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포함한 동남아지역연구자들은 한국 학계에서 동남아 지역연구가 한국과의 정치·외교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치·외교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 위해 아세안 역할이 중요하고,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동남아 수출, 투자 등 동남아는 중국 다음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아세안 사이의 높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존재하고, 사회문화적으로는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 속에 동남아를 모국(母國)으로 둔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으며, 관광, 유학, 비즈니스로 인한 한국과 아세안 사이의 인적이동이 대폭증가하면서 한국과 동남아 사이의 사회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에 대한 이해는 더욱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비단 동남아지역연구만이 ‘매우’, ‘특별히’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서남아시아연구, 중앙아시아연구, 중동지역 및 아프리카연구, 라틴 아메리카 등 모든 지역이 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한국의 청년, 한국의 기업, 한국의 정부, 한국의 시민은 이제 ‘전 세계’를 자기의 인식과 삶의 공간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아주 익숙하게 훈련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의 문명이 시작되고, 확산되고, 이동된 모든 지리적 루트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해주, 만주, 몽골 등등 공간에 대한 이해는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적 인식에서 ‘주최’ 또는 ‘주어’가 배제된 인식은 공허하다는 전제에서 보면, ‘동북아’에 위치한 대한민국, 주류학계와 비주류학계 사이에 논쟁적이기 하지만, 한국의 고대사가 발현된 지역에서부터 현대의 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모든 지역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각 지역연구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확대된’ 생각만이 더욱더 자기가 전공하는 그 지역에 대한 연구의 필요를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동남아지역연구자들이 동남아 지역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도 한국과 동남아의 경제적 관계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세계를 이해하면서 비단 현재만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과거도 여전히 중요하고, 한국의 미래를 만드는데 있어 모든 지역과의 접촉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어느 한 지역만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우매한 일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특정 지역연구는 인접한 또 다른 지역연구전통과의 소통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 지역(Southeast Area)’을 깊이 있게 보면, ‘인도’를 봐야 하고, ‘중국’을 봐야 하고, ‘아랍’을 봐야 하고, ‘유럽’을 봐야 하고, ‘일본’을 보게 되고, 봐야 한다. 따라서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는 진리가 ‘지역연구’에서도 정확히 관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융합’ 그리고 ‘통섭’의 학문적 패러다임 안에서 각 지역연구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중동 이슬람’의 이해를 필요로 하고, ‘이슬람 발상지로서의 중동’ 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이식된 지역으로서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비교지역연구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그리고 예를 들어, 이러한 연구들은 현실적으로 한국기업의 ‘무슬림 세계’로의 진출이라는 전략 전체를 보았을 때, 각각의 연구들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각 지역연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생관계보다는 ‘어느 지역’이 뜨면, ‘다른 지역’ 연구가 축소, 왜소해 질 것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단초라고 본다. ‘쓸데없는 경쟁의식’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론적 의존관계’를 ‘적자생존’관계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즉, 문제는 대학교육의 ‘근시안적’, ‘분절된’, ‘단절된’, ‘경쟁적’ 사고 때문이라고 본다.

이에 ‘학문’으로서 ‘지역연구’ 그리고 ‘실용’으로서 ‘지역연구’의 장점들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실용으로서의 지역연구’의 한 가지 예로 우리의 젊은 청년들을 각 지역전문가로 훌륭히 양성하여, 해외진출을 위한 필요한 인재로 키워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내가 연구하는 지역’이 중요한 만큼 ‘다른 지역연구’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다행이도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 것은 지난 3년간 몸담고 있었던 ‘신흥지역연구’ 프로젝트에 합류하고, 내가 속한 신흥지역연구팀 외의 다른 신흥지역연구팀과의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2012년에 시작된 신흥지역연구는 한국의 기업과 정부의 해외진출을 위해 해당 지역의 ‘지역연구적 전통의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한 동남아지역연구팀, 브라질·멕시코·콜럼비아를 중심으로한 중남미지역연구팀, 인도와 북벵골만을 중심으로한 서남아시아연구팀, 러시아와 시베리아 극동 지역연구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레이트를 중심으로한 중동지역연구팀, 터키와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한 중앙아시아지역연구팀, 나이제리아·알제리·모로코·에디오피아 등 아프라키지역연구팀 등은 한국의 입장에서 모두 ‘신흥시장(Emerging Market)’ 이다. 각 연구팀들은 ‘신흥시장’으로서 해당지역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다.

<그림> 신흥지역연구 성과발표회(20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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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동남아지역 연구팀은 기존 동남아 지역연구전통의 방법과 인식을 가지면서도, 새로운 신흥시장으로서의 동남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경제경영학적 연구주제-현지화전략, 마켓팅, 소비시장과 소비문화 등등-를 접목시키면서, 지역연구의 실용화차원을 넘어서 융합연구의 새로운 시도로서 해석될 수 있는 ‘동남아 비즈니스학’ 정립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연구의 실용화 전략이 어떻게 학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의 하나라고 본다. 그래서 대학 내에서 지역연구의 실용화는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현재 대학교육의 각 지역연구는 서로를 더욱더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인접지역 간 연구의 활성화를 가능케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남아 지역연구는 서남아시아시아 지역연구, 또는 중국지역연구 등 다양한 지역연구와의 접합을 가능케 한다. 둘째, 지역연구는 원론적으로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를 매우 잘 할 수 있는 연구전통이다. 대학은 학제간 연구를 필요로 하지만, 현재의 대학연구가 학제간 연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실질적으로 ‘해당 지역’을 대상으로 ‘주제’적 접근-문제설정과 문제해결방식-을 활성화한다면, 학제적 연구가 실질적으로 되살아 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했던 동남아 신흥지역연구 프로젝트의 의미를 위와 같이 정리해보면서, ‘이거 너무 거창한 것은 아냐’ 하는 생각도 분명히 있음을 고백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글 /그림. 최경희(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센터 선임연구원)

※본 글은 『한국국제정치학회』 뉴스레터 158호 회원논단에 실린 글입니다.