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철(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2월 7일부터 11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다녀왔다. ‘동남아시아’에 속한 곳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름에 좀 더 길게 현장연구를 하러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익숙함이라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8월의 타이베이와 상하이를 경험했던 적이 몇 번 있으니 더위는 그리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가본 곳인 만큼 낯설음은 막을 수 없었다. 가기 전에 들었던 것처럼, 영국과 얽힌 과거의 흔적은 자동차의 운전석 위치, 콘센트의 모양 등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알고 간 것이라 할지라도 현지에서 체감하는 낯설음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요소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이 가장 낯설었다. 숙소 한 쪽에 메카의 방향을 표시한 것이라든지, 쇼핑몰이든 길가의 휴게소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기도실 등은 분명 처음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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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숙소 천정에 표시된 메카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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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쇼핑몰에 있는 기도실 안내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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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이슬람 문양 그리는 방식(이슬람예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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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말라카의 해상 모스크

20150406153732_83690레이시아 화인(华人)들의 소비에 대해 연구를 하기로 했으니 중국과 관련된 요소들을 찾아내고 그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했다. 중국 혹은 화인과 관련된 요소들을 찾는 것은 이슬람의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시 어렵지 않았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10명 중 4-5명은 화인일 것이라는 통계학적 정보는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실이 되었다.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모든’ 쇼핑몰의 정문들은 곧 다가올 음력설, 즉 춘제(春节)를 기념하는 장식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중국 상하이의 백화점과 위위안(豫园) 주변에서 봤던 화려한 붉은색 장식들과 비슷한 것을 그곳으로부터 비행기로 4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보는 것은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익숙함이었다. 이런 장식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장식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화인이거나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사진 5 ~ 7> 쇼핑몰들의 춘절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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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말레이시아에 화인들이 정착한 것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작심하고 다니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역사적 흔적을 두루 훑어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텐데 일부러 찾아 다니지 않아도 오래 전 바다를 건너 이곳에 정착한 중국인들의 자취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진씨서원(陳氏書院) 이나,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불교사원으로 알려진 말라카의 청운정(靑雲亭)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진씨서원은 말레이시아에서 주석 광산을 운영하며 재력가로 성장한 진씨 가문의 조상을 기리는 곳이며 청운정은 15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사원으로 청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축,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원의 지붕 장식은 중국 광동의 방식과 유사하게 자기에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었는데 비가 많이 오고 더운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진 8> 한 쇼핑몰의 중국 전자 제품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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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쿠알라룸푸르 진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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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말라카 청운정의 지붕장식

20150406153939_99626지막으로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이곳에서는 맞지 않았다. 화인들이 모여 살며 자신들의 상품이나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차이나타운의 정형화된 이미지와 달리 쿠알라룸프르 Jalan Petaling의 차이나타운은 상하이의 옛 샹양시장과 같이 중국산 모조품(“짝퉁”)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고 상당히 많은 상점들은 인도계 점원들을 내세워 판매를 하고 있었다. 화인들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마주칠 수 있는 확률은 차이나타운 바깥이 오히려 더 높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은 화인들이 모이고 자신들의 상상된 과거를 추억하는 곳이 아니라 관광객을 대상으로 값싼 물건들을 파는 곳, 화인과 다른 종족 집단과의 계층/계급적 관계들이 명확하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나는 곳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나타운을 둘러보면서 말레이시아의 화인들과 관련하여 다양한 요소들을 검토하고 이를 다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진 11> 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의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