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인을 고용해 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투덜거리는 사안이 하나 있다.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이 동네 사람 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직장을 결근하니 어떻게 이 사람들을 믿고 일하겠느냐는 푸념이다. 부모도 친척도 아닌 단지 동네 사람의 장례식 때문에 결근을 한다는 것도 정말 의심스럽고 또 어찌 허구헌 날 그렇게 죽었다는 이웃도 많은지 번번이 속아주는 심정인 것이다. 아주 친한 이웃 아니면 결근까지 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문상은 퇴근 후 잠깐 가서 하면 될 것 같은데, 주변에 사람이 죽을 때마다 핑계 삼아 결근하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한국의 사장님들은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필자도 현지 대학에서 수학할 때, 이웃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이유로 강의를 취소한 교수에 대해 매우 분노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웃의 죽음은 당연한 결근 사유이다. 그 이유는 자바 섬과 발리 섬을 비롯한 인도네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사람은 죽어서 선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공동묘지로 가는 것이고, 장례식은 가족이나 친족이 주관하는 행사가 아니라 마을이 주관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들인 자바 섬에선, 사람이 죽으면 바로 24시간 이내 매장을 해야 하니, 이웃이 죽으면 내일로 미루지도 못하고 반드시 오늘 바로 내 손으로 묻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삼일의 장례 기간 중에 하루 정도만 잠깐 틈을 내서 부조금 들고 찾아가 문상하는 것으로 지인의 역할이 마무리되는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상위 <사진1> 자바 마을의 장례식).
한편, 발리의 경우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화장에 소요되는 경비도 많이 들고 또 의례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바, 우선은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었다가 의례 준비가 끝나면 다시 시신을 파내어 응아벤(ngaben)이라고 부르는 화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개인적으로 하기 보다는 마을에서 최근 4-5년 간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일시에 다 모아서 한꺼번에 화장 의례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응아벤 의례는 마을이 총력을 다 기울여 준비해도 한 달 넘게 걸리는 큰 행사이다. 그러므로 이웃이 상을 당하면, 또 응아벤이 예정되면 마을 주민 모두가 바빠지는 것이다.
<사진2> 발리 마을 공동묘지에서 시신들을 발굴하여 태우기 전 화로에 안치해 놓았다.
<사진3~4> 시신들을 가스불로 화장하고 있다.
장례식이 마을의 행사이다 보니 살아생전 마을 공동체의 규율을 심각하게 위반했던 사람들 중엔 자신의 죽음 뒤에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장례식을 치러 줄 것인지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경우엔 마을의 공동묘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2011년만 하더라도 자바 섬 찌레본(Cirebon)의 한 마을은 테러리스트였던 아흐맏 요세파(Achmad Yosepa)의 시신을 마을 공동묘지에 매장하기를 거부하였다. 이슬람 신자는 반드시 매장을 하고 화장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테러리스트의 시신은 멀리 자카르타 공동묘지까지 묻힐 자리를 찾아 고단한 길을 떠나야 했다. 물론 테러리스트 활동을 이슬람 성전 지하드(jihad)의 일환인 것으로 마을 사람들이 해석만 해 준다면야 당연히 마을 공동묘지에 안장될 것이다.
<사진5> 2010년 활동 중 경찰에 발각되어 사살된 테러리스트(Yuli Harsono)의 장례식으로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지고 있다.
한편 힌두교를 믿는 발리 섬에서도 마을에서 인심을 얻지 못한 사람에 대한 가장 큰 징벌은 마을에서 장례식을 치러 주지 않는 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장례식을 보이콧하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1997년 발리 주지사였던 이다 바구스 오까(Ida Bagus Oka)의 사례가 분명히 보여준다. 당시 발리 주지사는 주민들 대부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힌두교 성지에 초호화 리조트를 건설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주지사 고향 마을 꺼시만(Kesiman)의 주민들이 관습법 회의를 열고 주지사를 마을공동체로부터 축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러한 공동체로부터의 축출을 발리 섬에서는 까스뻐깡(kasepekang)이라 한다. 이렇게 까스뻐깡을 당한 사람은 마을 공동체에서의 권리와 의무를 모두 상실하게 되어 죽어서도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주지 않게 된다. 이것은 죽은 힌두교도의 영혼의 다음 여정을 가로막는, 즉 죽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아주 심각한 재앙이다. 관습법상의 까스뻐깡 앞에 결국 주지사는 항복하였고 리조트 건설 계획은 당장 취소되었다.
정리하자면, 자신이 믿는 종교가 무엇이건, 내세를 믿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겐 장례식이란 망자 영혼의 다음 여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행사인데, 그 행사는 망자가 속한 마을 사람들이 주관하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한마을 사람의 장례는 마을 주민 모두가 발 벗고 나서서 돌봐주어야 할 의무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러한 장례 품앗이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되지 않고 축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을 공동체의 규율을 준수하고 스스로도 이웃의 장례를 부지런히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웃에 초상이 나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당연히 결근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2012년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심층분석 아시아 코너에 게재되었던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