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큰 군도국가인 인도네시아는 대항해 시대 이전부터 이미 글로벌 무역네트워크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향신료 전쟁의 주 무대였던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다국적 기업에게 매우 매력적인 투자처이다. 한국의 첫 해외직접투자가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오래전부터 한국기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긴 역사만큼 한국기업의 진출 형태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해왔다. 자원을 확보하는 형태에서 노동집약적 우회수츨형 투자로, 수출과 내수를 동시 겨냥한 형태, 그리고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소비시장을 겨냥한 진출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투자진출의 역사는 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를 포함하고 있다. 본 글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도전과 기회를 향신료 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이지혁(서울대학교)
동남아의 대국 인도네시아, 한국과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인도네시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국이다. 흔히 대국이라는 단어와 연상되는 경제 대국, 군사 대국은 아니지만 인구, 자원,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는 대국이다. 인도네시아를 묘사할 때 늘 따라오는 클리셰(cliché)를 읊어보면,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및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동서로 약 5,000Km가 넘는 군도로 이루어진 동남아 유일의 G20국가이다. 또한 300개도 넘는 종족과 600개 이상의 방언을 사용하는 문화적으로 다양성이 넘치는 국가이기도 하다. 범위를 동남아 국가들로 한정해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초대 대통령 수까르노(Sukarno) 때부터 동남아 지역의 맹주로 자리매김하였고 아세안(ASEAN)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큰 외교력을 발휘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위상은 한국정부가 지난 2년 동안 보여준 행보에서도 발견된다. 임기 중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첫 국빈 방문지(2017년 11월)로 인도네시아를 택했다. 이 방문을 기점으로 양국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한국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동남아 국가는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 지난 10월에는 2012년 첫 협상 이후 7년을 끌어오던 인도네시아와의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실질 타결하였고, 11월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기간에 이루어진 한-인니 정상회담에서 최종 타결하였다. CEPA는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하지만 양국 간 상품·인력이동뿐만 아니라 포괄적 교류·협력까지 포함하는 무역협정이다. 인도네시아는 CEPA 타결로 한국에게 전체 상품 중 93%를 개방할 예정인데, 이는 ‘한-아세안 FTA’를 통한 상품 개방 수준인 80.1% 보다 약 13%포인트 높은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동차용 강판, 자동차부품, 석유화학제품 등의 관세를 철폐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산업통상자원부 2019). 이미 아세안 전체와 FTA 협정을 체결한 한국이 아세안 국가 중 양자 간 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베트남과(FTA 2015년)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
현대판 향신료 전쟁
대항해 시대 서구 세력이 아시아와 무역하기 위해 앞 다퉈 만들었던 동인도 회사에서, 과연 ‘동인도’는 어디를 지칭하는 것일까? 당시 ‘India’는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남아시아 아대륙인 지금의 인도를 지칭하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경계가 불분명한 문화적 개념이었고, 무엇보다 몇몇 측면을 고려하자면 오늘날의 동남아를 지칭했던 것으로 추측된다(Brwon 2003). 저명한 동남아 역사학자인 앤서니 리드(Anthony Reid)는 두 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저서 Southeast Asia in the Age of Commerce에서 서양과 동양이 직접적으로 조우하기 시작한 ‘대항해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이미 아시아의 바다에서는 ‘상업의 시대(the Age of Commerce)’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서쪽으로는 유럽의 상인들과 연결된 아랍상인부터, 인도, 동남아, 중국을 거쳐 가장 동쪽에는 일본이 거대한 무역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었다. 1450년부터 1680년까지 지속된 상업의 시대 동안 금과 은을 제외하고 가장 귀중하게 거래되었던 상품은 후추, 정향(clove), 육두구(nutmeg), 메이스(mace, 육두구 껍질을 말린 향신료)였다. 무역선에 선적된 다른 상품에 비해 향신료1)가 차지한 부피는 매우 작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향신료는 귀중한 무역 상품이었다. 첫째, 향신료가 큰 이윤을 창출하는 핫 아이템(hot item)이었을 뿐만 아니라, 둘째, 향신료를 찾아 온 상인들은 인도네시아 말루꾸(Maluku) 제도(향신료 제도)에서 유럽의 지중해까지 연결된 무역 네트워크의 주요 결절점에서 다양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새로운 무역 상품을 발견할 기회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금·은과 달리 향신료는 재배가 가능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었다(Reid 1993). 그런데 처음 인도에서 주로 재배되었던 후추가 동남아의 여러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했던 반면 정향과 육두구의 경우 향신료 제도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의 일부 섬에서만 재배되었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도네시아는 향신료 전쟁의 핵심 국가였다.
16세기 향신료를 찾아 인도네시아에 왔던 상인들은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인도네시아를 떠나지 않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상인들을 유혹했던 향신료는 더 이상 무역의 주 대상이 아니지만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매력으로 다국적 기업과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하고 있다. 향신료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을 이용하려는 현대판 향신료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과거의 향신료 전쟁과 차이가 있다면 인도네시아가 적극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원이용형 성장에 의존하고 수출제조업을 다국적 기업에게 맡기고 기술이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들은 과거의 향신료 전쟁과 비교해서 그렇게 진일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외국자본과 다국적 기업 주도로 이뤄낸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기술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 결과 제조업이 외국 자본과 기술에 너무 의존적이다. 일본을 선두로 신흥공업국(NICs), 그리고 동남아 선발국들이 순차적으로 마치 기러기 떼처럼 경제발전을 이룩할 것으로 예상했던 소위 안행형(flying gees) 모델은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동아시아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모델인가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동남아 선발국들 전반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기술력 있는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성숙 단계에서 탈공업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박번순 2019). 같은 맥락에서 인도네시아의 중소기업은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큰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외형적으로는 경제가 성장했지만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서 고소득 국가로 진입하기에는 자체 기술과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
새로운 플레이어(player)의 등장
과거의 향신료 전쟁과 현대판 향신료 전쟁의 차이 중 가장 주목할 점은 16-18세기에 한 번도 글로벌 무역네트워크에 주 플레이어로 등장하지 못했던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이다. 포르투갈-스페인-영국-네덜란드 등으로 이어지던 역사의 주인공들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금 인도네시아의 주요 투자국들은 모두 아시아 역내 국가인 싱가포르, 일본, 중국, 홍콩, 한국이다(2017년 기준 해외직접투자 순위). 상업의 시대 때 이미 역외 무역과 함께 동남아 역내 무역이 진행되었고, 중국과 일본은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당시 글로벌 무역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 영국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게 인도네시아 향신료 무역의 주도권을 빼앗긴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암본학살(Ambonia Massacre)2) 사건 때 이미 일본인 사무라이가 반란에 깊게 관여되어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일본이 오래 전부터 인도네시아에 진출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상업의 시대 혹은 대항해 시대 동안 세계 무역에서 별다른 역할을 부여 받지 못했던 한국은 풍부한 인도네시아의 산림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1968년 한국 ‘해외직접투자 1호 기업’(한국남방개발, KODECO)을 인도네시아에 건설했다. 이는 한국기업의 해외진출사의 첫 발자국이다. 긴 역사만큼 한국기업 진출의 형태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해 왔다. 한국기업은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이후 엔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거 동남아로 진출한 일본기업의 텃새와 거대 자본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동시에 기업에게는 축복과 같은 한류에 힘입어 ‘한국’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한국기업의 진출 역사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투자 유형을 단순화시켜 시기별로 구분해보면,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와 건설 및 무역 분야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주로 산림자원개발회사, 건설사, 식품회사, 종합상사 등이 진출했다. 1960-70년대 일본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통해 합판 산업이 성장했는데, 이때 원목공급지인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산림자원개발회사들의 진출이 본격화 되었다. KODECO에 이어 인니동화(69년, 코린도 전신)등 다수의 산림자원개발기업이 진출했는데, 코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도산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였다. 이 시기에 진출한 기업 중 현재까지 사업을 지속하는 기업으로는 대림산업(건설, 73년), 미원인도네시아(식품, 73년), 현대건설(건설, 74년) 삼성물산상사(종합상사, 75년) 등이 있다.
초창기에 진출한 기업들을 개척자로 간주한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진출한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분야의 기업을 1세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TGF’라고 불리는 섬유(textile), 의복(garment), 신발(footwear) 제조업에 속한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였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의 노동쟁의, 1990년대 초반의 해외 주요 바이어들의 이탈, 1992년 한국정부의 신발산업 합리화 조치3) 이후 부산에 있던 신발 제조업체들이 인도네시아로 동반 진출을 시도하면서 상당수의 기업이 자카르타 근교에 위치한 반뜬(Banten)으로 이전하였다(이지혁 2018). 당시 민주화로 인한 노동자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과 한국이 개도국에게 주어지는 일반특혜관세(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4)수혜 대상국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 맞물리면서 많은 기업들이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로 진출하였다(엄은희 2013).
1990년대부터는 생산에 직결되는 원부자재 확보와 조립 공정에 필요한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이 진출하였다. 대표적 기업으로 세계 유명 브랜드를 OEM방식으로 생산하는 한국도자기, 현지에서 백색가전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삼성전자 및 LG전자 등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현지의 내수시장과 수출을 동시에 겨냥한 투자진출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빠르게 증가하는 중산층을 고려한 것이다.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겨냥한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인도네시아 국영철강회사인 끄라까따우 스틸(Krakatau Steel)과 포스코가 합작 건설한 끄라까따우 포스코가 있으며, 2019년 현재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본격적으로 내수를 겨냥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2008년에 롯데마트가 네덜란드계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체인 ‘마크로(Makro)’를 인수하면서 소매 산업에 진출했다. 롯데마트는 현지의 특성을 고려하여 도매형 매장과 소매형 매장을 병행 운영하고 있는데, 2019년 말까지 매장을 51개로 확장할 계획이다(연합인포맥스 2019). 더불어 자바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위한 회계, 법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업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인수합병을 통한 금융 분야의 진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변화무상한 투자환경
대항해시대 인도네시아 향신료 무역의 절대강자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아시아 지역에서 수입한 상품을 살펴보면, 1619-1621년 사이에는 후추가 교역액의 56.4%를, 후추를 제외한 향신료가 17.6%를, 그리고 직물이 16.1%를 차지했다. 하지만 1668년-1670년 사이에는 후추가 30.5%, 직물이 36.5%를 차지했고, 1689-1700년에는 후추와 향신료(후추 제외)는 각각 11.2%, 11.7%로 감소하는 반면 직물은 54.7%로 크게 증가하였다. 17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무역에서 후추가 가장 중요한 상품이었다면 그 이후부터 산업혁명까지는 직물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주경철 2012). 자금 및 조직력에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 훨씬 못 미친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향신료 전쟁 초반부에 경쟁에서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암본학살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입지가 약해진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에 집중하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향신료가 아닌 면화, 즉 인도산 캘리코의 수입을 통해 향신료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때까지 면직물이 없었던 유럽에 면직물이 수입되면서 유럽인들은 면으로 만든 옷에 열광하게 되고, 이는 기존의 모직물, 견직물, 특히 리넨 산업에 종사했던 직공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은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산업혁명을 가져왔다.
향신료 무역의 독점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꿈은 21세기의 관점으로 보면 한없이 덧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광활한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무역을 완벽하게 독점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시간이 흘러도 향신료에 대한 수요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었다. 이처럼 현지의 투자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예컨대 70년대 원목을 채취하여 수출했던 기업들이 1985년에 원목 수출을 금지하는 법이 발효되면서 상당수 도산하였는데, 법이 발효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원목을 가공하여 합판을 만들 준비를 했던 코린도(KORINDO) 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2009년 진출하여 기존의 편의점에 카페와 레스토랑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편의점을 선보이면서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세븐일레븐은 2015년 편의점 내에서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 제정으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고전을 하다가 결국 2017년 6월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전면 철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SK 플래닛과 현지의 이동통신사인 엑스엘악시아타와 합작했던 일레브니아 같은 경우 한때 매출로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e-commerce)업계 3위까지 올랐지만 생각보다 뜨겁지 않은 시장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업을 현지 기업(Salim)에게 매각하고 철수했다.
최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할랄과 관련된 문제도 기업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할랄과 관련하여 2001년 일본의 아지노모토社가 생산한 MSG에서 돼지고기 성분이 검출되었던 사건이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아지노모토는 3000톤에 달하는 조미료를 회수해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한동안 공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시장 점유율 1위였던 아지노모토에게 가해진 타격은 경쟁사였던 인도네시아 미원(대상의 현지법인)에게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일부 한국라면에서 돼지고기 성분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유통되었던 라면이 전량 회수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2017년 6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국에서 수입된 라면에서 무슬림들이 금기시하는 돼지 유전자(DNA)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한국라면 네 종류에 대해 수입허가를 취소하고 유통된 제품 전량을 회수하도록 했다. 인도네시아 식품의약청(BPOM)은 유통되는 한국라면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일부에서 돼지의 DNA가 검출됐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품에 돼지고기가 함유됐다는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아 피해를 유발했기 때문에 소비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해당 제품을 즉각 회수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에 유통되는 상당수의 한국제품 수입을 담당하는 M유통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00% 외국자본을 허용할 것인지(개방 업종), 일정 부분만 허용할 것인지(조건부 개방 업종), 아님 국내기업에게만 허용(금지 업종)할 것인지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외국인 투자제한 리스트’(negative investment list) 혹은 줄여서 ‘네거티브 리스트’라고 부른다. 대체적으로 외국자본의 투자 범위를 넓히고 각종 제한을 줄여나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국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아직 빗장을 잠그고 있는 영역도 있다. 예컨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소매유통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시장을 개방하였지만 아직도 400제곱미터 이하의 소규모 매장은 자국기업에게만 허용하고 있다(이지혁 2015).
한편 개도국이라고 해서 전자상거래, 핀테크, IT, 4차 산업 등에 대한 수요가 아직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일반적으로 기술이 발달된 선진국 혹은 산업화된 국가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사업이 시간차를 두고 개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도네시아 시장은 이러한 시간차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 흐름에 빠르게 보조를 맞추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바 지역과 일부 대도시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그 성장속도 만큼은 간과할 수 없다. 사실 인도네시아와 같은 개도국에서는 선진국에서 발견되는 단계적 발전이 아니라 단계를 건너뛰는 소위 ‘leapfrogging’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예컨대 유선 전화, 무선 전화, 핸드폰, 그리고 스마트폰이라는 순차적 발전의 단계를 거쳐 왔던 대부분의 선진국과는 달리 일부 개도국 중에선 유선 전화에 필요한 인프라도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스마트폰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이지혁 201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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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가려진 것들
동남아에서 성공한 화교 및 화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이들이 돈 버는 데 뛰어난 수완이 있다는 선입견이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본국을 떠나와서 힘든 삶을 영위하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쿨리(coolie)들과 사업에 실패한 무수한 사례들이 모두 잊히고 온통 성공 사례에만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 향신료 제도로 탐험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험적인 얘깃거리를 가지고 돌아와 자신들의 모험담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향신료가 가져다준 엄청난 수익에는 선원들이 치른 목숨 값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항해 도중 선원들은 보급품 부족으로 시달려야 했고 많은 수가 괴혈병으로 죽기도 했다. 향신료를 구입하는 과정에 현지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배가 나포되거나 침몰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체 선원의 70%이상 사망한 경우도 흔한 일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602년부터 1795년까지 약 200년 동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선을 이용하여 유럽에서 아시아로 항해한 사람의 수가 총 975,700명인데 이중 다시 유럽으로 건너온 사람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배에서 평균 치사율은 8-9%에 이르고 높은 경우 15%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하네다 마사시 2016).
인구 및 자원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 증가하는 중산층,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화, 동남아 최대의 내수시장,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 발주 등 인도네시아 투자환경을 장밋빛으로 그리고 있는 정보지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한다. 한국기업도 진출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걸출한 사업가인 최계월 회장이 세웠던 KODECO는 ‘해외직접투자 1호’라는 족적을 남겼지만 1980년대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 사업에 참여하였다가 실패하면서 그 명예가 많이 희석되었다. 해외사업을 하면 늘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한다. 한국에서 사업할 때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혹은 일어나더라도 쉽게 해결되었던 일들이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에 실패했거나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에서 사업할 때 예상치 못했던 많은 비용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각종 인허가와 법률적인 문제에서 중앙정부의 규정과 지방정부의 규정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 법률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정부패가 발생하기도 한다. 더불어 국가법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관습법(adat)과 종교법이 공존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일원화된 법체계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인도네시아의 법체계가 매우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도전할 가치가 있는 기회의 땅
위에서 언급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기회를 찾는 한국기업에게 여전히 매력적이다. 성장하려고 꿈틀거리는 대국의 잠재력, 제도적 민주주의의 정착에 따른 정치적 안정성, 한류에 대한 호감, CEPA 타결로 인한 높은 수준의 관세 철폐 등이 한국기업의 진출과 무역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조꼬 위도도(Joko Widodo, 이하 조꼬위) 대통령의 집권 2기가 지난 10월에 출범했다. 조꼬위의 재임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정책의 불확실성과 연속성의 단절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기업에게 안정감을 준다. 조꼬위에게 투표한 많은 유권자들은 지난 5년 동안 그가 이룬 경제적 성과가 그가 2014년 대선 후보 때 약속한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새로운 5년을 두고 지켜볼 정도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한국기업을 포함한 외국계 기업에게도 조꼬위의 재선이 기업 경영에 안정감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조꼬위 대통령이 친기업적인 정서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기업 활동이 인도네시아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이지혁 2019b).
향후 5년 동안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주목해야 할 점을 살펴보면, 우선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군도국가라는 지리적인 특성과 식민 지배 때부터 시작된 자바 위주의 경제개발정책으로 외곽 도서 지역의 인프라는 아직도 열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7년 기준 GDP 대비 물류비용이 약 24%에 달한다. 인도네시아의 인프라 수준은 2018년 144개 국가 중 52위로, 지난 5년 동안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주요 경쟁국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인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시절부터 인프라 개선은 국가의 중요한 사안이었으며, 조꼬위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한 사업이기도 하다. 조꼬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각종 인프라 건설 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그동안 재원 부족, 복잡한 규제, 관료주의 등에 발목이 잡혀 계획처럼 실행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인프라의 문제는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다. 인도네시아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수도를 이전하려는 계획이 확정되고 본격적으로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단계가 되면 한국기업에게 대형 프로젝트 수주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개대된다.
둘째, 서비스, IT, 온라인 게임, 스타트업 기업이 진출할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한국을 방문했던 조꼬위 대통령은 한국은 인도네시아 시장을 함께 개척해 나갈 주요 파트너라고 말하면서 “대학, 연구소, 병원 등을 비롯한 한국의 서비스 산업과 IT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의 젊은 엔지니어들과 만나면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교육과 스타트업, 핀테크 산업에 큰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기업에게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시장이 될 것이다(최우석 2018). 무엇보다 CEPA의 최종 타결로 온라인 게임업계에 큰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 서비스의 경우 현재 인도네시아 내 관련 규정이 미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CEPA를 통해 시장개방을 약속한 것은 한국 진출 기업에게 최소한의 국내 규제 안정성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소비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임금의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동남아는 한국기업에게 생산 및 수출 거점으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여전히 이러한 매력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새로운 측면에서 동남아 시장이 부각되고 있다.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글로벌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소비시장으로서 동남아가 부상하고 있다. 동남아 중에서도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한국기업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다. 최근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한국의 건강 및 미용 관련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3년에 보스톤 컨설팅 그룹(BCG)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인도네시아가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보고서의 제목을 ‘Asia’s Next Big Opportunity’이라고 명했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인도네시아 시장에 뛰어들면 그 기회라는 것이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는 기회(An Opportunity That May Cost)’ 일 수 있다(Rovnick 2013). 무엇보다 인도네시아는 현대판 향신료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모든 다국적 기업의 활동이 자국의 경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저자소개
이지혁(tankm@daum.net)은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연구 관심분야는 동남아 국제관계, 인도네시아 문화, 이슬람 경제, 인도네시아 한인기업 등이다. 대표논문으로는 “인도네시아 하이브리드 편의점의 태동과 소비문화(공저).” “The Political Economy of Indonesia’s Global Maritime Axis and Infrastructure Development Plan under the Jokowi Administration”, “세 가지 화두로 살펴본 2017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이슬람 경제의 태동과 그에 따른 한국인의 반응에 대한 다층적 분석” 등이 있고, 대표저서로는 『’바틱으로 보다: 자바, 인도네시아 이야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소비문화(공저)』, 『한국기업의 VIP국가 투자진출: 지역전문가의 조언(공저)』 등이 있다.
1) 본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향료대신 향신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향신료란 음식물에 가미해서 맛을 조미하는 영어의 ‘spice’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향료는 프랑스어 ‘epice’에 해당되는 단어로 ‘먼 지방에서 온 이국의 산물’을 지칭하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다. 향신료는 향료의 일부분에 속한다(하네다 마사시 2012).
2) 암본학살 사건은 1623년 3월 인도네시아 말루꾸 제도의 상업 거점인 암본섬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 자행된 고문과 사행집행 사건으로서, 당시 암본의 상관장이었던 헤르만 판 스트의 명령으로 이 섬에 와 있던 영국 상인 11명, 일본 사무라이 용병 1명, 포르투갈인 1명이 참수되었다. 고문에 의한 자백에 따르면 영국 상인과 일본 사무라이 용병이 공모해서 암본에 있던 요새를 탈취하고 상관장을 암살하려는 반역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영국의 주장은 상반되고 지금까지도 명백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말루꾸 제도에서의 향신료 무역을 포기하고 인도로 발길을 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 90년대 초반 위기에 처한 신발 산업을 살리기 위한 조치로 노후시설 대체 및 설비 자동화를 실시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그 대신 6백 개에 이르는 생산 라인 중 30%에 해당하는 1백80개 라인을 줄이고 시설을 자동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신발 수출 규모가 40억 달러에 이르는데다 기술면에서 세계 1위로 인정받고 있는 업종을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실시한 조치이다.
4)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수산품•완제품 및 반제품에 대하여 일반•무차별적•비상호주의적으로 관세를 철폐 또는 세율을 인하해 주는 제도를 일컫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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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vnick, Naomi. 2013. “Why Indonesia Is an Exciting Market for Foreign Investors, and Also One of the Most Perilous.” Quartz. March 6.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