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中 메콩강 상류 댐 건설까지…물 위기 심각한 라오스
관개시설 부족한 라오스, 고위 공무원이 한국에 SOS 요청
韓, 비엔티안 관개기술교육센터 준공 후 운영권 라오스에 이양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와 라오스 농림부 관계자가 4월 25일 라오스 비엔티안 관개기술교육센터의 운영관리권을 이양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희훈 기자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와 라오스 농림부 관계자가 4월 25일 라오스 비엔티안 관개기술교육센터의 운영관리권을 이양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희훈 기자

“한국이 지원한 관개기술교육센터(ITTC) 프로젝트는 라오스에 선진 관개(농지에 물을 인공적으로 공급하는 것) 기술을 제공하고,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역량 강화 프로젝트다. 라오스의 농업 및 임업 부문에 기술과 보조금을 지원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께 라오스 농림부를 대표해 감사드린다.”

통팟 봉마니(Thongphath Vongmany) 라오스 농림부 차관은 지난 4월 25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시 싸이타니군에 조성된 ‘ITTC 준공식’에서 “한국의 선진 지식과 신식 기술을 전수받는 것이 라오스의 농업 기술을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와 라오스 농림부는 이날 ITTC 준공식을 열고, 운영관리권을 라오스 정부에 넘기는 이양식을 진행했다. 앞으로 ITTC는 라오스 기술직 공무원들의 농업용수 관리 기술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관개 기술 교육 시설과 토질·수질 시험 시설로 활용된다.

ITTC 사업은 지난 2018년 봉마니 차관이 한국을 방문해 농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 등 관계기관에 직접 요청한 프로젝트다. 이에 한국 정부는 지난 2021년부터 총사업비 62억원을 투입해 ITTC 건립 및 농업 기술 역량 강화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케우돈(왼쪽) 라오스 농업서비스센터ADC 소장과 인근 지역에서 농업을 하는 농민이 한국 정부가 지원한 농기계를 소개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케우돈(왼쪽) 라오스 농업서비스센터ADC 소장과 인근 지역에서 농업을 하는 농민이 한국 정부가 지원한 농기계를 소개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 라오스 농경지 관개시설 챙기는 K-농업

메콩강 중류에 위치한 라오스에서는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7명이 농업에 종사한다. 전체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치수’(治水) 역량이 부족해 매년 가뭄과 홍수 피해를 입는다. 이러한 자연 재해는 라오스 정부가 추진하는 농업 중심 경제개발계획 실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라오스 농림부에 따르면 라오스 농경지 중 관개 시설을 갖춘 농지는 20%도 안된다. 메콩강과 맞대고 있는 일부 평야 지역에만 농업용수가 공급되는 실정이다. 물만 확보된다면 태국처럼 1년 2~3모작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대목이다.

나라 살림이 괜찮으면 농경지 관개시설 구축 사업을 대대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라오스는 지난 2022년 디폴트 위기에 내몰렸을 정도로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 캄파찬 봉사나(Khamphachanh Vongsana) 라오스 농림부 관개국장은 “건기 메콩강 수위가 낮아지면 농업용수 확보에 어려움이 생긴다”면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면 관개 시설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국가 재정 여건 상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10여년 전부터 라오스의 관개 시설 확보를 다각적으로 지원해왔다.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진 시엥쿠앙주에 44억원을 투입해 댐과 관개수로 건설을 지원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진 51억원을 투입해 쌍통군에 관개용 댐과 수로를 지어줬다. 비엔티안에도 ITTC 사업과 별도로 81억원을 투입해 수자원 관리 및 농업용수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라오스 현지에서 에서 농식품부 ODA 사업을 관리하는 최동훈 한국농어촌공사 라오스 소장은 “라오스는 관개 시설이 너무 취약해 농업 생산성이 매우 낮다”면서 “라오스 정부가 한국 정부에 관개 시설 지원을 계속 요청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최근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라오스의 수자원 관리는 안보 차원의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메콩강 상류 지역에 댐을 짓기 시작하면서 건기 물 부족 문제가 더욱 심화하는 상황이다.

봉마니 차관은 “인근 국가의 댐 건설로 인한 물부족 문제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메콩강 유역 국가 간에는 수자원 관리를 위한 협약이 체결돼 있는데, 중국은 빠져있다 보니 댐 건설 등 구체적인 정보를 인근 국가에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9월 7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라오스 양자회담에서 손싸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9월 7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라오스 양자회담에서 손싸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 메콩강 정비까지 챙기는 韓… “댐 붕괴 사고, 경험 극복하고 전진해야”

한국 정부는 관개 시설 이외에 농업용 기계와 수확한 벼를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도 지원했다. 라오스는 트랙터나 콤바인, 건조기 등 농기계 보급이 저조하다. 쌀은 노천에 햇빛으로 말리는 게 전부다. 생산한 벼에 흠집이 생기는 것은 일상 다반사, 내년에 심을 종자벼가 병충해에 걸리는 일도 잦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지난 2020년부터 44억원을 투입해 비엔티안에 ‘농기계활용도 제고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 경운기, 건조선별기 등 기자재를 지원하고, 벼 저장고와 건조장 등이 구비된 수확 벼 관리 시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농기계와 벼 관리시설을 지원한 후 인근 농가의 생산성은 62% 증가했다. 농가 연평균 소득도 4690만킵(한화 300만원)으로 종전 대비 282% 증가했다.

한국 정부가 2012년부터 현재까지 라오스 정부에 지원한 ODA 사업 규모는 약 400억원에 이른다. 이 외에도 한국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투입해 1차(3720만달러)와 2차(5760만달러)에 걸쳐 약 1억 달러를 투입하는 메콩강변 정비 사업도 벌였다. 1차 사업은 2014년 종료했고, 2차 사업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한국이 EDCF로 지원한 메콩강 정비 사업을 시행한 이후 해당 수역에서는 현재까지 홍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비가 마무리된 지역에는 현재 호텔과 식당 등이 들어섰다.

라오스에선 지난 2018년 SK건설이 지은 세피안-세남노이 댐이 붕괴해 하류 지역 6개 마을이 침수되고 실종자가 대량 발생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사고 책임 공방이 양국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한국 정부 차원의 수습 지원과 SK건설의 1억 달러 복구비 지급 등으로 빠르게 수습됐다.

봉마니 차관은 “세피안댐 사고는 아픈 경험이지만,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있다”며 “과거에서 배우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라오스의 개발을 위해 앞으로도 한국 정부가 꾸준히 지원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c)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