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필자는 8년 넘게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목욕 문제에 신경을 쓰는지가 항상 궁금했었다. 사실 그 궁금증은 초급 인도네시아어 회화 교본에서 “목욕은 했니(sudah mandi)?”라는 인사말을 배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게다. 인도네시아 인사말에는 “어떻게 지내니(apa kabar)?”라는 평이하면서도 점잖은 표현도 있고, 살짝 간섭 끼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디 가(ke mana)?”도 있고, 또 살갑게 챙겨주는 말로 ”밥은 먹었니(sudah makan)?“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목욕까지 챙겨주고 싶은가 말이다. 세상에 남사스럽게도 벗은 몸을 상상해야 하는 그런 무례한 인사법이 필자에게는 영 편치가 않았었다(상위 <사진1> 방금 목욕을 마친 자바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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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자카르타 이스티끌랄 사원의 세정(wudhu) 장소

쉽게 생각해 보면, 더운 나라니까 목욕을 자주 해야겠고 체취를 조심하느라 목욕에 신경쓰다보니 일상의 실제적 문제로서의 목욕 여부를 묻는 질문이 인사치레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혹은 인도네시아에서의 목욕이란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정화와 치유의 의례로서도 중요했던 만큼, 목욕을 했느냐는 질문은, 초월적 존재와 대면하거나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채비를 갖추었냐는 배려 섞인 점검의 인사치레라고도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도들은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예배 이전에 반드시 몸을 씻어야 하며, 자바(Java)의 신랑신부는 지금도 혼인식의 한 과정으로서 주변의 가족과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꽃물로 목욕하는 의례를 행하고, 아픈 사람 또한 주술적 치유를 위해 꽃물 목욕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적 실천자로서의 인도네시아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일상과 종교는 결코 별개로 분리되어 생각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목욕 문제만 하더라도 이는 일상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모두 참조하여 실천되는 행위이고, 이러한 문화적 실천들을 통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삶의 실체가 조형되고 삶의 의미가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그러한 예가 있다. 필자가 자바 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현지조사를 하고 있던 때였는데, 어느 날 그 마을의 이장댁이 필자의 집으로 놀러왔다. 그녀의 방문은 필자가 이전에 거주했던 족자카르타(Yogyakarta) 지역의 한 거리의 위치를 묻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30대 초반으로, 이장과 혼인한 지가 벌써 5년이 지났건만 아직 아이가 없어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불임 여성들에게 마사지 시술을 통해 임신을 가능케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사람의 주소를 필자에게 들고 와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자바 사람이 맘속의 고민을 털어놓는 일은 매우 드문 경우인데 그 날 이장댁은 아예 작정을 하고 온 듯 자신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녀는 목욕 문제가 걸려서 남편과 편하게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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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인도네시아 도시 일반가정의 욕실 겸 화장실 모습

사정인즉 이렇다. 이장이 혼인할 당시 이장의 부모는 이장의 신접살림을 위해 따로 집을 지어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이에 부모는 자기 집 테라스가 있던 공간을 대략 막아 길게 방 한 칸을 마련해 준 것인데, 부부가 혼인하면 부부가 어느 일방의 친족집단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핵가족이 탄생한 것으로 간주하는 자바의 전통상, 이 신혼부부는 방 한 켠을 막아 석유곤로를 사다 놓고 별개의 부엌을 차렸다. “부엌이 다르다(lain dapur)”라는 말이 가구의 독립을 뜻하는 말로 통용되는 만큼 그것은 필수적 조치였을 것인데, 문제는 욕실과 화장실을 별도로 마련하려면 석유곤로와는 달리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우물을 파야하고 거기에다 전기펌프도 달아야 하고 변기도 설치해야 하고… 그래서 이장부부는 할 수없이 부모의 욕실을 함께 사용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같은 울타리 안에 있고 본채의 뒤에 붙어있는 공간이라 이장부부의 방으로부터도 접근이 용이한 공간이었지만, 문제는 밤에 부부가 관계를 가지고 나면 그 다음날 새벽의 첫 기도가 좀 어려워진다는 말이었다. 인도네시아 사정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고 이슬람교도들의 신앙 행위에 관해서도 충분히 알만큼 안다고 자신하던 필자에게도 이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부가 함께 잤는데 그 다음날 새벽 기도가 어려워진다니?

이슬람교도들이 하루 다섯 번 하는 기도 예배는 매우 정교한 규칙과 순서에 따라 행해져야 유효하다. 지성이면 감천이 되는 시스템은 아닌 것이다. 기도 예배를 유효하게 하는 엄격한 조건들이 따로 있다.그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 전 자기 몸의 오염을 제거하고 정화하는 행위이다. 이때 오염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서, 그저 일상의 더러움뿐이라면 물로 신체의 정해진 특정부분들을 씻어내면(wudhu) 기도의 채비를 마친 것이 되지만, 생리혈, 출산혈, 정액 등은 심한 오염으로 간주되어 이러한 오염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을 끼얹어 하는 대대적인 목욕(mandi besar)을 통해 제거되어야 한다. 따라서 목욕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아가씨들 중에는 머리까지 감는 대대적 목욕을 해서 머리카락이 아직 젖어있는 상태로는 남 앞에 나서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있다. 대대적 목욕이란 정액과 같은 심한 오염을 제거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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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강물에 목욕하는 주민들

이제 이장부부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밤의 부부관계 이후 다음날 새벽 기도를 위해서는 정액을 씻어내는 대대적 목욕이 필요한데, 문제는 집안의 유일한 욕실을 두 부부가 번갈아 장시간 점유하기에는 욕실 바깥의 줄이 너무 길다는 사실에 있다. 시부모도 시누이도 새벽 기도하겠다고 욕실 밖에 줄 서 있는 줄 뻔히 알면서 편한 맘으로 본격적인 목욕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벽녘의 우물물은 매우 차갑다. 이러한 고충(?) 때문에 이장부부는 한밤의 관계를 피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 대신 선택된 시간은 오후 3-5시 사이. 이장이 촌락사무소로부터 퇴근해서 쉬는 시간이고 또 오수를 즐기기에도 적당한 시간이다. 더구나 잠자고 나서 한낮의 태양열로 미지근하게 달구어진 우물물로 목욕을 하고나면 마침 해질녘에 올리는 기도 타임이니 신실한 이장 부부에게 있어 관계를 갖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시간은 없는 셈이다. 게다가 덤으로 이때는 새벽시간과는 달리 좀 미리 일어나 목욕을 해도 부담이 없으니 욕실 바깥의 긴 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마음이 편했겠는가.

그러나 이 시간 선택도 완벽한 선택은 못되었다. 이장이라는 직업은 촌락사무소에 출근해 있는 시간뿐 아니라 아예 하루 24시간이 모두 업무시간이며 따라서 업무는 자택으로까지 연장된다. 그리고 이장은 그 지역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모두 가지는, 촌락민들의 어버이와 같은 존재이다. 촌락민들은 행정상의 일뿐 아니라 공동체와 개인의 다양한 문제들을 다 이장과 상의한다. 작게는 감기약 같은 상비약 좀 가진 게 있느냐는 민원도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이장부부의 오수를 방해하는 민원인들이 드물지 않게 찾아와 단잠을 깨울 수밖에. 또한 이장의 집 앞은 동네 사람들이 선호하는 오후의 한담 장소였다. 온갖 가십거리들이 여기서 오고간다. 창문 너머 들려오는 이러한 잡담 소리들도 이장부부의 아기 갖기 프로젝트를 방해하여 온 것이리라. 다행히도 이장댁은 마사지 시술의 효험으로 오래지 않아 임신을 하게 되었고 아들을 얻었으니 축하해야 할 일이다.

이장부부의 사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내밀한 욕구가, 일상의 공간과 종교적 관념 그리고 신앙행위 들이 만드는 지형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실천되는 과정과, 그럼으로써 한 부부의 삶이 구체적으로 조형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한가운데에 목욕이라는 이슈가 놓여 있던 것이다. 세상살이의 다양한 국면에서 목욕이 인도네시아의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식으로 개입해 들어올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종교적 오염 관념과 신앙행위로서의 기도 예배는 일상의 어떤 맥락과도 연관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욕은 언제나 인도네시아인 삶의 주요한 관심사일 터이고, 그러니 어찌 “목욕은 했니?”라고 인사를 건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 이 글은 2012년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심층분석 아시아 코너에 게재되었던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