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싱가포르는 초기 방역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외국인 이주노동자 사이의 집단감염을 막지 못해 현재 악화일로에 접어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싱가포르 코로나19 사태의 이러한 경향은 다인종 국가 싱가포르에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싱가포르는 제국의 식민지에서 국민국가 시대, 21세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다인종 사회를 형성하여 왔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싱가포르 다인종 사회가 새로운 전환의 시대로 넘어갈 것을 예고하고 있는데, 21세기 싱가포르의 발전과 함께 주변 저개발국가로부터 유입된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식과 통합여부가 그 핵심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싱가포르 사회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본 글은 이러한 양상을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김종호(서강대학교)
싱가포르는 이주민의 국가인가? 거주민의 국가인가? 간단한 질문 같지만, 생각 외로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다. 국민국가의 국적을 기준으로 보면 싱가포르는 분명히 싱가포르 시민권과 영주권자로 이루어진 ‘싱가포리안(Singaporean)’이라는 거주민의 나라다. 반면, 그 역사를 생각해 보면 1819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이주해 온 다양한 인종의 이주민들의 후예로 이루어진 이주민 DNA가 강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21세기 싱가포르는 새로운 이주민의 비율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국가이기도 한데, 2019년 기준 전체인구 570만 가운데 거주민이 400만, 이주민이 160만 명에 달한다. 이러한 변화는 싱가포르가 제국의 식민지,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형성, 21세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시대를 그대로 거쳐 온 지역이기 때문에 관찰되는 현상이다. 동시에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도 싱가포르가 좁게는 동남아시아, 넓게는 아시아, 더 넓게는 글로벌 차원의 무역과 금융, 관광, 이민의 허브로서 특유의 개방성과 이동성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의 그래프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인구구조 역시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물론 근본적으로 싱가포르가 꾸준히 다인종 사회를 구성해왔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다만, 같은 다인종 사회라 하더라도 시기별로 그 의미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는데, 영국 식민제도 속에서의 다인종 사회와 ‘싱가포리안’이라는 내셔널리즘을 ‘상상’해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국적 중심의 다인종 사회, 21세기 새로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새롭게 구성된 다인종 사회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시대, 전염병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나 싱가포르는 새로운 형태의 다인종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이 보인다. 본 연재는 이러한 변화양상을 고찰하고, 아시아 이민사 연구에서 이주민과 거주민의 개념이 교차되는 지점을 포착해 보고자 한다.
식민시기 싱가포르의 다인종 사회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을 식민화하고 도시를 건설할 때의 특징은 건설된 식민도시가 일정하게 구획되고, 구획된 구역마다 도시 거주민들이 인종적 고려에 따라 분산, 배치된다는 점이다(Metcalf 2013). 영국의 페낭(Penang)과 네덜란드의 바타비아(Batavia, 현 자카르타)가 대표적이다. One Hundred years History of Chinese in Singapore(싱가포르 화인백년사)를 서술한 쏭옹시앙(Song Ong Siang)에 따르면, 싱가포르 역시 같은 케이스에 속한다. 싱가포르의 존재를 동인도 회사에 소개하고 점령을 실행한 스탬포드 래플스(Stamford Raffles)의 초기 도시 구획과 구상은 이후 영국령 싱가포르 도시구조의 기초가 되었는데, 그는 중국인, 인도인, 유럽인, 말레이인, 아랍인, 부기스(Bugis)인 등 다양한 인종들의 생활 구역을 따로 설정하였고, 각 그룹별 대표자(Chief, Kapitan)를 뽑아 내부 통제와 질서유지를 맡겼다.
위의 지도는 래플스의 이러한 비전에 따라 잭슨 장군이 수립한 도시계획이다. 싱가포르 강을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중국인과 인도인 커뮤니티를 두었다. 지도의 끌링(Kling)은 말레이인들이 인도에서 건너 온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출리아(Chulia) 역시 인도인들을 가리키는데, 주로 유럽인들이 무슬림 인도인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들은 주로 강변에 그룹을 형성하여 싱가포르의 무역과 도심지를 형성하였다. 반면, “원주민 구역(Native Containment)”은 말레이 인종의 농촌인구를 가리킨다. 래플스는 초기 믈라카(Melaka)로부터 각종 가축의 사육과 농업이 가능한 말레이 현지인들이 싱가포르에 이주하도록 배치하였다. 그 외에 아랍인과 대표적 오랑라웃(Orang Laut 해상민족)인 부기스인들의 공동체 역시 따로 구획하였다. “깜퐁(campong)”은 말레이어 “Kampong”으로 마을(town, village)을 의미한다.
이러한 도시의 구획과 인종별 분산배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을 거치면서 싱가포르의 규모가 커지고, 인구가 증가하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원칙이었다. 즉, 1819년에서 20세기 초중반까지 싱가포르 속 다인종 공동체는 사회 구조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았고, 영국 식민정부 역시 각 인종 공동체 사이의 통합과 적극적 교류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식민지 행정통치의 편의를 위해 분명하게 분리된 공동체 구획을 선호했다. 위의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종을 기반으로 구획된 공동체들이 싱가포르 강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여기에는 인종간 갈등으로 인해 식민지 내부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영국 식민정부의 의도도 있다. 그나마 교류가 일어나는 지역은 활동분야와 영역이 겹치는 중국인과 인도인들 사이의 상업거래 정도였다.
당시 싱가포르에는 전체 인종을 포괄하는 정체성이 있었다기보다 ‘제국(empire)’이라는 우산 아래 각자의 정체성을 개별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주요 기제는 중국인 공동체의 경우 씨족 협회(clan association), 사원, 상업 조직(Kongsi) 등이고, 인도인들의 경우 힌두 및 무슬림 관련 협회, 사원, 지역별 상인조직 등이었다. 말레이인들은 여전히 싱가포르 식민정부의 감시아래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술탄을 중심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즉, 이 시기 싱가포르의 다인종 그룹들은 식민지 행정통치 아래 공통된 정체성을 ‘상상’할만한 계기와 동기가 없었다. 게다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국인, 인도인과 같은 이주민들의 경우 대부분 여전히 본국과의 연계를 중요시하여 긴밀히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 싱가포르는 ‘이주민’의 싱가포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 공화국의 성립과 다인종 ‘싱가포리안’의 탄생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60년대가 되면 동티모르를 제외한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이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독립과 건국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직면한 도전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경제적 저개발 극복, 인종적으로 다양하게 분산된 공동체의 통합, 내부 정치적 혼란 정리, 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시작된 냉전기 미국, 중국, 소련의 동남아 개입에 대한 대응 등등 어느 하나 쉬운 문제가 없었다. 유독 동남아시아 지역에 독립전쟁, 내전, 혁명, 반란, 독재 등등의 소요들이 빈번했던 이유일 것이다.
싱가포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1965년 8월 말레이 연방으로부터 축출, 혹은 독립하게 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리적 이점과 인구 외에는 아무런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과 ‘제국’이라는 제도 아래 다인종 사회를 구성해왔던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 아래 통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산주의로 인해 격화되던 내부 정치적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독립한 직후인 1966년 인구통계를 보면, 전체 193만 명 가운데, 중국계 147만(76%), 말레이계 28만(14%), 인도계 14만(7%) 명이었다. ‘제국’이라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식민지의 이주민으로서 각자의 정체성만을 유지하면 되었다. 그러나 본국인 중국과 인도, 말레이시아에 각자의 내셔널리즘에 기반 한 국민국가가 성립되고 있었고,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배타적 경계 설정을 특징으로 하는 국가공동체를 설립하면서, 싱가포르 다인종 사회의 구성원들 역시 더 이상 ‘이주민’이 아닌 ‘거주민’으로서 통합의 논리를 마련해야만 했다.
실제 리콴유(Lee Kwan Yew)를 비롯한 PAP(People’s Action Party 인민행동당)의 1세대 지도자들은 싱가포르가 국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Chong 2020). 첫째, 국가공동체로서 싱가포르는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다양한 공동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독립한 싱가포르 정부는 과거의 ‘제국’이 그러했듯, 각 개별 공동체들의 권리들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라는 개념이 모든 인종 공동체의 개별적 이해관계를 넘어 가장 우선되는 가치라는 점이다. 때로는 국가의 이익, 이해관계를 위해 개별 공동체의 종교적, 종족적, 계급적, 문화적, 정치적 요구가 부차적인 가치로 배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모순되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이 탈식민시기 독립한 싱가포르 공화국에 주어진 도전이었다. 독립 이후 55주년을 맞은 2020년 현재까지 싱가포르가 추구한 이질적 인종간 사회적 통합의 노력은 바로 이 두 가지 가치 가운데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다.
흔히 다양한 이민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극단적으로 분류할 경우 그 동화(assimilation)와 분리(segregation)의 정도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드러낸다. 간단하게 샐러드 볼(salad bowl)과 같은 사회인가, 멜팅 팟(melting pot)과 같은 사회인가라는 식으로도 많이 비유되는데, 같은 그릇에 있지만 각각의 채소가 본연의 맛과 식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샐러드와 모든 채소가 그대로 가열되어 하나의 맛을 내는 냄비 속 스튜의 차이를 이민사회에 비유한 것이다. 싱가포르 사회가 상술한 도전에 직면하여 채택한 사회의 구조가 바로 샐러드 볼과 같은 사회였다(Chong 2020).
이러한 싱가포르의 노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1999년 8월 30일 2대 총리(Prime Minister)인 고촉통(Goh Chok Tong)의 연설이다.1) 말레이 무슬림 중심의 NGO 단체인 “MAJLIS PUSAT”에서 행해진 해당 연설에서 그는 국가로서의 싱가포르를 건설하기 위해 각 인종 공동체들이 해야 할 역할을 강조하면서 몇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하였다. ① 인종간 구별 완화(Lowering the Racial Divide) ② 다른 인종간의 연계 강화(Strengthening Ties between Different Races) ③ 의무교육(Compulsory Education) 강화 등이다. 특히 의무교육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초등교육 4학년까지 인종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이 공평하게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빈부차에 따른 교육의 균등한 기회 제공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종간에 다른 교육을 받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격차를 해소하고, 공통의 내셔널리즘을 교육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고촉통 총리는 인종별 특성과 국가 정체성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데, 무슬림들의 교육기관인 마드라사(Madrasah)와 근대적 공교육의 커리큘럼을 조화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실제 싱가포르 의회는 다음 해인 2000년 의무교육법(Compulsory Education Act)을 통과하였고, 그 이후 싱가포르의 모든 어린이는 15세가 되기 전에 6년간의 공립 초등교육을 마쳐야만 했고, 어길 경우 해당 어린이의 부모에게 5,000 싱가포르 달러(한화 434만원)의 벌금이나 1년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었다.2)
이런 그가 강조하는 싱가포르 국가건설과정에서의 인종간 관계는 “겹쳐진 네 개의 원(Four overlapping circles)” 모델이다.3) 고촉통의 국회연설을 통해 개념화된 해당 모델은 아래 그림에서처럼 하나의 원이 하나의 인종을 상징하고, 네 개의 원이 겹치는 부분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싱가포르라는 국민국가가 나아갈 길임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되었다. 그는 1999년 국회연설에서 네 개의 원이 겹치는 부분은 “모든 ‘싱가포리안(Singaporean)’들이 인종과 관계없이 함께 일하고 노는 공간”이라고 하며, “개방되고, 동등한 공간이자 영어를 공용어로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공간”이라고 하였다. 물론 겹치지 않는 공간에서는 각자의 영역으로 내부적 관습과 언어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도 언급함으로써 다인종 국민국가인 싱가포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지난 2007년 싱가포르의 1대 총리 리콴유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시작했을 때, 우리에게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 요소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동질의 인구, 공용어, 공통의 문화, 공통의 정체성 등 어느 것도 없었다. 우리는 중국 남부, 인도 남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실론, 주변 섬들에서 온 이주민들이었다. 그래서 문제는 과연 우리가 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라고 건국 초기의 고민과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5) 상술한 고촉통의 비전은 초기 싱가포르 국가건설과정에서 건국의 아버지로서 국민국가 싱가포르의 시작을 연 리콴유의 고민을 구체적이면서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답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965년에서 1980년대까지에 해당하는 리콴유의 시대가 싱가포르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음과 동시에 ‘제국’의 행정적 유산을 최대한 국민국가적 시스템에 맞게 조정하고, 내부 다인종 사회를 통합할 만한 각종 기본 조치(다양한 방언을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영어로 정리, 각 인종의 사람들이 골고루 섞이도록 주택정책에 인종적 할당을 책정 등)를 마련한 시기였다면, 고촉통 총리 시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는 무역과 금융의 허브로서 싱가포르의 경제적 성장이 가속화되고,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국민국가적 내셔널리즘의 형성, 즉, ‘싱가포리안’의 탄생을 교육이나 새로운 사회구조의 개념 형성 등을 통해 보다 구체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종간 통합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가는 시기로 서서히 인종과 관계없이 싱가포리안들 사이에 계급적 분화가 진행되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HDB로 불리는 공공주택에 거주하는 평균적 싱가포리안을 가리키는 “Heartlander”와 고급 콘도에 거주하며 차를 몰고 다니는 상위계층을 의미하는 “Cosmopolitan”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한다(Tan 2006). 또한 경제의 성장과 함께 싱가포르 거주민들에게는 인종과 관계없이 “The 5C (현금 cash, 고급콘도 condominium, 자가용 car, 신용카드 credit card, 컨트리 클럽 country club)”가 성공의 지표로 인식되기도 하였다(Chong 2020). 인종을 가리지 않는 물질적 성공에의 열망이 아이러니하게 서로 겹쳐지는 영역(overlapping area)을 넓히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1세기 현재 싱가포르 사회에서 ‘싱가포리안’은 매우 당연한 정체성이 되었고, 싱가포르의 거주민들에게 인종과 국적을 분리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제국’의 시대 싱가포르는 이주민의 땅이었지만, 국민국가시대 싱가포르는 거주민의 국가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제국의 우산은 내셔널리즘으로 대체되었고, ‘이주민’은 ‘거주민’으로 변모하였다.
21세기 새로운 ‘이주민’과 ‘싱가포리안’의 혼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열풍이 아시아를 휩쓸게 되는데, 싱가포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싱가포르의 경우 급속히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질서 아래 외부와의 개방성이 급격히 확대되었고, 2004년 2세 정치인으로 총리가 된 리셴룽(Lee Hsien Loong)이 좁은 영토와 한정된 인구로 인한 내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무역과 산업 중심에서 금융과 관광 허브로의 변환을 시도하였다. 대표적으로 2005년부터 실시한 거대 리조트의 설립과 리콴유가 극렬히 반대한 카지노의 설립이 있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아래 싱가포르의 인구구성에도 변화가 발생하는데, 첫째는 위의 그래프에서와 같이 ‘거주민’으로 분류되는 중국계, 인도계, 말레이계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인구의 증가에 정체가 발생한 것이다. 즉, 싱가포로의 경제가 성장하고 내부 거주민들의 삶이 풍족해지면서 출생률의 하락이 뚜렷해지고 있다. 두 번째, 역시나 위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체된 거주민의 숫자를 새로운 이주민(Non-residents)으로 채움으로써 전체인구는 오히려 급증하는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확실히 2000년대 이후 싱가포르로 건너 온 새로운 이주민 인구의 변화에는 극적인 데가 있다. 1996년 60만 명이던 ‘비거주민(Non-residents)’의 숫자는 2001년 81만, 2006년 87만, 2011년 139만, 2016년 167만, 2019년 167만 명으로 급증한다.6) 새로운 이주민의 핵심은 증대되는 경제규모를 지탱할 저임금의 노동자들과 숙련 전문가 고임금 노동자들이다. 다만 2006년에서 2011년 사이 급증한 이주민 숫자가 그 이후부터 주춤한 이유는 늘어나는 이주민 때문에 불편해지고,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한 싱가포르 거주민들의 불만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2007년 굴기(屈起)이후 팽창하기 시작한 중국경제의 영향으로 중국 대륙으로부터 들이닥친 ‘신이민’과 중국계 싱가포리안들 사이의 갈등이 두드러지는데, 각종 SNS상에서 벌어지는 설전들은 중국계 거주민의 ‘신이민’자인 중국 대륙인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싱가포르 정부는 2011년 이전까지 느슨하게 운영하던 취업비자 및 영주권 정책에 고삐를 쥐었고, 그 영향으로 이주민의 증가세가 하락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이주민에 대한 취업비자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 싱가포르 이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취업이민에 대해 싱가포르 노동부(MOM Ministry of Manpower)가 발급해 주는 비자의 종류와 조건은 아래와 같다.7)
싱가포르 취업비자 정책의 핵심은 노동이민을 온 새로운 이주민들을 국적, 직업, 숙련도, 연봉, 지위에 따라 분류하고, 대우에도 차등을 두는 특유의 위계적 질서에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상위에 위치한 전문가(professional)급 고임금 노동자들과 가장 하위에 위치한 워크퍼밋(work permit)급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와 대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거주민’을 중심으로 한 국민국가를 형성한 싱가포르 사회가 대부분 가사도우미와 하위직 노동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워크퍼밋 보유 이주민들을 어떠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거주민과의 결혼문제다.
싱가포르 노동부가 워크퍼밋 보유자들에게 지급하는 안내책자에 따르면 워크퍼밋 소유자는 싱가포르 안이든 밖이든 싱가포르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와 결혼 할 수 없다.8) 오직 워크퍼밋 운영기관(MOM)의 허가를 받아야만 결혼이 가능하다. 이는 워크퍼밋의 기간이 끝나거나, 취소된 뒤에도 유효하다. 또한 워크퍼밋 운영기관인 노동부의 허가 아래 싱가포르 시민권자와 영주권자와 결혼하지 않은 이상, 워크퍼밋 소유자는 싱가포르 내에서 임신도 출산도 허가되지 않는다. 이 역시 워크퍼밋의 기간이 끝나거나 취소된 뒤에도 유효하다. 이를 어길 시에는 향후 절대로 싱가포르로 재입국할 수 없다.
이러한 조치는 싱가포르 취업비자 정책이 이주민인 취업비자 보유자들 사이에 계급을 형성해 놓고 이들을 대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임금 노동자의 경우 거주민과 동등한 지위에 두고 있지만, 저개발국 출신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명백히 거주민의 하위에 놓고 있다. 이는 이들 취업비자 보유자들에 대한 주거정책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주거종류 | PBD(Purpose-Built Dormitories) | 외국인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정식 기숙사 건물. |
FCD(Factory-Converted Dormitories) | 공장이나 창고 건물의 일부(몇 개의 층)를 기숙사로 개조한 경우. | |
CTQ(Construction Temporary Quarters ) | 공사 현장의 한켠이나 건물이 현저히 지어진 경우 지어진 건물의 일부에 임시로 주거를 조성하여 수용하는 경우. | |
HDB Flats | Work Permit 이상의 취업비자 관련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 주거 제공. HDB 한채를 그대로 제공. 다만 워크퍼밋 보유자 가운데 말레이인이거나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고 있을 경우에만 렌트가 가능함. 비말레이인 가운데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 방 하나를 렌트하는 것은 가능. | |
Private Residential premises | 고급 콘도, 랜드 하우스, 테라스 하우스, 샵하우스의 거주공간 등. 2019년 5월 15일부터 한 채당 6명까지만 수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 |
싱가포르 외국인 취업비자 보유자 대상 주거정책
출처: 싱가포르 노동부(Ministry of Manpower, Singapore)
위의 표에서 워크퍼밋 보유자만을 수용하는 세 가지 종류의 주거(PBD, FCD, CTQ)는 외국인 건설직 노동자들을 위한 도미토리(dormitory) 형태의 숙소다. 그 외의 취업비자 보유자들의 경우 공공주택인 HDB와 콘도, 주택 등 다양하게 거주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 국가에서 이주해 온 입주 가사도우미와 건설직 노동자들이 가장 하위의 노동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세기 이주민으로 건너 와 국가를 형성하고 싱가포르의 거주민이 된 ‘싱가포리안’들은 취업의 기회를 찾아 건너 온 새로운 이주민들을 맞아 과거의 그들을 통치한 ‘제국’이 그러했듯 이들을 계급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의 ‘이주민’은 현재 ‘거주민’이 되었고, 다시 저개발국가의 ‘이주민’들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 준 변화의 가능성
2020년 싱가포르에 거대한 충격을 준 코로나19사태는 새로운 전환의 가능성을 싱가포르 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싱가포르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이 보여주는 특징은 1월 23일 최초발생 이후 초기 ‘해외유입’과 ‘거주민 감염’의 웨이브를 현재(5월 20일) 10명 이내로 잘 관리하고 있는 반면, 도미토리에 거주하는 외국인 건설직 노동자들의 감염확산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 5월 20일 현재, 누적 전체 감염자 수 29,364명 가운데 도미토리 거주 외국인 노동자 감염자 수 27,106명(91%)이라는 숫자는 하위계층 이주민에 대한 싱가포르의 무관심과 대응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9) 아래 표에서 보듯, 30만에 달하는 건설직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는 지금의 확산이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예측마저 가능하게 한다. 지금도 여전히 싱가포르에는 도미토리 거주 외국인 노동자 감염자 수가 하루 평균 400-500명 이상 나오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을 인지한 싱가포르 정부의 대응 역시 신속한 측면이 있다. 주로 보건부(MOH Ministry of Health), 노동부(MOM), 이민국(ICA Immigrantion and Checkpoint Authority)를 중심으로 진행된 대응의 특징은 각 도미토리들을 고립화(isolation)시킴과 동시에 내부 노동자들의 이동을 완전히 제한(restriction)하는 것과 수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맞춤형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수십만 명분의 음식을 케이터링을 통해 매일 공급하고, 안전키트를 제공하며, 힌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적 수요에 맞추어 대응할 뿐만 아니라 무노동 상태임에도 그들의 임금을 100% 보장해 주고 있다. 가족들에게 보내는 송금 역시 가능하도록 해 주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드러난 임금체불 역시 해결해 주었다. 싱가포르 거주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과 이들을 위한 지역 NGO 단체의 활동 역시 돋보인다. 무엇보다 기존의 열악한 환경이 아닌 위생과 안전에 만전을 기울인 도미토리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각종 조치 역시 취하고 있다. 확실히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4월 21일 리셴룽 총리의 선언처럼 이들을 “싱가포리안과 같이 대우해 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10)
대부분이 남아시아(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온 힌두교, 무슬림 신자인 도미토리 거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싱가포르의 정부의 ‘문화적’ 대응 역시 흥미롭다. 각 종교에 맞게 채식 케이터링을 준비하고, 4월 14일 벵갈(Bengal) 및 타밀(Tamil) 새해에는 싱가포르내 24개 힌두사원의 지원을 받아 힌두식 음식과 예식을 제공해 주었다. 최근에는 4월 24일에서 5월 23일에 해당하는 라마단 기간을 맞아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후르(Sahur)와 부카 푸아사(Buka puasa)를 배급해 주고 있다.11)
물론 싱가포르의 이러한 노력은 싱가포르 사회가 이들 하위계층의 이주민들을 정말로 거주민인 싱가포리안들과 같이 대우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러한 싱가포르의 노력은 도미토리에서의 집단감염이 거주민 중심의 지역(community)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비난일색인 서구언론의 집중적 관심에 기인한 바가 크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의의는 싱가포르 정부가 싱가포르의 사회구조 속 저개발국가 출신 이주민들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계기를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는 그 ‘제국’의 시기부터 21세기인 현재까지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인적, 물적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개방성에 기대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과실을 듬뿍 먹고 자란 도시국가다. 그 개방성에 기대어 유입된 새로운 이주민들은 지역 내 도시개발과 인프라 유지에 있어서 노동구조의 최하위를 차지하였고, 싱가포르 경제에서의 비중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싱가포르 사회는 그동안 저개발국가 출신이라는 ‘국적’과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라는 ‘계급’에 기대어 이들을 평가하고 위계질서의 최하위에 두었지만, 2020년 ‘팬더믹(pandemic)’시대를 맞아 이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상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기존 싱가포르는 영구히, 혹은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이들만을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했던 반면에 팬더믹이 싱가포르 사회에 가져다 준 변화는 일시적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저개발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 역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통합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오히려 반대의 극단으로 향하는 인식 역시 존재한다. 원래 싱가포르 정부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활동을 최소화하는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 대응을 5월 초까지 실시할 예정이었는데, 수백 명의 일별 감염자 수를 기록하는 도미토리 거주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그 기간이 6월 초로 연장되었다. 이는 2010년 전후 중국인 ‘신이민’에 대한 혐오가 이들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재현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전자의 경우 싱가포리안들의 경제적 지위를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발생한 반면, 후자의 경우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미얀마 등 저개발국가에서 건너 온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방역 관련 혐오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싱가포르에 불어닥친 ‘전염병’의 유행이 2020년 이후 싱가포르의 다인종 사회 형성에 새로운 전환과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주민’은 ‘거주민’이 되었고, 이들은 다시 받아들인 새로운 ‘이주민’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길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과연 싱가포르 정부와 사회의 선택은 무엇일까?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싱가포르 출신 학자들이 모여 만든 모임인 “Academia.SG”에서는 지난 5월 2일 모임의 주요 싱가포리안 학자 5명(Cherian George, Linda Lim, Donald Low, Kenneth Paul Tan, Teo You Yenn)이 모여 웨비나(Webinar,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세미나)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한 바 있다. 이 세미나에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사항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라는 팬더믹이 마치 그 전에는 없던 싱가포르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 것 같지만, 사실 이러한 싱가포르 사회의 민낯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이 생존의 목표가 되면서 권위주의적 정치 시스템 아래 꾸준히 축적되어 왔고, 소수의 학자들이 계속해서 지적해 온 점이기는 하다. 다만 그동안에는 이러한 모순이 한 번에 드러날 만한 계기도 없었고, 드러나는 속도 역시 현저히 느렸기 때문에 그리 중요한 이슈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심지어 싱가포르 사회가 그 모순을 전 세계적 시선 앞에 정면으로 마주보게 강제하였다. 관련 학자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은 현재 싱가포르는 유례없는 팬더믹 시대를 맞아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고, 포스트 팬더믹 시대 싱가포르 사회의 내부구조는 새로운 전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13)
‘제국’의 피식민 지배계층으로 시작한 싱가포르의 이주민 중심 다인종 사회는 독립과 함께 시작된 국민국가시대를 맞아 내셔널리즘을 기반으로 한 거주민 중심의 다인종 사회로 전환하였고, 이후 21세기에는 저임금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주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예상치 못한 팬더믹 시대를 맞이한 싱가포르 사회는 다시 한 번 ‘거주민’과 ‘이주민’이 교차하는 기로와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저자소개
김종호(kimjongho@sogang.ac.kr)는
서강대학교 조교수다. 싱가포르 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근현대 시기 화교화인 네트워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해당 분야 관련 몇몇 논문을 출판하였다.
1) Speech by Prime Minister Goh Chok Tong, “Role of Community Organisations in Building The Singapore Nation”, Singapore Government Press Release, 30 October 1999
2) “MOE accepts panel’s recommendations on compulsory education for special needs children”, Straits Times, 17 November 2017 (검색일자: 2020.05.15.)
3) Goh Chok Tong, Speech on Singapore 21 Debate in Parliament, Parliament Debates, 5 May 1999, col.1482
4) CMIO 가운데 “Others”는 주요 3인종을 제외한 기타인종들을 의미하며, 대표적으로 “유라시안(Eurasian)”이 있다. 이들은 식민시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인들 가운데 현지 정착한 이들의 후예들을 가리키는데, 대부분 현지에서 결혼하여 혼혈집단적인 성격이 강하다.
5) “Excerpts from an interview with Lee Kuan Yew”, The New York Times, 29 August 2007 (검색일자: 2020.05.16.)
6) Department of Statistics, Singapore
7) Ministry of Manpower, Singapore
8) “A Guide for Foreign Workers”, (English version), Ministry of Manpower, Singapore
9) Situation Report, Ministry of Health, 20 May 2020
10) 2020년 4월 21일 리셴룽 총리의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브리핑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ihgkIQ8S1w)
11) 사후르는 라마단 금식기간 동안 해뜨기 전에 먹는 식사를, 부카 푸아사는 해가 진 후에 먹는 첫 식사를 가리킨다.
12) 개인적으로 이러한 비난일색의 서구언론의 태도 역시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바탕으로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쓰여진 의도가 보여서도 그렇고, 그 이면에 있는 다양한 현상들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기 때문에도 그렇다. “Singapore’s cramped migrant worker dorms hide Covid-19 surge risk”, Guardian, 17 April 2020 (검새일자: 2020.05.01.); “How Singapore Flipped From Virus Hero to Cautionary Tale”, Bloomberg, 21 April 2020 (검색일자: 2020.05.05.); “Singapore’s migrant workers are suffering the brunt of the country’s coronavirus outbreak”, CNN World, 25 April 2020(검색일자: 2020.05.05); “’We’re in a prison’: Singapore’s migrant workers suffer as Covid-19 surges back”, Guardian, 23 April 2020(검색일자: 2020.05.05.); “Singapore Is Trying to Forget Migrant Workers Are People”, Foreign Policy, 6 May 2020(검색일자: 2020.05.11.); “Coronavirus: Singapore’s migrant workers ‘living in fear’”, BBC News, 22 April 2020(검색일자: 2020.05.12.)
13) 최근 싱가포르 내부 학계와 정부 차원에서 이미 비슷한 논의를 시작했다. 즉, 싱가포르가 과연 이 낮은 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핵심은 경제적 개혁을 통해 이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낮추고 그 공백을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각종 기술적 혁명이나 낮은 임금의 거주민으로 메우자는 의견과 그럼에도 이들은 필요하고 코로나 사태 이후의 유지비용 역시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 사이의 대립이다. 이제 시작단계라 단정할 수 없지만, 확실히 싱가포르 사회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lvin Ong, “Rethinking costs and the social impact”, Academia.SG, 22 May 2020 (검색일자: 2020.05.22); Pang Eng Fong and Linda Lim, “Labour in Singapore’s post-COVID-19 economy”, Academia.SG, 2 June 2020 (검색일자: 2020.06.02)
참고문헌
- Chong, Terence eds., 2000. Navigating Differences: Integration in Singapore, Singapore: ISEAS-Yusof Ishak Institue
- Metcalf, Thomas R. 2013. “Colonial Cities.” The Oxford Handbook of Cities in World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 Song Ong Siang. 1923 One Hundred Years History of Chinese in Singapore. London: John Murray
- Tan, Serene and Brenda S. A. Yeoh. 2006. “Negotiating cosmopolitanism in Singapore’s fictional landscape”. Cosmopolitan Urbanism, Jon Binnie eds., Psycholog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