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동남아센터 선임연구원)

내가 당둣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6년 8월 즈음이다. 그해 난 인도네시아 국립대학(Universitas Indonesia) 인문학부에서 운영하는 인도네시아 언어 연수프로그램을 다니느라, 대학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인도네시아 말을 배우기 위해 장기 체류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와중이라서 모든 것이 낯설고, 특히 이슬람 문화권이기에 왠지 경직되어 있을 것이라는 편견도 갖고 있었던 때이기도 하다.그런데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자취방으로 생생하게 들려오는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소리는 이방인의 귀를 자극하였고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내가 머물렀던 꼬스(Kost: 인도네시아 자취방)는 넓진 않지만 약간 큰 공터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밴드가 연주를 하고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밴드 앞에서 흐느적 흐느적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난 너무 신기했다. 특별히 대단한 무대로 꾸며진 것도 아닌데,그리고 더욱 흥미로왔던 것은 술도 먹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흥겹게 부르는 가수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춤은 동작이 혈란하거나 크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몸을 흔들흔들 거리고 있었는데, 어떤 측면에서 보기엔 너무나 섹시한 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인 인도네시아가 참으로 건조하고 경직될 것이라는 나의 편견은 도착한지 한 달 안에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의 풍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가요라고 불리워지는 트로트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음악장르로서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자기 선호를 분명히 밝히는 사람은 적을지라도, 노래방에 가면 한 두 곡의 트로트는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 대중의 삶에 녹아 있는 당둣을 처음 접해본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몇 년 이후 동남아의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인도네시아 당둣을 한국에 소개하는 계기에 당둣을 좀 더 이론적으로 알게 되면서 당둣이 인도네시아를 포함하여 참으로 동남아적인 음악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남아의 문화적 특성이란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외래문화의 적극적인 수용과 토착문화와의 융합의 결과로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적 형태를 창출하였다는 점이다. 일찍이 동남아 문화는 인도, 중국, 아랍, 유럽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특한 자기문화를 만들어왔는데, 당둣이라는 음악장르에도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당둣 음악장르는 1940년대 물라유 음악(Melayu musik)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 물라유 음악이라고 한다면, 인도네시아 전 지역에서 나타나는 민속음악적 요소이다. 순다족의 자이뽕안(Jaipongan), 찌레본 지역의 따르링(Tarling), 솔로지역의 끄롱쫑(Kerongcong) 등이다. 이러한 형태의 음악은 현재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연주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서구 음악에 영향을 받으면서, 현대 당둣을 보았을 때 물라유적 색채가 매우 약화된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도네시아 당둣은 인도네시아 민속음악적 요소인 물라유 음악기반에다가 ‘당둣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인도음악과 아랍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새롭게 태어난 음악적 장르를 말할 수 있고, 현대적으로는 서양음악의 팝적 요소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 역사적 변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49년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인도네시아 국가는 수까르노(Sukarno)를 초대대통령으로 두고 있다. 수까르노 대통령은 반서방정책 외교노선을 수립했었고, 그래서 서구보단 동양에서 특히 인도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러한 기초 하에 영화계 또한 발전시켰다. 당둣에서 나타난 인도 음악적 요소인 근당(Gendang) 혹은 따불라(Tabla)라고 불리는 북소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당둣이라는 이름의 기원도 북을 칠 때 나는 소리인 당(dang~), 둣(ndut~)에서 유래되었다고 일컬어진다. 또한 당둣에 나타난 아랍적 요소는 보컬에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하자면, 아랍의 종교적인 성가인 카시다(Kasidah)에 나타난는 ‘꺽는 음’이 당둣 보컬의 기본이다. 한국의 대중가요 중에서도 전통가요인 트로트에서도 얼마나 소리를 ‘꺽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면, 당둣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아라비아 현악기인 감부스(Gambus)의 영향이다. 그래서 1950~60년대 당둣을 보면, 인도네시아 전통악기인 피리 즉 술링(Suling), 근당, 감부스 세 악기와 보컬로 구성되는 단조로운 형태의 당둣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람리(P. Ramlee)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현대적인 당둣의 형태를 갖는 것이 1970년대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에는 정치적 변화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 수까르노를 이어 1965년부터 32년간 집권한 수하르또(Soeharto)는 수카르노와는 달리 친서방적인 외교노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왜냐하면 경제개발을 위해 서방과의 조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보다는 서양, 중국보다는 미국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 서구음악이 영향을 주면서 전자기타, 신디사이져, 트럼펫, 섹스폰, 오보에, 만돌린 등이 결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현대 당둣 밴드는 전통적인 오르케스 물라유(Orkes Melayu)에 기원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악기에다 현대적인 서양악기들이 결합하면서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현대적인 서양악기가 멜로디에 중심을 이루면서, 물라유적 요소가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충분히 가능하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흐름에 가장 대표적인 가수가 이라마(Rhoma Irama)이다. 이라마는 당둣의 아버지격이라고 불릴만큼 당둣을 대중화시키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하였고, – 한국 트로트계의 남진과 나훈아 격이라고 볼 수 있음- 특히 이라마는 당둣 기사에 이슬람적 내용을 가미했기에 당둣을 대중화하는데 특별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당둣과 이슬람을 결합하여 당둣을 대중화한 가수 아리마가 작년 2013년에 곤두박질치고 있는 어느 이슬람 정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대통령 후보로 회자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 스캔들 자체는 그의 대중적 위력을 반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라마의 대중성은 작년 2013년 년말 자카르타 축제에서 조꼬위 자카르타 주지사와의 듀엣무대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이라마의 영향력은 현재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도 조금 언급했던 당둣이라는 음악장르에 결합된 춤이다.이 춤을 인도네시아 말로 조겟(joget)이라고 하고, 다른 표현으로는 몸을 흐느적 흐느적 거린다는 인도네시아 말인 고양(goya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동작이기 때문에 goyang-goyang으로 불리워진다. 이 춤은 적도의 더위 속에서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쉽게 탈진되는 것을 방지하기라도 하듯, 적당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춤이다. 그러나 이러한 춤을 극대화한 가수가 이눌(Inul Daratista)이다. 이눌의 당둣은 매우 섹시하고 현란한 춤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활동한 이눌의 당둣은 당둣을 이웃국가에 파급시키는 역할도 하였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단체에게는 반대여론을 형성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하였다. 이눌의 춤은 당둣 가수인 이라마에게도 쓴 소리를 들었다. 몸을 흐느적 거리는 조겟 춤이, 극단적으로 현란화하게 몸을 흔드는 현상이 이눌에게 나타난 것이다. 이눌은 2003년 자카르타 콘서트 이후 전국적으로 유명한 가수가 되었고, 그로부터 그녀는 Goyang Inul이라 불리워졌고, 그녀의 춤은 Goyang ngebor 라는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되었다. 즉, 몸 전체를 드릴처럼 흔들어낸다-drilling-는 인도네시아식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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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Goyang gergaji, Goyang patah-patah 등과 같은 이름이 붙혀진 춤이 등장한다. 전자는 몸의 흔들림이 얇은 톱이 춤을 추듯, 좌우· 위아래로 자연스럽게 흔드는 것과 같고, 후자는 몸의 마디마디가 끊기듯이 유연하게 추는 춤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당둣 가수 중에서 가장 핫한 가수 중의 하나는 데위(Dewi Perssik)이다. 그녀의 몸매는 데뷔당시부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녀의 섹시한 몸을 이용한 조겟춤은 Goyang gergaji 춤의 대표주자인 것이다. 이러한 춤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털기춤, 파도춤, 엉덩이 춤 등등 다양한 섹시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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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피츠버그 대학교 음악교수인 앤드류(Andrew N. Weintraub)는 Dangdut Stories: A Social and Musical History of Indonesia’s Most Popular Music 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당둣이 매우 대중적이지만, 세계적으로 아직 주목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둣의 보컬 스타일, 멜로디, 리듬, 하모니, 음악형태, 노래가사 등은 인도네시아 문화의 실체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둣이 인도네시아의 실체라는 이유는 앞에서도 부분적으로 설명했듯이 당둣이라는 음악장르 속에 인도네시아 정치,경제, 이데올로기, 사회문화적 형태와 역사가 잘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 당둣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측면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당둣이라는 장르는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여러 종족 중에서 특정한 종족에 기초한 장르가 아니고 오히려 모든 종족적 지역적 정체성을 연결시키는데 역할을 해오면서, 적게는 350개 많게는 500여개의 종족(ethnic)을 인도네시아 민족(nation)으로 구성하는데 현격한 공헌을 해온 음악장르라는 점이다. 즉, 종족적 정체성을 넘어서, 인도네시아 민족정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당둣이라는 음악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는 측면이다.

여러 논쟁과 갈등 속에서도 인도네시아 대중 사회 속에서 당둣의 역사는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라마는 저작권 논쟁에 중심에 있었고, 이슬람 사회 안에서 이눌의 춤은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족자카르타에서 무함마드 탄신일 축제에서 당둣 공연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당둣의 왕, 이라마가 2013년 대통령 후보로 회자되면서 다시 불을 지피기도 하였다. 분명 인도네시아 대중의 삶에 당둣은 녹아있다. 인도네시아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대중매체에서 주요하게 구성, 제작되는 것도 당둣 관련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당둣 가수층은 매우 두텁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당둣 가수 지망생도 많다. 그리고 남녀노소 모두 즐겨듣고 좋아하는 것이 당둣이다. 그러나 식자층은 당둣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느껴진다. 내가 만난 지식인 중에서 내가 당둣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당둣은 저소득층의 사람이 좋아하는 장르라고 단호히 말하는 사람들도 만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낀 인도네시아 속의 당둣은 서민들의 희노애락,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음악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정이 간다. 인도네시아에서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해 금요일 저녁부터 자카르타 시내는 교통체증으로 꽉꽉 막힌다. 이럴 때마나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는 크고 작은 축제에서 여지없이 빠지지 않는 것이 당둣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밤거리를 달리는 많은 연인들 가운데는 당둣이 흐르는 그 어느 곳으로 오늘도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