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우리가 아는 도둑질이란 남의 것을 허락없이 가져다가 스스로 소비하거나 혹은 남에게 팖으로서 이익을 보고자 하는, 타인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범법 행위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의 도둑질은 좀 달라보인다. 우선 그 영업방식이 다르다. 예를 들어, 롬복(Lombok) 섬의 도둑은 훔친 물건을 자기가 사용하거나 혹은 팔아버리기보다는 오히려 훔친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대가로 이익을 챙기는 것이 고유의 영업 방식이다. 도둑은 물건을 훔친 뒤 원래 주인이 어떻게든 자기를 찾아와서 물건 값을 흥정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통이 막혀 주인이 도둑을 찾아오지 못할 경우엔 도둑이 슬쩍 사람을 보내 자신의 소재를 알려주기도 하는 융통성과 관대함도 보인다. 이 경우 도둑과 주인은 한자리에서 만나 물건 값을 흥정하고 얼마 뒤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 돈과 물건을 맞바꾼다. 이것이 대략 1998년경까지 흐트러짐 없이 이어져 온 롬복 섬의 도둑과 주인 간의 오랜 거래 규칙이었다. 이런 사정은 자바(Java) 섬에서도 감지된다. 보통은 도둑이 장물을 어딘가로 팔아 넘기지만, 절도 피해자가 특별히 도둑과 연관된 지인을 통해 부탁하는 경우 일정 대가만 지불하면 물건이 돌아온다. 어떤 경우엔 부패한 경찰이 절도 사건의 피해자에게 도둑의 소재를 알려주고 장물 교환을 주선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인도네시아 몇몇 전통사회에서 도둑질의 행태는 남의 소유권을 영원히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점유했다가 대가를 받고 돌려주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거래에선 말하자면 물건을 다시 되돌려줌으로써 도둑과 주인 간의 분쟁이 일단락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침해된 소유권의 회복 여부 말고도, 도둑질에 대한 법적이고 도덕적인 추궁의 문제가 아직은 남아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이 대목에서 인도네시아에 살던 한 일본인 아줌마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 일본인 아줌마는 인도네시아의 바틱(Batik) 천 가게를 운영하면서 서로 시누이 올케지간인 인도네시아 현지인 여성 두 명을 하루 이교대로 근무시켰었다. 그런데 비싼 바틱 천 두 장이 어느 날 사라진 것이고, 주변 정황을 보아선 이 두 여성 중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일본인 주인은 이 사실을 경찰서에 고발하였다. 그런데 이 두 현지인 여성의 가족이 경찰서로 찾아와 일본인 아줌마를 만나 처음 꺼낸 말은 황당하게도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바틱 천 값이 얼마에요?”였다고 한다. 절도 피의자의 가족으로부터 반성의 태도를 기대하던 일본인 아줌마는 가족까지도 후안무치, 도덕성을 결여한 이 모습에 분을 참지 못하였다.

이런 경우는 사실 드물지 않다. 인도네시아 도시의 웬만한 가정들이 다 두고 있는 가정부들은 순박한 시골 아가씨들이다.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둔 주인집 아이의 아이스크림을 허락 없이 꺼내 먹었다가 그 사실을 추궁당했을 때 제일 먼저 그녀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그 아이스크림 얼마에요?”이다. 이렇게 절도 혐의를 받는 자가 제일 먼저 내뱉는 말이 “얼마에요”인 까닭은 인도네시아 관습법 상, 민사상의 문제이건 형사상의 문제이건 상관없이, 어떤 분쟁이 생기면 그 응징은 마을이나 국가의 공권력이 아니라 피해자 스스로가 하는 것이고, 가해자가 피해 사실을 회복해 주는 것으로 양측 간의 분쟁은 해결되고 다시 이전의 사회관계가 복원된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소유권을 침해한 사실은 소유권 침해를 회복해주는 일로 해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절도 혐의를 받은 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도덕적 반성보다는 오히려 피해사실을 복구해 줄 의지가 있음을 표명하는 일인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분쟁을 다룰 때는 시시비비나 도덕적 원칙의 재확인보다는 오히려 사회관계의 복원에 더 중요한 방점을 찍으며, 이 때 사회관계 복원의 첫걸음은 피해 사실의 회복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전통사회에서 도둑질이란 단지 절도 행위자만의 범죄는 아니다. 오히려 자바 섬 같은 경우에는 마을의 영토성을 제대로 수호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과실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난된 물소가 어떤 다른 마을에서 도살되었을 경우, 그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훔치지 않았더라도 도난된 가축의 가치만큼 배상해 주어야 한다. 또 외국인에 대한 살인이나 절도 같은 범죄가 발생한 마을은 누가 범죄를 저질렀건 간에 벌금을 지불하고 피해자의 소속 집단에게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말하자면 자기 영토는 권리일 뿐 아니라 책임이기도 하며, 때문에 절도사건에 대한 책임은 도둑 당사자와 도둑이 들어올 틈을 만든 마을 공동체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상위 <사진1> 외지인 신고 종용 표지판).

그래서인지 인도네시아 촌락 마을에서는 자기 마을에 대한 치안 관행이 유별나다. 자바 마을의 각 골목 입구마다엔 대개 “외부 손님은 통반장님께 신고하십시오”라는 내용의 알림판이 붙어 있고 아주 많은 경우에 골목 입구는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또한 마을마다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통행의 요지마다 원두막을 닮은 민간 방범 초소(pos ronda)가 설치되어 있고 거기엔 방범용 경고목탁 (혹은 금속 종)이 달려있게 마련이다. 이 초소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은 몇 명씩 조를 짜서 론다(ronda)라고 부르는 야간 순찰을 돈다. 그러다 도둑이야!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들은 모든 주민은 모두 뛰어나와 도둑잡기에 나설 의무가 있다. 도둑잡기에 동참하지 않는 주민은 관습법상 벌금을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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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인도네시아 전통사회에서 관찰되는 도둑질이란 개인의 소유권에 대한 영구적 침해죄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소유권을 잠시 볼모로 하여 금전적 이익을 기대하는 정도의 행위로 정의되기도 한다. 또한 도둑질은 도둑 당사자의 범죄임은 물론 한 지역의 치안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을 공동의 과실죄이기도 하다. 한편 인도네시아인들의 가치체계 속에서 절도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민간에서 발생한 사건의 해결 과정 속에서는 도덕적 단죄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오히려 피해를 회복하는 방식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 이 글은 2012년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심층분석 아시아 코너에 게재되었던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