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2월 14일)을 한 달 남짓 앞둔 인도네시아에서 현직 대통령과 여당 간 불화가 이어지고 있다. 반목의 지점은 ‘대통령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가’이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이 야당 대선 후보와 손잡으면서 시작된 갈등이 ‘집권당의 대통령 패싱’ ‘대통령 중립 의무 위반 논란’ 등으로 번지면서 갈수록 균열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포스트 등에 따르면 조코위 대통령은 전날 자카르타에서 열린 집권 투쟁민주당(PDI-P) 51주년 창당 기념행사에 불참했다. 2014년 대통령 취임 이후 10년 가까이 행사에 직접 참석해 온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코로나19 팬데믹이나 외부 일정 등으로 참석이 어려웠을 때도 영상 축하 인사를 전했지만, 이번에는 이조차 하지 않았다.
표면상 이유는 ‘해외 순방’이다. 9일 오후부터 이웃 국가인 필리핀과 베트남, 브루나이를 공식 방문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애당초 조코위 대통령이 PDI-P로부터 행사 초대를 받지 못했다는 게 현지 매체들의 설명이다. 초대장을 받은 마루프 아민 부통령이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는 대선 레이스 막이 오르면서 틀어진 조코위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보여 준다. 그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37) 수라카르타(솔로) 시장은 지난해 10월 대선 후보 중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그린그라당 총재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물론, 기브란 본인도 PDI-P 소속이지만, 경쟁 정당 후보와 팀을 이룬 셈이다. 기브란은 지금까지도 PDI-P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조코위 대통령은 아들을 부통령 후보로 올리기 위해 ‘만 40세 이상 시민권자만 출마할 수 있다’는 선거법 조항까지 뜯어고쳤다. 지지율 80% 이상인 조코위 대통령 인기에 힘입어 프라보워·기브란 후보 지지율은 30%대에서 46.7%(지난달 26일 현지 여론조사기관 인디카토르 인도네시아 집계)로 치솟았다. 여당 지지자 중 상당수가 기브란을 따라 지지 정당을 바꿨다는 의미다.
현지 일간 콤파스는 “PDI-P 지지 유권자 중에서 자신의 당 대선후보를 선택하겠다는 비율은 64.8%에 그쳤다. 25% 이상이 기브란을 선택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여당 내에선 이미 재선한 조코위 대통령이 당선 가능성 높은 후보자와 아들을 묶어 권력을 이어가려 한다며 배신감을 드러냈는데, 전날 행사를 통해 양측의 반목이 또다시 드러난 셈이다.
CNN인도네시아는 “(집권당) 창당 기념행사에 대통령이 불참한 것은 처음이라 시선이 집중됐다”며 “(조코위의) 이번 부재는 기브란의 (그린그라당) 부통령 후보 지명 이후 조코위와 PDI-P 간 관계 붕괴를 보여 준다”고 짚었다.
지난 8일엔 조코위 대통령이 프라보워 후보와 식당에서 단둘이 저녁식사를 하는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신의 소속 정당 후보가 아니라, 아들의 정치 파트너를 후계자로 공언한 꼴이기 때문이다. 이에 PDI-P는 조코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지시한 사실을 언급하며 “자신부터 실천하라”며 날을 세웠다. PDI-P 대선 후보 간자르 프라노워는 “대통령은 자신이 누구 편이라고 명확하게 밝히는 편이 낫겠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c)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