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혁(동남아센터 선임연구원)

인도네시아는 세계 인구 4위의 동남아 최대의 인구 대국이다. 거대한 인구로 인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구증가는 경제성장의 중요한 잠재력이다. 매년 싱가포르 인구와 맞먹는 수가 출생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인도네시아는 매년 새로운 싱가포르를 낳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 경제적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를 묘사할 때 꼭 등장하는 단어가 ‘중산층’이다. 인도네시아는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국민의 평균 연령이 29세인 젊은 신흥국이다. 2014년 기준 맥킨지(McKinsey) 보고서는 인도네시아 중산층을 4천 5백만 명, 보스톤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은 7천 4백만 명, 그리고 아시아 개발 은행(Asian Development Bank)은 총 인구의 59%를 차지하는 1억 4천 6백만 명을 중산층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중산층이 누구인지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산층으로 간주되는 인구의 편차도 매우 크다. 선진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중산층의 개념과 인도네시아에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경제 상황을 장밋빛으로 묘사하고 있는 조사기관의 중산층의 개념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현지조사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마치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과 소득의 불균등한 분배, 즉 부익부 빈익빈이 매우 심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까르따에는 꼬따 쇼핑몰(kota shopping mall), 즉 쇼핑몰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대규모 쇼핑몰이 있다. 점심시간에는 쇼핑몰 안에 위치한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상류층 사람들과 푸드 코트에서 식사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스펙트럼의 다른 한편에서는 까끼 리마(kaki lima)라고 불리는 손수레와 유사한 간이식당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인도네시아 말로 ‘까끼(kaki)’는 다리라는 뜻이고 ‘리마(lim)’는 다섯이라는 숫자를 의미한다. 바퀴가 세 개인 수레와 수레를 끄는 장사꾼의 두 다리를 합쳐서 다섯 개의 다리라는 의미로 까끼 리마라고 부른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자까르따 시내의 도로에는 엄청난 가격의 고급세단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더 엄청난 수의 오토바이가 혼재되어 있다. 한 오토바이에 일가족 네 명이 타고 가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오토바이 탑승자들의 상당수는 앞에서 언급한 조사기관의 중산층에 포함된다.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나’ 개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어다. 지금은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가정 소득조사를 실시했고, 설문지에는 부모님의 소득을 상, 중, 하로 구분하는 칸이 있었다. 한참을 고민한 나는 ‘하’에다 표시를 했다. 그리고 약 한달 후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부모의 소득란에 ‘하’라고 표시한 전교에서 유일한 학생이며 그 이유로 상공회의소 장학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통보가 있은 후 대략 일주일가량 지나서 난 상공회의소 회장님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회장님은 내가 인생을 살다 힘들 때 장학증서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면 한 번 더 동일한 금액의 장학금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격려해 주셨다. 결코 윤택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굴곡 있는 삶을 산 것도 아닌 나에게 장학증서를 가지고 그 회장님을 다시 찾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누가 중산층인가?’ 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소비문화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중산층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 이전부터 과연 인도네시아의 중산층은 누구인가? 라는 고민을 시작해서 현지조사가 끝나는 시점까지 숙제로 간직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2010년부터 거의 매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나는 두 명의 친한 현지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2003년 뉴질랜드에서 만난 화인(현지에서 태어난 화교)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2010년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친구다. 두 명 모두 인도네시아 평균 연령에 해당하는 30대 초반, 20대 후반이다. 지난 5년 동안 화인 친구는 일본회사의 작은 승용차를 구입했고, 다른 친구는 일본회사의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화인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주로 승용차를 타고 유명 쇼핑몰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거나 프리미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곤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앉아서 적도의 뜨거운 태양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그리고 수없이 많은 오토바이가 뿜어내는 매연에 휩싸여 교통 체증으로 멈춰서 있는 고급 승용차 사이를 헤집고 달린다. 그리고 주로 현지인들이 찾는 식당 혹은 편의점에 앉아 음료수 하나를 두고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승용차에 앉아 있을 때보다 오토바이 뒷자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교통 체증으로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상류층의 고급 자동차를 뒤로 하고 서민들의 오토바이가 신나게 달릴 때 나도 모르게 쾌감을 느낀다.

지난 5년 동안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변신한 두 친구는 모두 넓은 의미의 중산층에 속한다. 중산층은 정의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한국에서 오랜 세월 ‘내가 과연 중산층에 속하는가?’ 라고 고민하고 있는 나이지만 인도네시아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중산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중산층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서 마음에서 오는 여유가 아닐까라는 혼자만의 상념에 잠겨본다. 어찌되었던 인도네시아에 구매력을 갖춘 젊은 세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