국제이주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아세안의 지역협력 과제는 인적자원개발이다. 특히 아세안은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제도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데, 인적자원개발 사업의 핵심기구인 아세안교육장관회의에서는 역내의 교육 이동성 확보와 국제화를 위해 아세안대학네트워크(ASEAN University Network)를 통해 상호학점교류 및 상호인정제도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세안 연구자와 과학자들의 협력적인 연구와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1995년에 창설된 아세안대학네트워크에는 26개 주요 대학이 참여하며 학생 및 교수 교환프로그램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마다 고등교육의 인프라 수준, 자격조건, 학기 체계가 상이하고 아세안 내 저소득국가에서 고등교육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 현실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아세안의 고등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은 역내에서의 유학생 이동을 촉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외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유학생 유치를 위한 이민정책은 아세안 회원국에 특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2018년 기준 국내체류 전체 외국인유학생 160,671명 중 아세안 국가 출신 유학생(유학, 한국어연수, 외국어연수 모두 포함) 수는 베트남 45,143명, 인도네시아 1,520명을 포함해 전체 51,790명으로 약 32%를 차지한다. 이러한 양적 규모는 아세안 회원국 유학생이 한국의 유학생 유치 및 활용 정책의 효과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준거집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최근 아세안 회원국 출신 유학생 일부의 학교 이탈 및 불법체류 발생건수가 급증하는 문제가 제기되어 유학생 유치, 관리, 그리고 활용의 문제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는 정책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아세안 국가 출신 유학생들이 한국 유학경험을 통해 인재로서 성장하고 한국과 본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발전적인 이민협력 방안에 관한 심도 있는 정책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한-아세안센터에서 실시한 <한국과 아세안 청년의 상호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 출신 유학생들은 한국이 본인의 출신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약 60%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한국에서 공부한 아세안 국가 출신 유학생을 한-아세안 공동 발전에 매개로 활용하는 것이 유치 규모 확대나 관리의 강화보다 더 중요함을 시사한다.
기본적으로 유학생 유치와 관리는 이민정책 내에서 기본방향과 틀이 마련된다. 그러나 유학생 활용은 다양한 분야의 정책들과 연계하여 발전시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정부가 2016년에 제정한 「공공외교법」에 따라, 아세안 국가 출신 유학생을 공공외교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외교부는 공공외교기본계획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주요 외교사안 등을 주제로 하는 쌍방향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국내 체류 유학생과의 교류를 강화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아세안의 개발격차 해소와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된 「한-아세안협력기금」과 한-아세안 이주 문제를 연계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과 아세안의 국제이주 전문가(연구자, 학자, NGOs 활동가 등) 및 공무원, 역량 있는 이주민단체를 연결하는 네크워크를 구성하고 상호 정보와 전문성을 공유해 볼 수 있다. 특히 유학생의 경우, 한국 체류 기간 중에라도 본국을 왕래하며 그들이 한국에서 얻은 지식, 경험, 네트워크를 통해 본국의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학업 성취감과 자긍심을 높이고 귀국 후에도 한-아세안의 공동번영에 기여하도록 가교역할을 촉진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의 선발이민국가들이 두뇌유출로 인한 송출국의 개발지연을 완화하는 목적으로 개도국 출신 인재가 본국과 수용국을 오가며 본국의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와 자원을 제공하는 ‘개발친화적’이민정책을 실행해오고 있는 것은 인적자원 개발 차원에서 한-아세안 이민협력에도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
저자소개
조영희박사(choyh999@gmail.com)는
2006년 인하대학교에서 캄보디아 정치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동남아연구소에서 동남아시아의 사람과 문화의 이동에 관한 다년간 연구를 했다. 2012년부터는 IOM이민정책연구원에서 국제이주와 동남아, 지역협력, 국제개발협력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관련 연구로는 「동남아시아 주요 송출국에서 귀환 및 재통합 문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국내 무슬림 이민자 자조모임의 현황과 특성: 인도네시아 사례」, 「2015 ASEAN 경제통합과 한국의 대 동남아시아 FTA: 전문인력 이동에 관한 이민정책적 시사점」, 「아시아 내 국제결혼 관련법과 제도: 한국, 대만, 일본,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국내 이주민 출신국가의 한국행 이주동향」 외 다수가 있다.
[1] 개발친화적 이민정책은 이주의 결정단계, 과정, 경험 및 귀환과 재통합이라는 이주의 전(全) 단계가 개발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가진다고 보며, 개발과의 연관성이 다양한 차원-이주당사자와 그 가족, 지역사회와 송출국가, 수용국, 지역(region)-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는 이민정책을 의미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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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