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초자연적 존재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것이 귀신, 유령, 악령, 도깨비, 괴물, 혹은 그 무엇으로 불리건 간에, 분명한 것은 이 존재들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이다. TV를 틀면 하루에도 몇 번씩 온갖 잡귀들을 다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 이외에도, 이 존재들은 인도네시아 촌락사회에 은밀히 초대되거나 혹은 스스로 마을을 침범하여 주민들과 소통하고 거래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초자연적 존재들 중에서도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귀신은 아마도 부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귀신 종류일 것이다. 부자 만드는 귀신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중에도 뚜율(tuyul)과 부또 이조(buto ijo)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 귀신들을 키우거나 보살피는 사람에겐 귀신이 남의 부를 훔쳐다 주거나 혹은 초자연적 현금(uang gaib)을 빌려주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고 한다(상위 <사진1> 뚜율과 부또 이조의 이미지).

20130510211742_44463 (1)

<사진2> 병에 갇힌 뚜율. 뚜율을 잡으면 이렇게 병에 가둔다

뚜율은 다섯 살쯤 되는 까까머리 아기 귀신으로 이 귀신은 유산하거나 낙태된 태아 혹은 사산아로부터 비롯한 존재이다. 때문에 이 귀신은 아이처럼 놀기 좋아하고 주인을 엄마처럼 여기며 엄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그리곤 엄마 따라 간 그 곳에서 아이들이 훔쳐갈 만큼의 소소한 액수의 현금이나 돈이 될 만한 장신구들을 훔쳐 엄마에게 갖다 주는 것이 일이다. 따라서 이 귀신을 키우는 이가 다니는 데마다에서 큰돈은 아니라도 현금 분실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한편 부또 이조는 초록빛의 무서운 괴물 형상이다. 이 귀신은 뚜율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소소한 액수의 돈이 아니라 거대한 부를 가져다준다. 초자연적 현금을 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귀신들의 봉사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이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다. 뚜율의 경우는 아이답게 엄마의 젖을 얻어먹는 것을 봉사의 조건으로 한다. 그래서 뚜율을 키우는 사람은 부자가 되었으면서도 신수가 훤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몸은 기름기 없이 배짝 말라간다. 인색하고 신경질적인 외모로 변해 가는 것이다. 귀신이 젖을 빨아먹으니 오죽하겠는가? 이에 비해 부또 이조는 거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만큼 그 대가도 엄청나서 사람의 목숨을 요구한다. 그래서 부또 이조를 키우면서 부를 이룬 사람 주변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자신의 건강과 이웃의 목숨을 대가로 귀신과 거래해 이렇게 성취한 부는, 실은 아무리 주술적이기는 할망정 “생산된 부”가 아니라 “남의 것을 당겨쓰는 부”라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뚜율은 이웃들로부터 돈을 훔쳐오고 부또 이조는 의뢰인의 미래 후손으로부터 그 부를 미리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 위해 이런 귀신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건강과 주변인의 목숨, 그리고 이웃과 자손의 복지를 모두 담보로 하는 매우 위험하고도 부도덕한 행위이다.

인도네시아 친구들로부터 위의 귀신 이야기 디테일들을 전해 들으면서 필자는 두 가지 면에서 경탄을 했었다. 첫째는 어쩜 이야기의 앞뒤가 그리 딱딱 들어맞는가 말이다. 사탕 값을 위해 주변에서 적은 돈을 슬쩍하는 아이의 행태에 빗대어 귀신의 모습을 엄마를 쫓아다니는 어린아이로 상정한 점, 그래서 없어지는 돈은 큰돈은 아니지만 현금 분실 사건의 빈도수는 높다고 설명하는 점, 또 부도덕한 부를 성취한 자의 인색하고 기름기 없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외모의 근거를 아기 귀신에게 젖을 빨리기 때문으로 설명하는 점 들이 정말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거대한 부를 이룬 벼락부자의 불행한 가정사와 후손의 몰락 이야기도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일인데 그게 모두 귀신과의 부도덕한 거래 내용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 아닌가?

둘째는 이 귀신 이야기 속에, 농민문화 속에서 곧잘 발견되는 “한정자원 이미지(image of limited good)”가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었다. 한정자원 이미지란 부, 사랑, 건강과 같은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은 애초에 그 양이 한정되어 존재하는 것이며 확대 재생산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성을 뜻한다. 그래서 한정자원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과도한 부를 축적하였다면 그것은 새로운 부가 창출된 결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몫이었던 것을 취한 결과로 이해된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일은 부도덕한 일로 이해되고, 부자는 자신의 부를 원래의 주인들인 이웃들에게 각종 부조금이나 의례 행사의 기회를 통해 재분배하도록 기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정 자원을 어떤 시간의 프레임 속에서 전시기에 걸쳐 골고루 나누어 사용하지 않고 한꺼번에 다 써버리는 일도 나중의 곤란을 초래하는 일이니 부적절한 처신이 된다. 부또 이조의 경우에서처럼 말이다. 후손의 부를 당겨쓰니 후손이 가난해진다는 것 아닌가? 이와 같은 이유로, 한정자원 이미지를 가진 사회에서는 부를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도덕이고, 자원을 적절히 배분해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 된다.

정리하자면, 뚜율과 부또 이조를 섬기는 자들은 한정자원 이미지를 가진 인도네시아 문화 속에서 그야말로 부도덕의 화신들이며, 사회적으로도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평안과 안위를 위협하는 일탈자들이고, 더더군다나 대다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믿는 이슬람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유일신 아닌 잡귀를 섬기는 이단들이니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자기 마을에 귀신을 키우는 주민이 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그 마을은 걷잡을 수 없는 도덕적 분노와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혐의를 받은 자는 공동체의 응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20130510211807_51112

<사진3> 수도 자카르타의 한 마을에서 뚜율이 잡혔다는 소문이 나자 주민들이 몰려와 뚜율을 보려 하고 있다.

필자가 인도네시아 자바(Java) 섬 끌라뗀(Klaten)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살 때도 뚜율과 그 비슷한 여러 귀신들이 마을에 있다는 소문이 돌아, 마을 청년들이 귀신토벌작전을 벌이기로 하는 등, 마을이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귀신 키운다고 지목된 두 아주머니가 이장 집에 가서 울고불고 도움을 청해야 할 정도였다. 게다가 또 한 번은 석 달 사이에 마을 주민 네 명이 연달아 사망하면서 부또 이조를 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설이 퍼지기도 했었다. 비록 그 혐의를 어디로 돌리기 전에 이슈가 사그라졌으니 다행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주변사람들에 비해 윤택한 삶을 살면서도 물질적으로 이웃에 인색하고 신경질적이며 예의바르지 못했던 이들에게 부자 만드는 귀신과 거래했다는 혐의가 주어지는 것은, 한정자원 이미지를 가진, 자바의 농촌마을 문화 논리상 매우 당연해 보이는 것을…

귀신토벌대가 조직되어 어느 날 밤 혐의자 중의 한 집을 습격할 것이라는 급보가 전해졌을 때, 필자는 이장님께 불려 가 특별 임무를 부여받았다. 즉, 마을 외곽에 홀로 위치해 있던 그 집으로 청년들이 몰려가면, 집주인이 필자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할 것이니, 필자는 “절대로” 잠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말고 바로 옆집에 사시는 이장님께 구조 요청을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필자에게 특명이 떨어진 이유는 당시 그 마을에 핸드폰을 가진 사람은 필자와 습격 받게 될 집의 주인, 이렇게 단 두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공권력으로서 이장님의 노력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자칫하면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인도네시아의 거의 모든 마을들은 일 년에도 한두 번씩 이렇게 부자 만드는 귀신 이야기로 소동이 일어난다, 농촌이건 큰 도시건 상관없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 도덕적이고 사회적으로도 현명한 처신임을 배워나가는 것이리라.

*이 글은 2012년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심층분석 아시아 코너에 게재되었던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