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금맥 캐는 한국 기업들 | 삼성 등 대기업부터 소비기업까지 망라 내수 시장 크고 생산성 높아 수출 효자
지난 12월 7일 오전, 베트남 호찌민 탄손누트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부실 정도로 따가운 햇볕이 쏟아진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공항에서부터 숨이 턱 막힌다. 탄손누트공항에서 차를 타고 1시간 30여분을 달렸을까. 호찌민시 인근 동나이성 연짝 지역에 들어서니 LS전선 통신 케이블 생산법인 LSCV(LS Cable & System Vietnam) 공장 간판이 보인다. 무더위 속에서도 근로자들은 전선 케이블 생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LS전선이 2006년 16만6000㎡(약 5만평) 규모 부지에 설립한 LSCV에선 저압선(LV) 전력 케이블, UTP(인터넷 랜선), 광케이블 등 각종 통신 케이블을 생산한다.
매월 생산되는 UTP만 10만박스로 길이가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4만㎞에 달한다.
이형운 LSCV CFO는 “UTP 케이블은 주로 북미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 보내는 물량이 90%를 넘는다. 베트남 내수뿐 아니라 수출 물량이 늘면서 매년 실적이 20% 이상 급성장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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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 활약 두드러져
▷삼성전자 ‘베트남 국민기업’으로 도약
LS전선뿐 아니라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에 베트남은 그야말로 ‘황금의 땅’이다.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낮은 인건비에 풍부한 노동력을 갖춘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속속 옮기는 모습이다.
1990년대 TV를 일부 생산하면서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2009년 하노이 인근 박닌성 옌퐁에 휴대폰 공장을 세우며 생산 물량을 늘렸다. 2014년 10월엔 호찌민 동부 ‘사이공 하이테크파크’에 TV, 세탁기 등을 생산하는 소비자가전 복합단지를 건설했다. 이곳 부지 규모는 70만㎡로 투자금액만 5억6000만달러에 달한다. 덕분에 하노이 박닌성, 호찌민 동부 일대는 가히 ‘삼성타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SDI 등 그룹 전자 계열사들이 베트남에서 고용한 인력만 16만명을 넘는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전력공사, 가스공사 등 쟁쟁한 베트남 국영기업들을 제치고 자산, 매출 기준 베트남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포스코도 베트남과 수교가 체결되기 전인 1991년 일찌감치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다. 자동차, 가전, 건설 등 주요 산업에서 동남아시아 철강 수요가 커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9년 호찌민에서 동남쪽으로 80㎞가량 떨어진 붕따우성에 연산 120만t 규모의 동남아 최대 냉연공장을 준공했다. 김선원 포스코베트남 대표법인장은 “베트남에서 생산된 고급 냉연제품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전역에 공급해왔다. 베트남 남부, 북부 가공센터를 통해 판매, 가공, 물류까지 토털 솔루션 마케팅을 해온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의류 기업 진출도 활발하다. 태평양물산은 베트남 하노이, 박닌, 남딘 등지에 총 8개 의류 생산 공장을 운영한다. 주로 우븐, 셔츠, 니트 등을 연간 4300만장 이상 생산한다. 정창민 태평양물산 베트남 VPC(VIET PACIFIC CLOTHING)법인장은 “아직까지 중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하긴 하지만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 다운주입기 등 다양한 첨단 생산시설을 도입하는 데 힘쓰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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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시장 성장세도 눈길
▷CJ CGV 베트남 영화 시장 1위
제조업체뿐 아니라 베트남 내수 시장을 공략한 한국 기업도 꽤 많다.
이 중 CJ CGV 활약이 돋보인다. 호찌민 탄푸 지역 ‘에이온 셀라돈’ 쇼핑몰에 CGV 신규 극장을 입점하면서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관람객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첫 진출한 2011년 당시만 해도 연간 관람객 규모가 440만명에 불과했지만 2015년 1050만명, 2016년 1363만명으로 급증했다. 불과 5년 만에 3배가 넘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것. 2014년 이후 2017년 3분기까지 베트남 CGV 관람객 규모는 무려 4500만명에 달해 1위 극장 사업자로 입지를 굳혔다.
CGV가 빠른 시간 내 베트남 시장에서 자리 잡은 건 영화관 차별화 덕분이란 평가다. CGV는 현지 영화관과 차별화하기 위해 4DX, IMAX, 침대관 등 다양한 특별관을 설치했다. 2016년 7월 오픈한 침대관 ‘라무르’는 연인 수요가 몰리면서 좌석 점유율이 50%에 달한다. 침대관 티켓가격이 2인 기준 3만원가량으로 일반 영화관(약 3000원)보다 5배가량 비싼데다 베트남 영화관 평균 좌석 점유율이 20% 수준인 걸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주로 할리우드 영화 상영 비율이 높은 다른 극장과 달리 베트남 현지 영화를 대거 상영한 것도 영향을 줬다. 2011년까지만 해도 연간 베트남 영화 상영 편수가 11편에 불과했지만 2015년 35편까지 늘었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 영화 상영 편수도 함께 늘려나갔다. 심준범 CJ CGV 베트남법인장은 “베트남 국민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가 0.15회 정도에 불과해 성장 가능성이 높다. 현재 베트남 극장 수가 52곳인데 매년 극장 수를 늘려 2020년 100개를 넘어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백화점, 마트, 호텔 등 10여개 계열사가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 중이다. 2014년 하노이에 초고층 랜드마크 ‘롯데센터 하노이’를 열었고 떠이호구 신도시 상업지구에 3300억원을 투자해 2020년 복합쇼핑몰 ‘롯데몰 하노이’를 선보일 계획이다. 커피전문점 시장에선 한국계 커피 브랜드 ‘브이프레소’가 눈길을 끈다. 하노이에서만 1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인터뷰 | 박상우 현대알루미늄비나 부사장
삼성 휴대폰 생산 늘면서 연매출 4000억 달성
Q 베트남 시장 진출 이후 거둔 성과는.
A2006년 베트남에 진출하면서부터 알루미늄 기반의 창호, 커튼월, 태양광 제품을 비롯해 휴대폰, TV 케이스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왔다. 현재 3만3000평가량 1공장을 운영 중인데 생산량이 늘면서 5만7000평가량의 2공장도 세웠다. 연매출은 4000억원 정도로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량이 늘면서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중이다. 베트남을 비롯해 아세안 10여개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특히 알루미늄 원자재 생산부터 가공, 조립까지 모든 과정을 ‘원스톱’ 서비스로 진행해 고객사들 반응이 좋다.
Q 수많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 베트남을 선택한 배경은.
A진출 초기만 해도 중국과 베트남 중 어느 나라를 선택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베트남을 선택한 건 중국보다 기업 세제 혜택이 많고 외환 거래가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 납품하는 물량 비중이 큰데 휴대폰 생산 물량이 늘면서 수혜를 입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신형 모델 생산을 준비 중이라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주말, 휴일에도 공장을 계속 돌리고 있다.
Q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A 아무래도 도로 등 주요 인프라가 취약한 게 문제였다.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제조업체 특성상 직원들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언어 문제도 무시 못 할 걸림돌이었다. 베트남 정부가 대체로 외국 투자 기업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법, 시행령이 자주 바뀌고 갑작스러운 세무조사로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도 리스크다. 베트남 근로자 임금이 저렴하다지만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2006년 당시만 해도 근로자 평균 월급이 80~110달러 수준에 불과했는데 최근엔 400~450달러로 뛰었다. 베트남 내수기업 적자 폭이 큰 만큼 베트남 정부가 향후 외국 투자 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을 늘리려는 점도 변수다. 그럼에도 베트남 시장 성장세가 워낙 가파른 만큼 생산 규모를 키워 알루코그룹의 대표적인 해외 전진기지로 도약하는 게 목표다.
[하노이·호찌민(베트남) =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39호 (2017.12.27~2017.01.02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