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정(동남아센터 연구조교)

캄보디아를 처음 만난 지는 2년이 다 되어 가고 어느새 4번째 방문이 되었다. 그동안 아주 잠깐 방문했었던 도시들을 제외하면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캄보디아 제 2의 도시라고 하는 바탐방에 각각 몇 주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수도인 프놈펜은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현지조사 겸 개인적인 일정으로 프놈펜에 꽤 오랜 기간 체류하게 되었다.

현지조사를 준비하며 캄보디아 친구들에게 프놈펜에 머무르게 될 예정이라고 하니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치안에 대한 얘기를 하며 안전에 유의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이제는 캄보디아를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해왔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현지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막상 프놈펜에서 지내다 보니 치안보다도 도로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이 훨씬 컸다. 심지어는 캄보디아를 정말 좋아하지만 다른 지역은 몰라도 프놈펜에는 별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행을 다니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의 경우에 한국에서나 해외에서나 내 스스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생활 반경이 삶에 대한 만족도를 상당히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선호하는 이동 방식은 원하는 대로 다닐 수 있는 걷기와 자전거타기이다. 당연히 프놈펜에서도 둘 다 시도해보았다. 직접 걸으니 인도가 군데군데 끊겨 있고 또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보행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도로 시스템을 느끼며 정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것은 곧 바뀔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덥다. 기온 자체도 높지만 그것과 별개로 강렬한 태양 아래 두 발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그리고 자전거는, 더운 것도 더운 거지만 그냥 위험하다. 사실 이전의 캄보디아에서는 걷는 것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도 그저 즐거운 일이었고 위와 같은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는데 내 입장이 변한 것이다. 한참을 체류하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고생스럽게 여행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한 평생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찌 감히 걷기를, 자전거를 권할 수 있으랴.

<힘든 도보 여행을 함께 해 준 길거리 노점표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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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그렇지만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그 어느 곳보다도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운전을 하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우선 차량 폭이 완전히 다른 자전거, 오토바이, 툭툭, 자가용, 버스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어서 혼잡하다. 특히 수도인 프놈펜은 인구도 많고, 경제적 수준이 높고, 외국인 비율도 높아서 자가용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그로 인해 교통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교통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신호가 없는 사거리에는 차량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단속이 강하지 않아 불법 유턴이나 역주행을 하는 차량도 쉽게 볼 수 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낮에는 심한 정체로 인해 차량 속도 자체가 느려서 사고가 많지 않지만 밤엔 과속, 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사고가 많다고, 그러니까 밤에는 오토바이는 절대 타지 말고 툭툭도 가능하면 타지 말라고 한다.

<자동차와 매연을 뚫고 나가는 툭툭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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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호텔 앞에 있던 예쁜 툭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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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오토바이는 저렴하지만 덥고 위험하다. 툭툭은 덥고 흥정을 해야한다. 일반 택시는 안전하고 시원하지만 마찬가지로 흥정을 해야하고 비싸다. 흥정이 필요 없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터 택시가 도입되었지만 러시아워에 타게 되면 요금 폭탄을 각오해야 한다. 다른 대안은 없을까 검색하다가 2014년 10월 JICA의 지원을 받아 프놈펜에 첫 공공 버스 서비스가 도입된 것을 알게 되었다. 훈센 총리가 ‘차량 30만대, 오토바이 1백만대가 프놈펜시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버스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2020년까지 프놈펜에 버스 노선이 18개까지 확장될 것을 기대하며 정부에 버스 사업 관리 당국이 빠르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니 총리가 버스 서비스 도입에 꽤 적극적인 것 같다.

<프놈펜 공공버스 외관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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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좌) Wikipedia ‘Transport in Phnom Penh’, (우)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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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정류장>            출처: 직접촬영

방콕 여행시 방콕의 공공 버스를 매일같이 즐겁게, 또 저렴하게 이용하고 다녔던 기억이 떠올리며 프놈펜의 공공 버스에도 도전을 해보았다. 첫 번째 난관은 버스 정류장을 찾는 것이었다. 때로는 우리나라 버스 정류장 같이 의자와 지붕이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작은 표지판이 전부였다. 한 번은 표지판을 찾지 못해서 두 정류장이나 걸어간 적도 있었다. 배차 간격은 그리 길지 않고 꽤 잘 지켜지고 있는 듯 하다. 일단 버스를 타고 나면 아직은 이용객도 많지 않고 추울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와 프놈펜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한숨 돌리기에는 합격이다. 요금도 이동 거리에 관계없이 편도 1500리엘(1달러=약 4000리엘)로 아주 저렴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버스 내부에 영어는 물론 현지어로 된 노선도도 없다.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 버스이기 때문에 익숙한 한국 노선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내리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버스 기사, 표를 나눠주는 승무원, 혹은 주변의 다른 승객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거의 문제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캄보디아인의 친절함을 경험하는 것이 덤으로 따라온다. 여차하면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다가 적당히 내리면 그만이다.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경험이었고 계획대로 운영이 잘 된다면 프놈펜의 혼잡한 도로를 개선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안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은 버스 노선이 3개에 불과하고 대로로만 운행이 되기 때문에 서민들이 이용하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대로변에는 가게나 사무실 건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하려면 정류장까지 땡볕 아래를 걸어오고 또 내려서도 목적지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도로의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노선 확장 뿐 아니라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 오토바이를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토바이의 편리성을 어떻게 대체하여 이들이 버스를 타게끔 할 것 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다. 또 다른 면에서는 버스의 대체제인 오토바이, 툭툭, 택시 기사들에 대한 고려, 그들과의 소통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오토바이와 툭툭 기사들이 모여 있던 한 버스 정류장에서 기사들이 버스를 타려는 내게 왜 버스를 타느냐며 자기 것을 타라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서 그들 가운데 있는 위기 의식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터 툭툭, 아주 저렴하고 와이파이도 쓸 수 있지만 크메르어를 전혀 모른다면 이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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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아무튼 해외에서 바가지를 쓸 수 밖에 없는 운명인 외국인으로서 캄보디아에 미터 택시, 미터 툭툭, 공공 버스 등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저렴한 교통 수단이 도입되고 있다는 소식은 참 반갑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평생을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프놈펜 시민, 캄보디아 국민들이 가장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혜로운 방식의 발전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