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미(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필자가 인도네시아에 살던 10년 전만 하더라도 아직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사도우미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부자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매달 고정 수입이 있는 집들은 당연히 뻠반뚜(pembantu)라고 불리는 입주 가정부 내지는 파출부를 두고 산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중산층 가옥들은 당연히 뻠반뚜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지어진다. 즉, 주인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 뒤로 뒤뜰쯤 되는 곳에 뻠반뚜의 침실과 부엌, 그리고 욕실 겸 화장실이 별도로 마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뻠반뚜가 주인의 일상 공간을 최소한으로만 통과하도록 별도의 쪽문과 통로가 마련된다.

뻠반뚜라는 직업이 워낙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직업이다 보니 뻠반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2004년 ILO가 생산해낸 통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국내에만 2백 60만 명가량의 뻠반뚜가 있다 하고, 혹은 인도네시아의 가사노동자를 위한 시민모임에 의하면 국내 뻠반뚜의 수가 1천 70만 명 이상이라고도 한다. 이들 뻠반뚜는 당연히 추측 가능한 대로, 경제적 착취와 열악한 근무 환경, 성차별 및 물리적, 정신적, 성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노동법에 의해 보장된 주당 40시간 노동이라든지, 휴식 시간 및 휴가 기간 그리고 최저 임금 보장과는 무관한 근무환경 속에서 일한다(상위 <사진1> 2월 15일 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아 일주일에 하루는 가사노동자에게도 휴일이 필요하다는 피켓을 들고 가정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 뻠반뚜들이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 이하이다, 2012년 최저임금이 89만여 루피아로 정해져 있는 지방도시 족자카르타(Yogyakarta) 지역의 경우, 입주 뻠반뚜는 45만에서 60만 루피아(55,000원에서 74,000원) 정도를, 출퇴근하는 경우는 30만에서 45만 루피아(37,000원에서 55,000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는다.그러다 보니 이렇게 적은 임금을 받고 명예롭지 못한 뻠반뚜 타이틀을 얻게 되느니 차라리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혹은 대만 등지로 나가서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이주 가사노동자가 되려 하는 빈민 여성들이 많아 인도네시아 국내에서는 점점 뻠반뚜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인도네시아 출신 뻠반뚜에게 대략 550링깃(대략 220,000원)을 지급하니 국내에서보다 거의 서너 배 높은 임금을 받는 셈이다.

그런데 국외로 이주한 뻠반뚜들은 가족과 국가를 위한 “외화벌이 영웅”으로서 칭송되기도 하지만, 드물지 않게는,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차별 대우와 인권 유린을 당한 끝에 결국은 불구의 몸이 되어 귀국하거나 혹은 고용주를 살해한 죄로 사형을 당하기도 하는 등, 불행의 주인공으로서 주목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비공식 부문 사적 영역에 종사하는 그들의 직업 특성상 뻠반뚜는 자국 내외에서 끊임없이 인권 이슈들을 생산해낸다.

그러나 뻠반뚜들의 인권 이슈에 가려서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도네시아 중산층의 여성들이 전하는 뻠반뚜 스토리들은 나름대로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을 다각적으로 들여다 보게 하는 면이 있어 필자에게는 또 다른 주목거리가 되고 있다. 즉, 필자도 인도네시아 거주 기간 내내 고민한 바 있듯이, 뻠반뚜는 없으면 궁하고 있으면 번거로운 존재들이라는 것이 그 포인트인데, 이 이야기 속에는 기층민들을 “고용주가 어르고 타이르며 부려야 할 허드렛일꾼과 같은 존재이며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게 당연한 학생과 같은 존재”로 정의하고, 통치의 대상이되 지배 계층의 인내와 관심을 필요로 하는 통치의 대상인 것으로 간주하는 인도네시아 엘리트 계층의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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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육아훈련을 받는 아가씨들

즉, 저렴한 임금으로 뻠반뚜를 몇 명씩 고용한 중산층 사모님을 보면 부러워할 사람들도 많겠으나, 실은 그것은 사모님 입장에서 보면 재정 이외의 측면에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지난한 일이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들을 집에 남겨두고 인근 시골 마을들을 돌면서 현지조사를 해야 했던 필자는 아들에게 위생적인 음식을 제공하고 안전하게 돌봐줄 마음 착한 뻠반뚜를 두는 것이 학업의 선결과제였다. 그래서 도시물이 들지 않은 순박한 처녀를 구하기 위해 두어 달 동안 인근 시골을 돌아다니며 처녀들을 물색했다. 기사가 딸린 자가용으로 사모님인 필자가 직접 가서 면접해 아가씨를 데려오면, 그 다음부터의 일주일은 그 처녀에게 도시 엘리트 주택단지의 살림을 가르치느라고 바쁜 한 주가 된다.

우선 집에 데려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화장실 사용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처녀의 마을에는 화장실 없는 집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런 아가씨들에겐 볼일을 본 후 바가지로 여러 번 물을 부어 용변을 내려보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절대 물을 아낀다고 한두 번만 물을 부어선 안된다고 일러주어야 한다. 물이 귀한 지역에서 데려온 아가씨들은 한 바가지의 물이라도 귀히 여겨 아껴쓰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다. 또 변기는 일주일에 한번은 수세미로 쓱쓱 문질러 닦아야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가르치기 위해 사모님이 직접 맨손으로 수세미를 들고 변기 닦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화장실을 사용해 본 적 없는 시골 처녀에게 용변이 직접 닿았던 물건을 손으로 닦으라고 하면 혹여 모욕이라 느낄까 염려하여 사모님이 솔선수범 그런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고, 또한 하얀색 변기의 재질이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혹여 흠이 갈까 살살 닦는 아가씨들이 있기에, 변기의 재질이 매우 견고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사모님은 변기를 힘주어 쓱쓱 문지르는 시범을 보일 수밖에 없다.

화장실 사용 및 청소에 관한 교육을 하고 나면 뭔가를 좀 먹어야 할 시간이 된다. 필자는 가스렌지가 얼마나 쉽게 불을 지피고 불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라면을 끓여 아가씨에게 제공한다. 장작만 때서 음식을 해보았던 아가씨는 경이로운 눈초리로 그 편리함에 경탄하지만 필자는 알고 있다, 이 라면을 먹고 나서 필자가 가스누출과 폭발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면 아가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리라는 것을. LPG 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우니 가스 냄새가 탐지되면 바로 문을 열고 비로 먼지를 쓸듯 쓸어 내보내면 된다고, 그런데 그러기 전에는 절대 전기 스위치를 만지면 안 된다고 설명해 보았자 아가씨의 공포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서 아직 하루해가 지지 않았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아가씨를 미장원에 보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주는 일이다. 인도네시아의 시골처녀들은 긴 머리카락이야말로 여성성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골처녀들의 머리는 짧다 해도 항상 어깨를 덮는 길이인데, 문제는 이 긴 머리를 자주 감아주고 관리를 하지 않은 까닭에 머릿니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도시의 위생 표준에 맞도록 이 사모님은 아가씨가 헤어커트를 하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이것은 아가씨를 십중팔구 울리는 일이 된다. 남의 뻠반뚜가 되려 하니 이제 자기는 더 이상 여성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에이구…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착한 자바의 아가씨들은 자신의 머리에 이가 있음을 시인하고 기사 딸린 자가용에 실려 미장원에 다녀온다. 이 때 운전기사는 동네 약국에서 머릿니 없애는 약을 사오는데 그날 밤 필자는 아가씨에게 머리를 감겨 손수 머릿니 약을 그녀의 머리에 발라주어야 한다.

이렇게 번잡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다음날부터는 아주 소소한 집안일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뻠반뚜로 남의 집살이를 하는 처녀의 시골집은 바닥이 주로 흙바닥이거나 잘해야 시멘트가 발라진 그런 집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시골집에서 바닥 청소란 비질을 한다 해도 굴러다니는 큰 쓰레기를 쓸어다 버리는 수준이지, 거실 바닥의 미세한 먼지까지도 닦아내야 하는 도시 엘리트 가옥의 청소랑은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무엇이 더러움인가를 인지시키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외에도 채소를 씻고 다듬는 법, 상차리는 법, 집으로 찾아온 낯선 사람 응대법, 전화 받는 법, 그리고 가전제품 사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똑똑한 아가씨들도 이 모두를 습득하는데 열흘은 걸린다. 그리고 그 모든 교습은 고용주가 인내를 가지고 반복해서 가르쳐주어야 한다.이 모든 지난한 교습과정을 고용주가 인내하는 까닭은 가사 도우미가 정말 필요한 탓이지만 이러한 기대는 주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필자의 경우,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과 살림을 뻠반뚜에게 모두 맡기고 공부에만 열중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7주 동안 4명의 시골처녀들을 번갈아 데려다 앞에 기술한 인내심을 요하는 교습들을 다 해 보았었지만, 그녀들은 고작해야 열흘 정도 머물다가는 심심하다는 이유로 모두 귀향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돌아갈 때의 귀향 경비는 고용주의 몫이고 필자의 경우는 자가용으로 고향 마을까지 바래다 주었다. 심심하다는 것이 워낙 자주 언급되는 귀향의 사유가 되는지라 인도네시아의 뻠반뚜 고용주들은 뻠반뚜들이 좀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심심하지 않도록, 두 명의 뻠반뚜를 한꺼번에 구하는 경우도 많다. 정말 인도네시아의 사모님들 입장에서 보면, 뻠반뚜란 없으면 궁하고 있으면 번거로운 존재들이며 가르친 보람이 보장되지 않는, 고용주의 시간과 노력을 흡입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필자는 워낙 중산층 사모님의 입장에서 뻠반뚜들을 경험해 왔던지라, 뻠반뚜들에 대한 인권유린 사례가 보도되거나 하면, 마치 먼나라의 일만 같다. 상식이 있는 인도네시아의 일반 가정에서라면 뻠반뚜들은 비록 허드렛일을 하는 아랫사람일망정 고용주가 인내와 관심을 가지고 타이르고 가르치며 부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2012년 서남포럼 뉴스레터의 심층분석 아시아 코너에 게재되었던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