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 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인도네시아의 미인대회가 다른 나라의 미인대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수영복 심사를 생략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타이틀의 미인대회가 여럿 개최되고는 있지만, 이들 대회 모두가 수영복 심사를 생략한다. 2억 5천 만 인구의 거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대다수 국민이 이슬람신자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고,여성이 대중 앞에 몸을 드러내는 일은 동양의 가치에 비추어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것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상위 <사진1> 무슬리마 뷰티 대회 최종 경선에 오른 참가자들).

그러나 수영복 심사 없이 국내 대회에서 선정된 미녀라도 국제 미인대회에 출전할 경우엔 수영복 심사를 피해 갈 수 없는 노릇이다. <뿌뜨리 인도네시아(Puteri Indonesia)> 미인대회에서 왕관을 획득하고, 1996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했던 미녀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그녀는 대회에 출전한 다른 나라 미녀들과 나란히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였다가 그 사진이 국내에 알려져 큰 곤욕을 당한 일이 있었다.여론은 들끓었고 <뿌뜨리 인도네시아> 재단은 이후 2005년까지 국제 미인대회에 대표를 파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1999년까지는 국내대회 개최조차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국내대회 개최가 무산된 것은 당시 인도네시아에 밀어닥친 재정경제위기와 뒤이은 수하르토의 하야 그리고 국내 정치 상황의 악화 등에도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05년부터 미스 유니버스에 다시 출전하게 된 인도네시아 미인 대표는 당시의 국내 여론을 의식한 듯, 비키니 아닌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커다란 쇼올을 둘러 그나마 예의바르고 조심스런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하였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이제 인도네시아 미녀들도 과감해져서 국제대회에서만큼은 숄 없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당당하게 등장하는 추세이다.

수영복 심사가 이슬람적 가치와 동양의 예의범절에 위배되는 관행이고 이러한 미인대회가 서구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를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이식시키는 관행인 것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드디어 이러한 비판을 실천적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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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2011년 무슬리마 뷰티 대회 대상 수상자

즉, 2011년부터 <무슬리마 뷰티(Muslimah Beauty)>라고 명명된, 무슬림 여성의 미를 제시하기 위한 대안적 미인대회가 개최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 대회는 2012년 그 폭을 더욱 넓혀서 내국인으로만 한정시키지 않고 아예 전 세계의 무슬림 여성으로 그 참가자격을 확대하면서 국제대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2012년의 경우엔 인도네시아 여성 이외에도 이집트, 나이지리아, 네덜란드, 독일, 호주,동티모르 등지의 여성들도 참가하였다. 이 미인대회의 참가자격은 나이 18세에서 24세까지, 신장은165cm 이상, 그리고 일상적으로 머리에 히잡을 두르며, 필수적으로 이슬람 경전인 코란 낭송에 능숙한 여성이다. 말하자면, 젊고 예쁠 뿐만 아니라 이슬람적 가치인 샤리아(Syariah) 실천에 앞장서는 모델 여성을 뽑는 행사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흔히 무슬림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처럼, 수동적이고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여성성을 제안하는 행사는 절대 아니다. 이 대회의 참가자격 요건과 선정 기준을 보면, 외국어에 능통할 경우 가산점이 있고, 남 앞에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웅변력 및 대사회 봉사활동 경력 등이 선정 기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회에 응모한 750명의 무슬림 미녀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그 중엔 바느질이나 자원재활용, 노래, 코란낭송 등의 재능뿐 아니라 가라테와 같은 무술이나 하키 경력,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재능을 자랑하는 미녀들도 다수였다. 말하자면, 여성이 히잡을 착용한다는 것이 여성의 활동영역을 제한하는 일이 아님을 이 대회가 오히려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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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무슬리마 뷰티 대회에 참가한 여성이 무대 위에서 코란을 낭송하고 있다.

그리고 <무슬리마 뷰티> 선발 과정도 기존의 서구적 미인대회와는 좀 차별적이다. 우선 참가를 원하는 아가씨들이 자신의 히잡 착용 사진과 코란 낭송 비디오, 그리고 자신의 사회활동 및 히잡 착용 경험담 등을 담은 자기소개 비디오를 온라인 상에 탑재하면, 이에 대해 전문 심사자가 1차 평가를 한 뒤, 1차 예선을 통과한 일정수의 아가씨들을 네티즌들이 온라인 상에서 그리고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이용해 투표한다. 이렇게 하여 결선에 오르게 된 미녀들은 합숙 훈련 과정을 거쳐 드디어는 미인 선발대회를 치르게 된다. 이 행사는 5성급 호텔이나 컨벤션센터와 같은 대형 행사장에서 호화롭게 진행되지만, 당연히 수영복 심사는 없으며 대신 코란 낭송 심사가 있다. 이렇게 하여 최종 선발된 대상수상자에게는 이슬람 성지 순례 기회와 장학금 등이 부상으로 주어지고, 샤리아 산업 부문에서의 모델 활동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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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무슬리마 뷰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인도네시아 국내 최고 무슬림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입고 패션쇼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무슬리마 뷰티> 선발대회는 서구식 미인대회에 대한 대안 미인대회로서 탄생한 것이지만, 샤리아 실천을 화두로 삼는 이슬람 세력들의 열망은 물론, 인도네시아 국가의 경제 개발 전략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2020년까지는 패션, 음식, 금융, 그리고 기초교육 분야에서, 인도네시아를 세계 샤리아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킬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2년 <무슬리마 뷰티> 선발대회와 같은 일정, 같은 장소에서 제3회 세계 샤리아 비즈니스 회의(Muslim World Biz)가 개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회의에는 전세계 이슬람 국가의 사업가, 경영전문가, 광고업자, 은행가, 대중매체 전문가, 그리고 디자이너 등이 한데 모여 이슬람적 창의성을 발휘하여 경제활동을 실천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무슬리마 뷰티> 선발대회가 그러한 논의의 구체적 시험 무대였던 것이다. 무슬림 패션쇼가 이 대회의 한 부분을 장식하였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무슬리마 뷰티> 대회는 샤리아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여성을 뽑고, 이 여성은 또다시 샤리아 산업의 발전을 위한 모델 활동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은 물론 바람직한 이슬람 사회 건설을 위한 역할을 맡도록 기대된다는 것이니, 여성성을 해독하고 실천하는 일은 서구에서나 이슬람 세계에서나 경제활동과 사회질서 유지, 그리고 국가 발전 전망의 주요한 실천 지점이 되는 셈이다.

* 이 글은 2012년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심층분석 아시아 코너에 게재되었던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