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드 몽니로 한국 화장품 기업의 리스크 관리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이 차지하는 한국의 화장품 수출 의존도는 전체의 약 70% 수준. 업계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수출 편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포스트 차이나(Post-China)’를 개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조선비즈는 한류와 맞물려 한국 화장품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인구 6억명 규모의 아세안(ASEAN) 시장에 대해 알아봤다. [편집자주]

화장품 수출 중국이 67%?… 아세아 국가 빠른 성장에 주목해야

히잡 두른 동남아 소녀들, 명동 화장품 매장 앞에서 앞다퉈 인증샷

샤넬보다 한국 화장품이 낫다? 한국의 뷰티 모델에 열광

하얀 피부가 미인의 조건, 피부색 밝게 하는 제품 인기

스타일난다의 3번째 플래그십 스토어인 명동 ‘핑크호텔’/사진=배정원 기자

지난 4일 명동 패션·뷰티 브랜드 스타일난다의 플래그십스토어 ‘핑크호텔’ 앞에서 분홍색, 노란색의 알록달록한 히잡을 두른 소녀 4명이 서로 ‘인증샷’을 찍어주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관광온 이들이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스타일난다 매장이라고 한다. 실제로 4층으로 구성된 플래그십스토어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특히 동남아인의 비중이 컸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거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는 해외 BJ들도 볼 수 있었다.

친구들을 인솔하는 듯 보이는 인도네시아 관광객 리아(23살)씨는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크다. (스타일난다 모델 박소라양의 사진을 가르키며) 많은 인도네시아 여자들이 저렇게 한국 여자처럼 꾸미는 법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스타일난다의 모델 박소라양은 동남아시아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스타일 아이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스타일난다

명동 거리에서 만난 한 태국 여성은 여행용 캐리어에 화장품을 쓸어 담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적힌 리스트를 확인하며, 한국 마스크팩 메디힐을 세 박스나 챙기고는 다른 매장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태국에서 SNS로 화장품을 판매한다는 그는 “태국에서는 ‘땡나 까올리(한국 화장법)’가 유행한지 꽤 오래됐다”며 “태국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명동에서 세일할 때 사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종종 사러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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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화장품 업계에 빨간불이 켜진 사이 ‘포스트 차이나’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대 중국 수출액은 역신장해, 불과 1년 전인 2015년 11월 화장품 수출액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을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유통·화장품 담당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화장품 업계는 포스트 차이나(Post-China)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 화장품, 중국 수출 비중 67%…아세안 대비 7배 넘어

지난 해 화장품 수출 상위 10개국 가운데 동남아시아는 국가는 4개국이 포함됐다. 태국(6위), 싱가포르(7위), 베트남(8위), 말레이시아(9위)였다. 그 뒤를 이어 필리핀(13위), 인도네시아(17위), 미얀마(18위) 등이었다. 이들 7개국의 총 수출액은 3억 9507만 달러로, 중화권 총액과 비교하면 6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화장품의 국가별 수출 실적을 보면 중국과 홍콩을 포함한 중화권이 67%를 차지해, 심각한 편중 현상을 보였다.

태국 방콕의 센트럴 칫롬 백화점에 위치한 설화수 매장/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주목해야할 점은 아세안 수출의 빠른 성장 속도다.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의 화장품 수출액이 전년도와 비교해 20~70%가량 증가했다. 태국(27%), 싱가포르(43%), 베트남(33%), 말레이시아(27%), 필리핀(74%), 인도네시아(15%) 등에서 큰 폭으로 수출이 늘어났다.

화장품을 동남아로 수출하는 유통업체 코스케이의 관계자는 “예전에는 화장품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회사가 많았는데, 지금은 동남아쪽으로 방향을 많이 돌렸다. 중국 시장이 과열된 측면이 있어,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동남아로 가는 것. 최근 2년 사이 동남아쪽으로 진출한 유통업체가 수백개는 될 것. 미국과 유럽보다는 거리적으로도 가깝고, 문화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한류 효과도 있어 진출이 비교적 용이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태국을 테스트베드(시험 공간)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태국은 아세안 국가 중 가장 큰 화장품 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태국 소비자들은 로레알, 에스티 로더, 랑콤 등 세계 유수 브랜드 제품에 노출돼 매우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태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인접 국가인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진출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얘기다.

태국의 이니스프리 매장/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실제로 아모레퍼시픽도 올해 아세안 시장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 나갈 계획인데, 이미 화장품 시장이 발달한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을 아세안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고 신흥시장인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에서는 대도시 생활권을 중심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간다는 전략이다.

◆ 한국 미용법 궁금해하는 태국 여성들, 한국에 ‘성형 관광’ 오기도

태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미용 강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젊은 태국 여성들 대화에서는 ‘땡나 까올리(한국 화장법)’라는 단어를 종종 들을 수 있다. 한국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니는 태국에 메이크업북을 출시하며 연 시연 행사에 많은 팬들이 몰렸다. 심지어 화장품에 국한되지 않고 태국인의 한국 성형 수요도 늘고 있다. CJ E&M의 예능 프로그램 ‘렛미인’이 의 포맷 판매로 태국 버전이 태국의 지상파 채널을 통해 방영되면서, 한국 의료진에게 수술을 받으로 ‘성형 관광’을 오는 태국인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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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화장품 시장의 중요한 특징은 천연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옥시 사태 이후로 화학 성분을 배제한 자연주의 브랜드가 각광받고 있는데, 태국 소비자들은 그보다 앞서 화장품 유해 성분을 따지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미백 효과를 주는 제품에 들어있던 화학 성분으로 인한 부작용이 5년전부터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태국의 뷰티 매거진 걸프랜드 클럽의 케두닷 편집장은 “태국 소비자들은 남녀 관계없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화장품 역시 피부 건강을 생각한 제품이 각광받고 있으며 과거에 유행했던 진한 메이크업 대신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이 최근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연구원은 “한국의 화장품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수출 국가의 비중을 골고루 나눠야 한다”며 “동남아시아는 젊은 인구가 많고, 한류의 인기로 한국 소비재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 때문에 올해 화장품 산업의 꽃길은 아세안에 깔릴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christina@chosunbiz.com]

 

*원문출처: 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