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된 도시인 쿠알라룸푸르의 화려하고 분주한 모습과 2018년의 정권교체가 보여준 정치적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의 청년 세대는 높은 실업률과 빠른 물가 상승으로 인해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은 말레이시아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이한 세대와 계급 간의 언어, 문화, 가치관 차이를 부각시킨다. 국제화와 고학력의 시대의 청년이 직면하고 있는 제약을 간과한 채 이들을 계몽의 대상이자 정치적 자원으로 보는 노년과 중년 기득권층의 입장은 청년들이 사회의 새로운 주체로 자리 잡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서연(서울대학교)
정권교체와 청년 세대의 새로운 규정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조밀하게 서있는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의 화려한 경관, 그리고 오래된 골목에 남아있는 광동식 상점주택의 빛바랜 모습은 서로 대비를 이루면서 이 도시가 거쳐 온 역사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한 때 중국에서 온 주석광산 노동자와 상인들이 주류를 이루던 쿠알라룸푸르는 점차 영국 식민통치의 행정중심지로 변모하였고, 1957년 독립 이후에는 국가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수많은 다국적 기업과 국내 기업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매일 아침 도심으로 출근하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보여주듯이, 말레이시아는 과반수이상을 차지하는 말레이-무슬림을 비롯하여, 중국계, 인도계, 소수 토착종족 등으로 이루어진 다언어, 다종족, 다종교 사회이다. 또한 동남아시아에서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산유국인 브루나이에 이어 세 번째로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이며, 석유, 고무, 야자, 목재와 같은 천연자원의 수출국인 동시에 세계 전자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이지만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도시 지역에서는 영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국제학교의 숫자와 종류도 많아서 한국인들에게 영어교육을 겨냥한 조기유학과 어학연수지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 도심이 보여주는 다양성과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독립 이후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의 정치는 매우 정체되어 있었다. 집권을 위해 결집한 종족정당의 연합체인 국민전선(Barisan Nasional:BN)은 1957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연립여당의 지위를 유지하며 말레이 정당인 암노(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UMNO) 출신의 총리를 배출했다. 그러나 2018년 5월의 제14대 총선에서는 야당연합인 희망연대(Pakatan Harapan:PH)가 승리를 거두며 말레이시아에서는 독립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이는 구세대 정치가 종식되고 새로운 세대의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청년층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선거 후 내각에는 다양한 종족 출신의 젊은 정치인들이 다수 임명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2018년에 새로 취임한 총리는 암노(UMNO) 출신으로 1981년에서 2003년 까지 구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을 이끌며 22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던 올해 94세의 마하티르 모하마드(Mahathir Mohammad)이다.
희망연대(PH)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누르고 정치적 장악력을 강화하려던 마하티르의 시도가 2020년 2월 23일 이후 뜻밖의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3월 2일에는 무이딘 야신(Muhyiddin Yassin)이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종족으로 구성된 여당연합인 희망연대(PH)는 붕괴하고 대신 말레이 정당연합인 국민연대(Perikatan Nasional:PN)가 집권하게 되었다. 선거나 의회를 통하지 않고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의해 구성된 새 정권은 아직 정당성 논란과 정치적 분쟁에 휩싸여 있으며, 이 정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가 말레이시아의 세대 구분과 관련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따로 언급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대표적 구세대 정치인과 손잡은 상황에 대한 항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정권교체 직후부터 청년층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가 추진되었다. 기존에 “청년(youth;belia)”을 15세에서 40세 사이로 정의하고 있던 말레이시아의 관련법은 2019년 7월 3일 개정을 통해 청년의 범위를 15세에서 30세까지로 좁혔다. 법개정은 청년을 위한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청년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2019년 7월 16일 하원의회에서는 투표 연령을 기존의 21세에서 18세로 하향조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여야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개정된 두 가지 법률은 2021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2018년 5월 총선에 승리하여 독립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에 성공한 희망연대(PH)의 핵심공약이었다. 또한 법 개정과정에 야당 또한 기꺼이 동참하였다는 것은, 젊은 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정당 및 정치 세력의 영향력 유지와 확장에 핵심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말레이시아의 정치사회적 흐름 속에서 현 청년 세대를 구성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이며 이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집권에 드리운 구세대의 영향력은 청년 세대에게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서로 다른 3세대의 “청년”: 청년의 역사성
최근의 청년 관련법 개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법률에서는 청년을 출생연도와 나이를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를 구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세대 간에 존재하는 사회적 경험과 가치관의 차이이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흐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역사적 계기들을 짚어보아야 한다. 또한, 현재의 청년세대를 평가하는 기성세대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청년기를 규정했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 청년 엘리트: 현재의 노년 세대
정치학자인 베네딕트 앤더슨은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던 동남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성장하여 독립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청년(youth)” 세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 청년을 이전 세대와 구분 짓는 데 핵심적 요소는 교육이다. 동남아의 식민지에서 민족주의를 주도하게 된 청년은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동시에 유럽식 교육을 받은 첫 번째 세대로, 부모 세대 그리고 식민지의 대부분 동년배 집단과 언어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구분”된다(Anderson 1991:119).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의 독립은 영국 정부와 식민지 토착 관료들의 평화적 협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독립 이후 정치를 주도하게 된 것은 토착민인 말레이 중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 그리고 이들과 정치적으로 손을 잡은 중국계와 인도계 엘리트였다. 말레이시아 독립을 주도한 당시의 “청년”, 정확히는 청년 엘리트를 그 이전 세대 및 식민지의 대부분 젊은이와 구분한 것은 바로 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영국식 교육과정 그리고 이들이 교육과 일상의 언어로 사용한 영어였다.
말레이 민족주의 시대의 청년: 현재의 중장년 세대
1957년 말레이시아 독립 이후 새로운 청년 세대의 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교육 기회 대중화 및 공교육의 팽창과 더불어 이루어진 교육제도의 탈식민지화와 토착화이다. 독립 직후에 식민지 교육체계는 폐지되지 않고 오히려 성장하였다. 오랜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영어로 서구식 지식을 배우는 것이 취직과 출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생각이 널리 펴져 있던 중에, 사회 불안을 우려하여 영어 학교의 숫자를 제한하던 식민정책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1969년에 일어난 유혈 폭동을 계기로 급격히 변화하였다. 식민지 계급 불평등의 심화와 도시 대중의 종족 갈등이 초래한 폭동을 겪고 난 후, 정치권력을 주도하는 말레이 엘리트들은 말레이 중심으로 교육제도를 대폭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교과과정은 영국과 유럽이 아닌 말레이시아에 관련된 지식으로 교체되었고, 특히 이슬람을 비롯한 말레이의 역사와 문화가 강조되었다. 또한, 영어 학교들은 점차로 교육의 언어를 영어에서 말레이어로 전환해야만 했고, 중국어와 타밀어 학교에서도 말레이어를 의무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50대 후반 이하의 세대는 출신 종족과 관계없이 적어도 기본적인 말레이어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정부는 국민의 다수를 구성하는 말레이의 지지를 얻고자 대학입학과 기업 채용에 말레이 쿼터제를 도입하고, 당시에 말레이 청년의 사회개혁 움직임을 주도하던 이슬람 부흥운동 세력이 교육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였다.
1970년대 이후의 변화를 통해 말레이시아가 말레이-무슬림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기성세대가 된 식민지 청년 엘리트와 새롭게 등장한 청년 세대 사이에 극명한 언어와 문화의 간극이 생겨났다. 당시 청년 세대에게 기성 엘리트들은 식민지배에서 유래한 서구식 문화와 경제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누리는 특권층으로 비추어졌다. 반면 기존의 서구화된 엘리트들은 말레이시아를 휩쓴 사회문화적 변화의 물결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특히 토착화된 교육제도에 대한 불신은 극도로 심각했다. 이들이 보기에 말레이어는 결코 가치 있는 지식의 언어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없는 사람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자격이 없었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자격 없는” 말레이-무슬림들로 가득 차 버린 대학의 캠퍼스와 정부 부처 및 관공서는 이들에게 개탄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 교육기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기존 엘리트들은 자녀들을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로 유학 보내기를 선호하였다. 그러나 기존 엘리트들의 경멸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부터 등장한 새로운 청년 세대는 점차 사회의 주도권을 획득하게 된다.
고학력과 국제화 시대의 현재 청년 세대
1990년대 중반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변화는 1970년대 이후 세대와는 또 다른 성격의 청년 세대를 만들어냈다. 초중등 교육의 틀이 앞의 시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가운데, 세대 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요인은 대학교육의 대중화와 국제화였다. 당시까지 대학교육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 소수의 국공립대학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6년에 사립고등교육기관에 관한 법률(Private Higher Educational Institutions Act)이 통과되면서 2000년부터 신설 사립대학을 통한 고등교육의 기회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17세에서 23세 국민의 대학진학률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14%였던 것이 2019년에는 44%로 증가하였으며,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인구는 130만에 달한다(New Straits Times, 2019/05/14).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1970년대 이후 국공립대학에서 시행된 말레이 입학정원 쿼터제로 인해 기존 대학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국계와 인도계의 국내 대학진학 기회는 매우 축소되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해외로 유학을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쿼터제의 장벽에 대학진학이 가로막힌 비(比)말레이 청년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은 점차 심화하였다. 또한, 토착화된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을 품고 해외 유학길에 올랐던 상류층과 엘리트 자녀들의 상당수가 1990년대 후반 아시아를 강타한 경제 위기로 인해 폭등한 유학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이들 중에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교육제도를 불신한 정부가 해외 유학파 엘리트를 양성을 위해 세금으로 지원하던 정부 장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는 사립대학의 설립을 통해 대학교육을 대중화함으로써 종족에 따른 대학진학 기회의 차등화가 초래한 사회적 갈등의 완화를 시도하였다. 한편 해외 대학 분교 유치로 대표되는 대학교육의 국제화는 엘리트와 부유층의 해외 유학 의존에 따른 “국부유출”을 줄이고, 영어권 국가 유학을 선망하는 아시아의 학생들을 끌어들여 교육산업을 육성하는 수단이 되었다. 대학교육의 대중화와 국제화 시대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바로 현행 법률(2021로 예정된 개정법 적용 이전)에 따라 “청년”으로 정의되는 19세에서 40세의 국민이다.
그렇다면 이제 노년에 이른 식민지 청년층, 그리고 중년이 된 그다음 세대 청년층은 2000년 이후의 청년 세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현재의 청년들이 말레이시아 역사상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세대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는 대부분의 국공립 교육기관에는 여전히 1970년대 이후 세대 말레이-무슬림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가운데, 식민지 엘리트와 그 후속세대 중 비말레이 중산층은 공교육의 탈이슬람화와 영어 재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국제화 담론을 새로운 논리적 근거로 삼아 탈식민지 시기 교육제도 재편의 의의를 부정하는 식민지 엘리트의 목소리가 커지는 동시에, 이에 대한 후속세대의 반감과 저항이 말레이를 중심으로 심화하면서 세대와 종족 사이에 문화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의 정치경제적 맥락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변화의 결과, 즉 대학교육의 대중화와 국제화가 실제로 청년 세대의 삶에 끼치는 영향일 것이다.
2018년 총선과 청년의 정치적 역할
1957년부터 2018년까지 집권한 국민전선(BN)은 말레이시아의 대표 종족인 말레이, 중국계, 인도계를 각각 대변하는 UMNO, MCA(Malaysian Chinese Association), MIC(Malaysian Indian Congress) 중심으로 구성된 정당연합체였다. 국민전선의 연립정권은 다종족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치구조라는 평가와 더불어, 식민지 시대 토착민과 이주민 분리통치(divide-and-rule)의 유산인 다중사회(plural society)의 잔재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 이후 말레이시아에서는 교육제도를 포함한 사회 모든 분야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이를 통해 식민지 청년과는 다른 새로운 청년 세대가 등장하였지만, 세대의 교체가 정권의 교체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국민전선을 주도한 말레이 엘리트 정당 암노(UMNO)는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말레이 민족주의와 이슬람 부흥운동 세력까지 적극적으로 포섭하면서 집권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2018년 희망연대(PH)의 총선 승리와 독립 이후 첫 정권교체는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청년 세대에게 과연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가?
청년층을 겨냥한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세운 희망연대(PH)의 승리는 청년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노년과 장년 세대의 영향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 바로 다음 해에 이루어진 청년 관련 법률의 개정은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청년층 인구는 말레이시아 전체인구 및 유권자 집단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17년 말 투표인명부에 등록된 유권자 1,870만 명 중 40% 이상이 21세에서 39세로 60세 이상 유권자의 두 배를 넘었다. 적어도 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지난 선거에서 노년층 유권자의 비중은 크게 줄어든 반면, 장년층과 청년층이 거의 비슷한 비율을 차지했다(BBC, 2018/05/05). 다음 총선 이전에 투표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된다는 점과 15세에서 29세 연령대의 숫자가 가장 많은 현재 인구분포를 동시에 고려하면, 다음 선거에서 청년 유권자의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법안에 여야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것은 투표권의 확대라는 원칙적인 명분 이외에도, 젊은 유권자들을 지지층으로 끌어 모으는데 자신들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여야의 각자 다른 셈법도 작용한다.
희망연대(PH)의 경우, 새로운 정치 질서에 대한 청년들의 열망이 다음 선거에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2007년 이후 젊은 도시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키워왔던 버르시(Bersih)와 같은 정치개혁 운동은 정권교체의 밑거름이 되었다. 국민전선(BN)의 60년의 장기집권이 만들어낸 문제들이 상당히 해소될 때까지 희망연대(PH)가 지닌 정치개혁의 동력은 청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기존의 말레이 여당인 암노(UMNO)와 보수적 이슬람 정당인 빠스(Parti Islam Se-Malaysia:PAS)는 다음 선거에 참여할 될 청년 유권자층에서 말레이-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종족별 인구 구성 비율의 변화를 정권 재획득의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 유권자 수의 증가와 청년층에 대한 각 정당의 전략적 접근이 곧 청년층의 적극적 정치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총선 결과가 정치적 세대교체로 해석될 여지는 충분하지만, 선거 이전에는 청년층이 정치적 무력감과 좌절감을 대표하는 세대로 여겨졌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17년 말 전체 유권자 2,250만 명 중 약 16%인 380명이 투표인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이 중 3분의 2 이상이 20대였다(BBC, 2018/10/26). 여기에는 국민전선(BN)의 60년 장기집권을 경험하면서 정치개혁 운동을 통해 정권을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 실제로 지난 선거에서 야당 연합의 승리는 기존 말레이시아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차마 기대할 수 없었던 매우 놀라운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정치적 무력감 이외에 구체적인 규제들도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어렵게 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대학교 및 대학에 관한 법률(Universities and University Colleges Act:UUCA)”을 근거로 국공립대 대학생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해 왔다. 실제로 2010년 네 명의 국공립대 학생들이 보궐선거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뒤, 헌법재판소는 대학생 정치참여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생들은 합법적 정당 이외의 정치조직에 참여할 수 없으며, 합법적 정당이라도 대학에 지부를 설치할 수 없다. 또한, 잘 알려져 있듯이 국민전선(BN)은 효과적으로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하였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공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통로는 막혀있었다.
언론의 자유와 청년들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정부의 정책을 우회하여 정치적 견해를 소통하는 창구이자 청년의 정치적 연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매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바로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이다. 말레이시아의 3,500만 인구 중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약 2,200만 명가량이며 이 중 88%에 달하는 25에서 34세 사이의 인구는 매일 인터넷에 접속한다(Star, 2018/07/09). 희망연대가 총선에서 승리하게 된 데는, 기존 정부 여당에 대한 청년들의 절망감에 호소하는 것과 더불어, 정치조직 활동과 언론자유의 제약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여 청년 유권자들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선거운동이 청년층의 지지를 당연하게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전선(BN)의 소셜미디어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근본적 이유는 홍보전략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들의 정치적 메시지가 청년층으로부터 적극적 지지를 끌어내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희망연대(PH)가 90세가 넘는 전 총리 마하티르를 대표로 내세웠을 때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투표망치기(#UndiRosak)” 캠페인은 청년을 지향한다는 정치개혁 운동의 선거 승리가 대표적 노년 정치인의 총리 취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의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2020년 현재의 시점에서 돌이켜 볼 때 정권교체와 더불어 청년 세대를 위한 그리고 청년 세대가 주도하는 정치의 영역은 확대되었는가? 다양한 청년 관련 법률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대학생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법률은 폐지되지 않고 있으며, 총리를 비롯한 노년의 기성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정치판에서 청년층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다. 그나마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정치인들의 대다수는 유력한 기성정치인의 가족이거나 또는 기성정치인을 후견인으로 둔 사람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개혁을 지향하도록 이끈 현실의 문제, 특히 이전 세대보다 높아진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으로 청년들이 자립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시장의 구조적 특성, 그리고 일할 곳이 없는 청년들
영국의 말레이시아 식민지배가 끝난 1957년 이후에도 전형적인 식민지 경제체제, 즉 외국인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수출지향적 플랜테이션 경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독립 국가 국민의 대부분이 플랜테이션 경제의 유지에 동원되거나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가운데, 농촌에서는 토지소유권을 상실한 농민들, 특히 말레이의 빈곤이 심각해졌으며, 도시에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공무원이나 전문직 또는 외국인 자본과 연관된 관리직 등 소위 도시의 좋은 직장은 영어로 교육받은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었다.
양극화된 식민지 경제사회구조를 돌파하는 계기가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말레이시아의 본격적 산업화이다. 정부는 경공업 중심의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Zones:FTZs)를 조성하는 한편, 1971년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NEP)을 도입하여 국가의 산업화와 말레이 고용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였다. 자유무역지대에 공장을 건설한 다국적 전자 기업들은 저임금 생산직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였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농촌 출신의 젊은 말레이 여성들이었다. 당시 해외직접투자(FDI) 기업은 1972년 정부가 도입한 “고용요구사항(employment requirements)” 즉 말레이시아 국민, 그중에서도 부미뿌뜨라(bumiputera)로 불리는 말레이를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레이시아에는 해외직접투자가 집중되는 공업단지와 도시지역이 가난한 농촌 지역의 젊은 말레이 인력을 끌어들이는 고용구조가 형성되었다(Ong, 1987). 1970년대 이후 대학 신입생 선발과 공공부문의 채용에 적용된 말레이 쿼터제에 힘입어 정부기관과 공립학교 그리고 공기업에 근무하는 말레이 중산층이 성장하였지만, 소수로 구성된 고용 위계의 최상층에서는 여전히 영어를 사용하는 서구화된 도시 엘리트가 주류를 이루었다.
1970년대에 말레이시아가 세계 전자제품 생산의 중심지로 떠오른 이래 전자 제조 분야의 저임금 일자리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청년층 고용 규모는 1990년대 아시아 경제 위기의 영향을 받으면서 축소되었다. 정부는 경제 위기 상황을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를 통해 돌파하려 하였고, 이를 위해 다국적기업의 내국인 고용요구조건을 완화시켰다.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의 투자 규모가 더욱 늘어났지만, 새로운 투자는 말레이시아 청년들이 감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낮은 조건의 저숙련 저임금 노동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말레이시아의 고용시장에서 주변 저개발국 출신 노동자들의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말레이시아의 외국인노동자 의존도는 약 40%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네팔, 방글라데시, 버마, 인도 등의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이 전자 산업 생산노동자의 대략 40%에서 많게는 60%까지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Verité, 2014). 그렇다면 공장에서 일하던 말레이시아 청년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후속세대의 청년들은 이제 넓어진 대학의 문을 통과하여 더 나은 대우를 보장하는 새로운 산업 분야의 직장을 찾아가고 있는가?
최근에도 말레이시아 정부는 기업 친화적 경제정책과, 높은 수준의 인프라, 양질의 인력 수급 능력을 내세우며 아세안 국가 중에서 가장 활발하고 성공적으로 해외직접투자(FDI)를 유치하고 있다고 선전하였다. 정부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국민총생산(GDP) 등의 국가경제 지표가 개선될 것이며 고용효과도 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2019년 상반기에 유치한 해외직접투자가 118억 달러에 이르며, 이 중 제조업 분야에 투자된 79억 달러가 3만 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하였다(New Straists Times, 2019/08/20). 그러나 전자제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넘어 전자 상거래와 첨단 지식산업 및 4차산업을 육성함으로써 고학력자를 위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정부와 기업의 화려한 수사가 말레이시아의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최근 말레이시아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청년 실업의 문제이다. 말레이시아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 10여 년간 서서히 증가해 왔으며, 2019년에는 10.9%로 전체실업률 3.3%에 3배를 넘어서게 되었다. 미취업 청년은 전체 미취업자 50만 4천 명의 약 60%에 다다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대졸자 실업 문제로, 2018년 말 기준 전체 실업자의 41.1%가 대졸자이며 그 숫자는 20만 4천 명에 달한다. 이미 취업한 대졸자의 경우도 상당수는 대학 졸업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종에 고용되어 있다. 최근 20년간 말레이시아에서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말레이시아 고용시장은 구조적으로 많은 수의 대졸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정부가 내세우는 해외직접투자의 고용효과는 여전히 저숙련 저임금 인력에 의존하는 노동집약적 제조업, 특히 전자 산업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2019년 고용시장에 나온 147만 건의 일자리 중 86.9%가 저숙련 직종에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겨우 4만 7천 개의 일자리가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분석가들은 이를 고용시장과 교육 시장의 “구조적 불일치”와 대졸자의 “과잉공급”으로 요약한다(Malay Mail 2019/09/10). 2000년 이후 갑자기 넓어진 대학의 문을 통과하여 수년간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 청년들은 졸업 후에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저임금 일자리 중심의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살길을 찾아가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취업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집중된 도시를 중심으로 물가와 생활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도시지역의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선다. 주택가격 또한 급상승하는 가운데,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월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자립적인 삶을 꿈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도시 청년은 그냥 부모랑 살고 농촌 청년은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도 한다. 2018년 총선에서 희망연대(PH)는 청년층의 표를 겨냥하여 월급 2500링깃(약 73만원) 이상의 일자리를 100만 개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는 도시지역의 1인 생활임금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 말레이시아의 노동시장 구조를 고려하면 그나마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기성세대의 훈계: 청년들이여 각성하라!
지난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청년 세대의 정치참여를 통한 사회개혁은 현재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진단하고 개선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제의 원인이 다름 아닌 청년들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총리에 재취임한 올해 94세의 마하티르를 포함한 노년의 베테랑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경제인들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직업에 관계없이 열심히 일하려는 태도, 취업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 그리고 전문지식의 획득에 필요한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1970년대 이후 공교육의 토착화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대학교육의 대중화가 전반적인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대규모의 청년 실업의 문제를 고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능력한 오늘날의 청년 개개인이 적극적인 자기계발을 통해 극복해야 할 것으로 취급한다. 구세대 엘리트의 사회 경험과 문화를 기준으로 청년 세대의 자격과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는, 세대 간에 존재하는 권력과 가치관의 차이를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효과를 지닌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 고용자 연합(Malaysian Employers Federation: MEF) 측은 고용시장에 일자리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저임금 직종을 기피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관리직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고용자로서는 구직 수요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Asean Post, 2019/12/23). 이러한 주장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낮은 임금과 식민지 채무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열악한 노동계약 조건이다.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일자리는 내국인 청년들에게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노동의 기회를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또한 전 재무부 장관 뚠 다임 자이누딘(Tun Daim Zainuddin)은 2019년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young people)의 영어실력이 지금처럼 형편없다면 말레이시아는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없을 것이라면서 “대부분의 대학졸업생들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이게 문제다. 반면에 지식은 영어다.”라고 주장했다(Today Online, 2019/12/23). 그의 언급은 식민지시기에 태어나 영어 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유학을 거친 엘리트 법조인이자 관료로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언어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즉 가치있는 지식의 습득과 깊이 있는 사고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50년 전에 영어가 공용어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1970년대 이후 공교육은 말레이어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장은 식민지 교육을 받은 노년층 엘리트 세대가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내리는 훈계 정도로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총리인 마하티르를 비롯한 노년층 엘리트 세대의 일부가 아직도 국가의 정책을 수립하는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규정하는 언어와 문화적 특성 및 가치관이 후속세대의 최상위 엘리트층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하티르가 최근 교육부 장관을 물러나게 하고 교육정책 수립의 전면에 나서면서 여당 연합의 핵심 구성원들과의 상의도 없이 서둘러 추진한 것은 바로 2003년이 이미 자신이 도입했다 실패한 정책을 되돌려 놓는 것, 즉 공교육에 영어를 재도입하는 작업이다. 총리의 자리를 되찾은 그에게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직장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은 고용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려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청년 실업의 핵심에 놓여있는 명백하고도 확고한 진리일 뿐이다.
기성세대의 권력 구도와 청년의 미래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은 말레이시아의 청년층이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중시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세대 간의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계급에 따른 언어와 가치관의 차이도 작동한다. 정권교체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진 정치구도에도 구세대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청년층은 내부에 존재하는 종족, 계급, 지역, 언어의 차이를 넘어 동세대의 대다수가 처해있는 험난한 객관적 조건을 타개해 나갈 정치적 원동력을 찾아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새로운 정부의 정책추진 동기를 발판삼아 청년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도입될 수 있을 것인가? 단순히 “청년”의 법률적 나이를 줄이고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조정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청년들의 입장이 사회에서 더 잘 대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직접 몸으로 겪을 필요가 없는 엘리트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절망과 분노를 선거의 득표수로 전환시킬 전략을 구상하지만, 어떠한 새로운 정치적 노선과 전략도 이에 부합하는 현실의 변화가 없이는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극심한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청년 세대의 다수가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 순간, 이전 정권을 겨누었던 화살은 새로운 여당인 희망연대(PH)를 향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급작스런 정권교체와 심화하는 미래의 불확실성
이 글의 초고가 완성된 직후, 2018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희망연대(PH)는 급작스럽게 해체되었고 3월 2일에는 마하티르를 대신하여 새로운 총리인 무이딘 야신(Muhyiddin Yassin)이 취임하였다. 독립 후 최초의 정권교체를 성사시켰던 희망연대를 갑자기 무너뜨린 것은 개혁 의도의 진정성과 정책 실행능력에 실망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2년이 채 못 되는 희망연대의 집권 기간은 그러한 목소리가 형성되어 정치적 압력으로 성장할 만큼 길지 않았다. 청년 세대의 지지를 등에 업은 한편으로 노회한 정치 베테랑 마하티르의 돌파력을 앞세웠던 다종족 정치연합을 주저앉힌 것은 결국 말레이 민족주의를 앞세운 기성 정치인들의 조직적 저항이었다. 새로 구성된 집권연합 국민연대(PN)는 희망연대(PH) 속해있던 말레이 정당 PPBM(Parti Pribumi Bersatu Malaysia)과 구 말레이 여당인 암노(UMNO), 그리고 말레이-이슬람 정당인 PAS, 이렇게 세 개의 말레이 정당이 주도하고 있다. 신임 총리 무이딘은 1970년대와 80년대 말레이 우대정책을 기반으로 성장한 말레이 민족주의 성향의 중장년층을 대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를 급작스럽게 휩쓴 정변이 어떠한 방식으로 마무리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심각한 경제 침체에 전염병까지 번지는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정부가 현시점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중장년이 된 말레이 민족주의 성향의 1970-80년대 청년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권력투쟁에 담보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말레이시아의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품고 있는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저자소개
최서연(seoyeonc@snu.ac.kr)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사이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말레이시아를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지역의 사회와 문화에 관련된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제도와 정책에 작용하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영향력 및 교육을 매개로 한 세대, 계급, 종족 간의 갈등 상황에 관심이 있다. 저술로는 <“영어 중시 교육정책의 계층적 권력효과: 말레이시아 도시 저소득층 학생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동아연구』 제31권 2호>와 <『말레이세계로 간 한국기업들』 (공저)>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황인원. 2018. “말레이시아 선거권위주의 체제 붕괴의 정치적 함의: 2018년 14대 총선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연구』 28권 3호, 213-261.
- Anderson, Benedict. 1991.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London and New York, Verso.
- Arrifin, Eijas. 2018 “Who speaks for the youth of Malaysia?” The Asean Post (October 26).
- Ong, Aihwa. 1987. Spirit of Resistance and Capitalist Discipline: Factory Women in Malaysia. Albany, SUNY Press.
- Mayuri Mei Lin. 2018. “Malaysia’s youth have power they won’t use” BBC News (May 5)
- Tam Siew Yean ed. 2013. Internationalizing Higher Education in Malaysia. Singapore, Institute for Southeast Asian Studies.
- Verité. 2014. Forced Labor in the Production of Electronic Goods in Malay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