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과정, 동남아센터 조교)
작년에 이어 제2회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주간(Pekan Literasi Asia Africa, PLAA)이 2월 14일-16일, 사흘간 반둥의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박물관(Museum Konfrensi Asia Afrika)에서 열렸다. 인도네시아 한류에 관한 현지조사차 반둥에 머물고 있는 나는 이번 문학주간 내 한국 전시관에서 이틀간 ‘알바’를 하게 되었다. 뜻밖의 용돈 벌이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한국에 대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 정도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겠다는 사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주간의 내용과 의미를 소개하고 본인이 직접 참여하며 가진 생각을 간단히 전해보고자 한다 (상위 그림1.문학주간 포스터).
우선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박물관(이하 박물관)에서 문학주간을 개최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재편되어갔다. 그러나 이 흐름에 반발했던 아시아 아프리카의 29개 신생 독립 국가들은 1955년 4월 반둥에 모여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그리고 중립주의 및 협력 등의 내용을 합의한 ‘반둥 10원칙’을 선언하였다. 이를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또는 반둥 회의라고 한다.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와 참가국 지도자들은 반둥 회의의 정신을 보존하고 기념하기 위해 1980년 회의 장소였던 그둥 머르데까(Gedung Merdeka) 내에 박물관을 설립하게 된다.
문학주간은 박물관이 친선국(Negara Sahabat)으로부터 기증받은 각국의 외교, 정치, 역사 관련 도서들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함양하고 우수한 도서를 읽는 기회와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독서 문화를 증진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 평화와 협력의 역사를 주조시킨 반둥의 상징성과 그 부산물인 도서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한 것이다. 문학주간 총책임자인 Pak Deddy와 직접 나눈 대화에 의하면 현재 박물관 수장고에는 소장 가치가 높은 원서들을 비롯하여 13,000여 권 이상의 도서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이 박물관이 반둥을 인도네시아의 도서 산업과 독서 문화 중심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이며 문학주간은 그 초석을 놓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책 읽는 국민으로(Menjadi Bangsa Pembaca)”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있는 이번 문학주간 행사는 그의 말처럼 단순히 수장고의 도서들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출판사, 신진작가, 그리고 번역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홍보 부스를 마련하고 유명 작가를 초청한 세미나 및 토론회를 열어 도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폭넓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 대학생 자원활동가를 활용하여 어린이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구연동화를 선보이고,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점자책 홍보와 체험 행사를 마련하는 등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Pak Deddy는 앞으로 박물관이 반둥 시청과 협력하여 움직이는 도서관(Perpustakaan bergerak), 독서 공원(Taman bacaan)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 말하면서 그 이유를 국민 의식(Pola pikir)을 변화시키는데 책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2> 한국전시관 전경
<사진3> 한국 책을 읽는 학생들
반둥 회의 참가국이 아니었던 한국이 이 박물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문화원과 한인포스트의 지원으로 준비된 이번 전시 행사는 문학 주간 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준비되었고 하루 최소 1-2백여 명의 방문객이 관람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전시관은 입구 앞쪽에 설치한 디지털 TV로K-pop과 한국 관련 볼거리를 상영하고 공간을 넓고 쾌적하게 구성하여 방문객들이 쉽게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는 한국의 근대 문학 및 아동용 그림책을 아우르는 문학 도서에서 한국의 음식, 언어, 패션, 관광 등 한류 컨텐츠를 이용한 문헌 자료 등을 통해 한국에 관한 폭넓고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건 도서 대부분이 한국어-인도네시아어, 혹은 영어-인도네시아어로 동시 표기 되어 있었고,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전래 동화를 함께 수록한 책도 있어서 책을 통해 양국의 문화와 역사를 서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었다. 전시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탁자와 바닥에 앉아 몇 시간씩 읽었던 책들도 대부분 이런 종류였다.
<사진4> 한 인도네시아 관람객이 한국부스에 남긴 메시지
한국 전시관 관람을 목적으로 문학 주간을 방문한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반둥의 대학생이었는데 K-pop이나 드라마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를 먼저 접한 후 한국이라는 나라로 그 관심을 확장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반둥에서는 한국에 관한 정보를 얻거나 한국어 등을 배울 기회가 아직 적어서 이들에게 한국 전시관 방문은 특별한 경험이었고 또 나 같은 한국인과 나누는 몇 마디 대화도 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이 되는 것 같았다.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한국어 공부 및 한국 유학과 관련된 정보였다. 많은 학생들이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거나 유학을 희망하였는데,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행히 한국 유학 경험이 있던 인도네시아인 알바생 한 명이 이와 관련된 민원과 고민상담을 담당해주었다. 이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점은 책 종류가 너무 적고 그 조차 얻거나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전 문학과 전래 동화 이야기 등을 담은 문학류 서적보다 한류 컨텐츠를 소재로 한 내용의 자료집의 수가 훨씬 많았고, 이마저도 대부분 전시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관한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을 찾길 바랬던 방문객의 기대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이는 한국 문학이나 역사서 등 보다 수준높은 한국 도서를 필요로 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수요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번 박물관 문학주간의 의미가 큰 이유는 단순히 수장고의 책들을 전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반둥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성격이 가진 문화적 자산을 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대중과 함께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둥의 지역성(locality)은 바로 세계성(Globality)이다. 전시장과 그 곳의 책들은 이를 배우고 경험하는데 최적화된 장소였다. 책 읽는 도시 반둥을 상상하면서 앞으로 지속될 박물관 사업을 응원하고 한국 도서의 번역과 보급 상황도 향상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