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 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인종과 종족들이 “다양성 속의 통합”을 슬로건으로 한데 어우러져 사는 그야말로 다문화사회의 대표적 사례 국가이다. 다수의 말레이 인종 이외에도 멜라네시아인종, 황인종 그리고 코카시언과의 혼혈인 들이 다양한 언어와 피부색을 가지고 어우러져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이 이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들 인종과 종족 간에는 국가의 중심부와 주변부, 혹은 기득권층과 소외 계층으로 나뉘는 균열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 이러한 균열선은 수하르토 몰락 이후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개혁 과정에서 많이 제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상위 <사진1> 어느 피부관리실의 라마단 금식월 할인 광고. 광고 문구로는 마음을 하얗게 준비하고 라마단 금식월을 맞이하라고 주문하면서, 광고 모델은 검은 피부의 가면을 벗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분야에서의 개선과는 사뭇 다르게 일상의 영역에서는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인종 간의, 그리고 종족 간의 신체적 차이를 정치사회적 차별로 재생산시킬지도 모르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확연히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얀 피부 선호 현상이다. 즉, 밝고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하얀 피부야말로 성공한 자의 표식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흰 피부는 검은 피부보다 훨씬 깨끗하고 매력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백인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주민으로부터,흔히 사요 마땅(sayo matang: 잘 익은 사요 열매)이라고 칭해지는 연한 갈색 피부를 가진 주민, 그리고 검고 짙은 색 피부의 서파푸아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피부색의 주민들이 어우러져 사는 국가에서 이렇게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을 아름답고 성공한 사람이라 여기는 풍조가 만연한 것은 당연히 국가 내부의 인종주의 발생을 경계하게끔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인기 있는 탤런트, 가수, 모델 등의 연예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밝은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과의 혼인은 “자손을 (흰 피부를 갖도록) 개량한다”는 측면에서 선호되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피부색을 보다 하얗게 바꾸고 싶어하는 욕망들에 기대어 화장품 산업과 미용 산업 분야에서 미백사업이 날로 확장일로에 있고 번창하고 있다. 동네마다 있는 작은 미용실로부터 황실 공주의 전래 비법임을 광고하는 고가의 스파(spa) 시설에 이르기까지 미백 관리는 이미 주요 미용 서비스 상품으로 자리잡았으며 피부과 의원까지도 이 대열에 합세하고 있다. 이러한 미백 서비스업자들 중 그 미백 효과가 걸출한 것으로 입소문 난 곳은 인근의 교통을 마비시킬 정도로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자바 섬 중부의 유서 깊은 도시인 족자카르타(Yogyakarta)의 쇼핑 중심가 솔로(solo) 거리에 있는 한 피부관리센터가 바로 그러한 예인데 이 피부관리센터 때문에 이 일대는 늘 교통체증이 심하다. 부유하고 지체 높은 집 사모님들도 이 곳에서만은 대기자들로 붐비는 로비에서 자기 순번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한편 인도네시아 화장품 산업도 흰 피부 선호와 미백 관리 트렌드에 깊이 연루된 채 발전하여 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미백 효과를 강조하는 제품들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는데, 당대 최고의 화장품 브랜드 비바 코스메틱(Viva Kosmetik)은 흰 피부를 이상화하지 않고 제품 개발 전략에 활용하지 않은 까닭에 사세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반면, 흰 피부를 강조하고 미백 효과를 공략한 무스티카 라뚜(Mustika Ratu)와 같은 회사들은 이후 사세를 성공적으로 확장하는 성과를 얻기도 하였던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이제 미백 효과를 강조하지 않는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텔레비전과 각종 인쇄매체들은 연일 미백 관련 상품들에 대한 광고를 뿜어내고 있다. <사진2> 족자카르타 여성들이 선호하는 피부관리센터 London Beauty Center. 이곳의 피부과 의사인 Dr. Fredy Setiawan은 미백 처치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3> 인도네시아 전통 약재인 자무(Jamu)를 현대화하여 만든 미백 제품
그런데 인도네시아인들이 흰 피부를 선호한 것이 과연 언제부터인지에 관해서는 설이 갈린다. 즉 인도로부터 전래는 하였지만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에서 현지화한 전통인 라마야나(Ramayana) 스토리에 따르면 아름다운 여성은 보름달 같이 희고 빛나는 얼굴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인도네시아인들의 흰 피부 선호는 이미 고대로부터 비롯된 셈이다. 그런 반면, 고대 자바(Java)의 시문학인 까까윈(kakawin)에 묘사된 여성의 아름다움은 아직은 흰 피부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이 시기의 여성의 아름다움은 주로 “자연”의 메타포를 이용해서만 아름답다 묘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허리는 아소카(asoka) 나뭇잎 같고, 가슴은 야자열매 같다는 식이다. 그리고 좀 더 후대의 자바 근대 문학 속에서도 여인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하얀 피부색과는 연관되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다운 여인의 피부 빛은 꾸닛(kunyit: 심황)의 연갈색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사진4> 인도네시아의 유명 화가 Ryan Toro가 그린 자바(Java) 섬의 여인
그러던 것이 화란의 식민 지배가 본격화하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백인의 흰 피부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반면 인도네시아인의 어두운 피부는 더럽고 열등한 것으로 묘사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인도네시아 여성 해방의 선구자로 추앙되는 까르띠니(Kartini)는 친구에게 보낸 그녀의 편지에서 “우리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야 백인들의 보드라운 뺨과 부비게 되면 기쁘겠지만, 문제는 그들 백인도 이 더러운 초콜렛 색의 우리 뺨을 접하고 편안하다 느낄 것인지에요”라고 기술한 바 있다. 이러한 자료들에 근거해 보면 인도네시아인의 하얀 피부 선호는 서구세계와 접촉한 이래 생겨난 것으로 추정될 수도 있겠다.
이처럼 인도네시아인들의 흰 피부 선호가 언제부터였는지엔 이견이 있지만, 이미 인도네시아 사회의 일상 속에 서구적 패권질서가 피부색으로 전치되어 등장하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피부색은 계층적 자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현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미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 이 글은 2012년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심층분석 아시아 코너에 게재되었던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